0.000000…001㎜ 떠서 다니는 한국의 마녀, 수상한 나라

입력 2006.10.10 08:53  수정

[베스트셀러] 미노의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은 서른 살, 여자가 240박 241일을 터키에 살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보고서이자 여행기이다. SBS 방송작가로 일하던 저자는 어느 날, 뒤적이던 수첩에서 세계지도를 발견한다.

그리고 무작정 세계일주여행을 떠난다. 1년 동안만, 천천히,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4개월 동안 유럽을 휩쓸려 다니다 터키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수상한 기운에 이끌려 남은 8개월을 살아버렸다.

이 책은 저자가 240일을 터키에서 살면서 감지한,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에 관한 것이다. 소도시의 다운타운을 걷다보면 양쪽으로 사람들이 길을 터주며 촉규젤(터키어로 예쁘다)을 외쳐 마치 할리우드 스타라도 된 듯 어깨를 으쓱거리게 만들고, 무작정 이유없이 친구가 되고 싶어하고, 좋아해 주는 터키 사람들.

저자를 8개월간이나 주저앉힌 터키의 매력은 무엇일까?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래서 수상한 매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나라 터키와 사람들을 만나보자.

맹렬하고 단선적이며 생날라리 마초인 나짐, 그는 저자가 7개월이나 머무른 오즈귤 호텔의 젊은 사장이다. 그의 최대 약점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관광객을 힘들게 꼬셔 투어를 나서면 어느새 친해져 자기 돈으로 맥주를 사주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짐과 저자는 사랑에 빠진다.

삶의 자리, 그 가운데서 만난 사람들
수많은 이방인들이 터키의 유적과 문화를 향유하는 동안 터키 사람들은 그 땅을 터전으로 삶의 격전을 치러내고 있다. 저자는 각종 여행서에 소개된 유적과 관광지를 피해 조금 눈을 돌려, 터키 사회와 현재모습을 만났다.

그리고 그 삶의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이 꿈꾸고 욕망하는 삶의 모습이 있고,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음을 들려준다. 이 책에는 터키에서 만난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그 남자의 가족과 살면서 만난 친척, 그리고 친구, 친구의 친구, 아버지의 친구 등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1장 터키 사람들, 2장 터키 여행, 3장 터키 문화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 1, 3장에서 우리는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터키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나짐의 삼촌 라마잔. 5년 전 형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터키로 왔다가 모은 재산을 모두 형의 축의금으로 털렸다.

비자가 없어 돌아가지 못하고 친척집을 전전하고 있다. 독실한 무슬림인 나짐의 어머니 안네, 100㎏이 넘는 거대한 몸으로 호텔 사장인 아들을 뒷바라지하며, 호텔 살림을 맡고 있다. 불합리하고 답답해 보이는 안네의 현실이 그녀에게는 알라가 허락한 축복받은 인생이다.

어울려 살아가는 따뜻한 모습에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다른 세계를 꿈꾸며 욕망하는 젊은 청춘들을 통해 터키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한다. 그리고 낯선 나라에서 온 여행자를 자신들의 가족과 형제로 맞아주고, 좋아해 주는 터키인들. 상식 선이 아니라 부딪치고, 깊이 들여다보면서 터키인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정말로 그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음을 저자는 고백한다.

터키의 풍물을 만나다
책의 곳곳에는 ‘Turkey´라는 제목으로 터키의 독특한 풍물과 음식이 사진과 짧은 글로 소개되어 있다. 터키인의 주식 ´에크맥´, 축구와 담배를 좋아하는 터키 사람들이 즐겨 피는 빨간 색 담배, 행운의 부적으로 악마의 눈 ´나자르 본쥬´, 하루에도 몇 잔씩 차를 마시는 터키인들이 차를 끓일 때 쓰는 독특한 ´2층 주전자´, 버스를 탈 때도 가정집을 방문해도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가장 먼저 내오는 터키식 향수 ´콜로냐´등 모두 35가지의 터키 풍물을 만날 수 있다.

이스탄불의 인구는 1천만 명, 한반도의 세배나 되는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지만 인구의 7분의 1이 모여 사는 곳. 낮에는 관광객들에게 카펫과 차이를 팔고 밤에는 무허가 달동네에서 치열한 삶의 욕망으로 뒤척이는 사람들. 이스탄불엔 터키인의 부와 유럽을 향한 자유로운 꿈이 있는 곳. 독특한 그곳의 풍물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터키인을 이해하는 방법 - 지구의 동쪽과 서쪽에 살고 있는 한국인과 터키인
이 책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터키에 관해 마냥 환상을 심어주는 그런 책은 아니다. 저자는 터키와 한국은 지구의 서쪽과 동쪽에 있는 거리만큼이나 멀고, 이해하는 방법도 지구의 반대편에 있다고 말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 이곳에서 나고 자란 저자의 눈에 비친 이상한 나라, 터키의 문화 보고서를 펼쳐보자. ‘공포의 비르다까´. 터키인들만큼 시간에 대해 무신경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고 토로한다. ´일 분만´을 뜻하는 터키어 ´비르다까´를 우리말의 ´일 분만´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30분, 1시간은 기본. 언젠가 처리되겠지 속편하게 생각한다.

터키인과 외출할 때는 각오할 게 있다. 30분 거리는 5시간, 10시간 거리는 3박 4일이 걸린다는 것. 터키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길을 걷다 아는 사람을 만나고 30분 이상 붙들고 이야기를 한다. 열 사람이고 스무 사람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30분씩, 그러니 이웃 마을에 심부름이라도 갈라치면 반경 10㎞ 이내의 친척집, 친구집, 친구의 친척집까지 안면 있는 집엔 모두 들르면서 가야 한다.

그래서 4시간 거리의 도시에 가는 날에 1박 2일을 잡아야 한다. 터키인들의 이 천년만년의 외출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다. 터키의 결혼식은 유별나다. 일가친척뿐 아니라 동네 사람, 친구의 친구, 신랑 신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모두 하객으로 몰려든다. 1천 명이 넘는 하객들이 줄을 서 신랑 신부에게 축의금을 주고, 함께 어울려 보통 2박 3일, 3박 4일 동안 댄스파티를 연다.

한국과 닮은 듯하지만 너무도 틀린 터키의 생활 속 보고서를 꼼꼼하게 옮겨놓았다. 8개월을 여행자가 아니라 미네(터키 이름, 우리나라의 영희 순희처럼 흔하다고 한다.)로 터키인의 가족으로, 친구로, 애인으로 살면서 겪었던 에피소드가 다양하다. 그렇다고 터키를 이상한 나라라고만 할 수도 없다.

이슬람 국가이지만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나라도, 문명 낙후국도 아니다. 메르세데스 같은 고급 승용차들이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고급 시외버스가 터키의 넓은 땅 구석구석까지 연결되어 있고 배꼽을 드러낸 날씬한 여자들이 이스탄불 중심가를 활보하는 언뜻 보면 유럽과 같다.

하지만 터키가 문화적으로 유럽이 될 수 없는 이유는 타인의 문화, 이웃 나라 유럽의 문화에까지 고집스러울 정도로 무관심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견해대로라면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이 결코 평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인들의 반대도 그렇지만, 그것에 무심한 다수의 터키인들 때문에도 말이다.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은 독자들을 또 다른 여행 세계로 이끈다. 유명 관광지와 유적을 훑어 내리며 도장찍듯 총총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여행이 아니라 그들 속으로 스며드는,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생활을 느끼고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여행이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여행을 떠나지만 또다시 여행이라는 틀을 만들고 그 틀 속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일탈을 꿈꾸는 독자들은 떠나라. 그리고 역사의 땅, 신화의 땅으로 추상화된 터키의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2000년대를 사는 터키의 모습을 만나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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