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면 현위치 위도 경도 알아야 목숨 부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4.05.09 08:54  수정 2014.05.09 08:57

<기고>해상사고 긴급전화라는 122 일부지역에선 ARS로 받다니...

해양경찰청 홈페이지 김급출동 122 안내 화면 캡처.

“여기 못골놀이터 전의 집인데요. 지금 성폭행당하고 있거든요.”

“못골놀이터요?”

지난해 4월 중국동포 오원춘(43)이 저지른 살인 사건 당시 신고를 접수했던 경찰과 피해 여성 A 씨가 나눈 문답의 일부다.

국민 모두가 기억을 할 것이다. 아니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피해자 A 씨가 전화기를 놓치기 전 80초 동안 접수원과 A 씨는 12차례 문답을 나눴지만 그중 9차례는 이처럼 “지금 성폭행당하신다고요?” 등 이미 A 씨가 말한 내용을 되묻는 질문이었다. 주소를 묻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빨리 단서를 물었더라면 그때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불쌍한 피해자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시 경찰에는 상황별로 대처할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 생활안전과는 ‘112 신고 접수 지령 매뉴얼’을 만들었다. 신고 접수부터 지령 및 사건 처리까지 담은 세부적인 내용의 매뉴얼을 만든 것이다. 과학수사 최고의 실력을 가진 경찰이라고 자부심을 느끼는 우리나라 경찰이 신고 접수에 대한 매뉴얼이 없어서 우왕좌왕 하다가 안타까운 생명을 떠나보냈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똑 같은 일을 또 겪었다.

세월호 사건. 모든 국민이 슬픔으로 빠져서 지낸지 벌써 수 주가 지났다. 매일 같이 새롭게 들려오는 정부, 공무원, 그리고 세월호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실망스러운 이야기들로 인해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해경은 다급한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전화를 건 학생에게 배 이름 등보다 "위치, 경도를 말해 달라", "GPS 경위도가 안 나오느냐"고 먼저 물었다.

더 놀라운 것은 해상사고의 '제1 창구'인 긴급전화 122의 경우에는 서울, 경기 수원, 세종, 전북 등에서 122에 전화를 걸면 ARS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급해서 전화를 거는데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라니. 참으로 놀라운 제도다.

오원춘사건 때부터 계속해서 전화걸면 자동으로 위치파악이 되도록 하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아니 그 법안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금방이라도 통과될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뜨거운 감자가 지나가고 나니 그 법에 대한 이야기와 관심이 시들해졌나보다.

5월 1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와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미방위는전날 상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방송법 등 계류법안 37건을 일괄 처리했지만 지난달 11일 회부된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위치정보보호법)은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현재 112 범죄신고전화는 사용자의 휴대전화 상태에 상관없이 GPS 정보 추적이 가능한 반면, 119 신고전화는 이용자가 GPS 기능을 활성화시켜 놓은 상태에서만 추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안은 119 신고전화에 대해서도 위성정보(GPS) 기능을 강제로 활성화해 정확한 위치추적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간 여야갈등으로 2개월간 제대로 일을 못한 국회는 방송법 등 기존에 논의된 법안만 이날 처리하고, 신규 법안은 상정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통과되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 누구를 위해 국회에서는 법을 만드는 것일까? 법이 아직 통과 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매뉴얼도 작동이 되지 않으니 이제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자신의 위치를 외우고 다녀야겠다. 바다에서는 위도와 경도를, 도시에서는 지번을...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으니 내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는 지금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 배의 위치를 모르고 다급한 신고자에게 물어보는 해경을? 자신의 생명에 위험을 느끼며 신고하는 피해자에게 주소를 물어보는 112 센터를? 아니면 지금도 제대로 법을 만들어 주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아니다. 지금 이렇게 잘못 돌아가고 있는 나라에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탓하고 있다. 나는 너무 무능하다. 어른이기에 미안하다. 주소를 직접 외우고 다니라고 말을 해야 하는 내가 무능하다. 진짜 국가 시스템이 변화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글/류여해 한국사법교육원교수·독일 jena 대학 형사법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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