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계약직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을 보면서...
어느 날부터 우리시대에 계약직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인턴과는 또 다른 제도로 계약직 직원, 계약직 공무원, 계약직 교사, 계약직 의사, 계약직 교수 드디어 계약직 선장이 세월호라는 거대한 슬픈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직업이라는 것이 원래 계약을 해서 근로조건을 정하는 것은 당연히 맞는 이야기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계약직이라는 것은 좀 다른 의미이다.
근로 기간을 명시하여 계속 재계약을 하여야만 근로조건이 이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업주가 계약을 갱신할 의사가 없으면 아무런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계약직근로자의 슬픔인 것이다.
계약직은 분명 좋은 취지이며 도입이 필요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뿌리를 내릴 때에는 좋은 점은 싹 사라지고 나쁜 점이 기생충처럼 자라난 것이 바로 이 계약직제도라 할 수 있다.
계약직은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된다. 일단 임금 차별을 당연히 받게 된다. 명절수당 등의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그것보다 더 서글픈 것은 정규직과의 차별이다.
정규직은 언제나 당당하다. 계약직은 언제 계약 해지의 꼬투리가 잡힐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언제나 ‘을’ 중에 울트라‘을’ 아니 ‘병’ , ‘정’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아침에 “우리 교수님은 계약직” 이라는 기사가 나를 참 슬프게 만들었다.
대학은 어느 곳보다 학생들을 위해서 훌륭한 교수를 유치해야 하는 곳이며 연구중심이 되어야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돈을 절감하기 위해서 계약직 교수를 임용하고 2년이라는 계약을 걸고 젊은 교수들의 목을 죄고 있다.
나이든 교수님들이 하고 있는 논문과 업적이 과연 학생들을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학생들과 그들은 교감을 나누고 있을까?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정년을 기다리는 교수님들의 봉급을 채워 드리기 위하여 정말 연구해야 할 젊은 교수들은 계약직이라는 불안한 자리를 나눠 받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일처리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대학은 이번 신임 계약직교수에게 15학점을 배당하고 250만원의 봉급을 준다고 한다. 반면 30년된 노교수님들은 6학점에서 9학점 강의를 하고 800만원의 봉급을 가져간다고 한다.
더 슬픈 것은 그 계약직 자리도 없어서 줄을 서서 비굴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젊은 학자들의 모습이다.
그 자리 임용도 짬짜미는 깔려있고 일시키기 좋고 인맥이 닿아야 하고 등등의 조건이 따라 붙는다. 일시키기 좋은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은 다른 것이다. 누가 더 학교를 위해 필요한 사람일까?
여성근로자에게 취업의 문을 확대한다고 그럴싸한 정책을 펼치더니 “여성 고용 안정성 여전히 취약…여성 근로자 44% 1년 미만 계약직" 이라는 기사가 또 눈에 보인다. 눈 가리고 아웅은 절대 개선이 아니다.
개선은 고쳐져서 사회가 변화한 것이 개선이다. 급하면 상처 난 곳에 반창고를 붙이고 또 그 반창고 안이 곪아 가면 더 큰 반창고를 붙이는 것이 개선이 아니다. 세월호에 선장이 계약직이 아니고 책임감이 강한 멋진 선장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만약에 라는 생각을 해본다.
끊임없는 만약에는 우리를 더 슬프게 하겠지만 그래도 선장에 따라서 분명 이번 사태의 방향은 극과 극이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공무원은 평생을 보장 받고 정년을 하고도 또 보장을 받는다. 마피아를 어떻게 근절할까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마피아 근절방법은 간단하다. 공무원에게 정년을 보장하지 않고 실적위주로 평가를 한다면 긴장 속에서 일을 할 것이다. 신분을 나누지 마라. 누구는 계약직 누구는 정규직 조선시대 신분사회가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은 사회의 분열을 조장 할 뿐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평가 할 수 없다.
정규직이 계약직을 판단하고 그들 맘대로 계약의 연장을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나 역시 계약직인 시절 나의 상관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조용히 다른 계약직들처럼 엎드려 살아라 그게 재계약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계약직은 계약직답게 굴어라!” 라는.
물론 나는 그 상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해 처절하게 복수 당했다. 그는 날 재계약 시키지 않기 위해서 모든 수를 동원했고 나는 2년의 계약기간이 지나서 해지 통보를 받았다. 나는 지금 누구의 계약직인가? 우리는 누구의 계약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맞는지 항상 반문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불어간다. 이제 제발 정상적인 것을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서 눈가리고 아웅하며 덮는 행동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부의 눈을 가리고 교수숫자를 맞추되 비용절감을 위해서 계약직교수를, 여성근로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서 여성계약직의 증원을, 회사의 편의를 위해서 계약직 사원을 바로 이것이 우리사회를 무너지게 하고 있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자.
나는 정상적인 대한민국이 그립다. 모든 사회가 임기가 있다 재평가를 받아서 다시 걸어 나가야 한다. 왜 철밥통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가? 공무원이 노조를 만들어서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 패거리를 만들어서 마피아를 만드는 지금 이제 누구도 감히 평가 못하도록 계약직으로 사회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실력으로 평가 받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실력인 세상이 차라리 그립다.
글/류여해 사법연수원 교수·독일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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