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9일 울산의 한 성형외과 앞에서 주름 개선 시술 후 색소침착으로 얼굴이 검게 변했다는 50대 여성이 보상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성형수술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따라 보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성형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좀처럼 제동이 걸리지 않는 모양새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형시장 규모는 5조원에 육박하며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성형수술 건수는 13.5건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이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성형 의료사고 실태를 접하면서도 성형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더 나은 외모를 갖고 싶은 욕망만큼이나 ‘내게는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피심리가 내재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사회적 병폐가 사람들의 합리적인 판단까지 흐려지게 하는 대목이다.
2년 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양악수술을 받은 A씨(28·여)은 “어렸을 적부터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다”면서 “양악 수술 전에 이미 눈과 코 성형을 3, 4차례 받으면서 달라진 외모로 인해 자신감도 높아지고 주변 사람들의 대우도 달라지면서 성형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A양은 이어 “양악 수술은 아무리 전문의가 집도한다고 해도 자칫 생명에 위험이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는 두려움이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병원에서 ‘수술에 따른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면서도 ‘설마 나한테는 그런 일이 생기겠냐’는 생각뿐이었다. 무엇보다 더 예뻐지고 싶은 욕망이 컸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 없이 수술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다행히 당시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A씨는 수술 후 몇 달 동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수술 직후 처음 의식을 차렸을 때 얼굴 전체가 붕대에 감겨 앞도 잘 보이지 않았고, 제대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며 “이후에도 한 달 동안은 씹지 못하기 때문에 물이나 주스 등만 마셨다. 정말 함부로 해선 안 될 일이라고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A양은 그러면서 “하지만 수술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더 예뻐졌다는 얘길 들으니 일종의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며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성형중독의 문제점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성형 이후 달라진 주변 사람들의 태도 등 한 번 자신감을 맛본 사람은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성형 중독자 50대 여성 사업가 B씨도 비슷한 이유를 들어 성형욕구를 끊어내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미 수 십 차례 눈, 코 성형수술 이후에도 수시로 필러, 실, 보톡스 시술까지 받고 있는 B씨는 한 눈에도 얼굴에 성형중독으로 인한 부작용이 보이지만 본인은 계속해서 성형을 받고 싶다는 입장이다.
B씨는 “한 번 성형에 손을 대면 마약과도 같아서 쉽게 끊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특정 부위를 고친 뒤 전체적인 얼굴 균형을 위해 계속해서 다른 부분도 고치고 싶어진다. 이 과정에서 의료사고 문제는 그리 크게 염려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심지어 일부 성형외과에서 암암리에 테크니션(불법시술사)들이 해주는 것도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이들은 환자들이 원하는 족족 시술해주기 때문에 의사보다도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그들에게 따로 사적으로 각종 시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불법 시술인건 알지만 “예뻐진다면야”
실제로 업계에서도 성형외과 원장이나 유명 의사가 상담을 해준 뒤 환자가 마취 상태에 빠지면 다른 의사가 수술을 하는 ‘테크니션(혹은 섀도우 닥터: 그림자 의사)’가 존재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분명히 불법 시술이지만 결코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되레 해당 테크니션을 통해 예뻐졌다는 주변 사람들의 사례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다”고 전했다.
명백히 불법 시술을 알면서도 그 ‘위험성’을 직시하기 보다는 외면한 채 오롯이 성형하고자 하는 열망이 더 크다는 것이다.
몇 해 전까지 테크니션으로 일해 온 한 50대 여성도 “환자들이 마취에 들면 간단한 시술은 테크니션들이 직접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표면적으로는 의사가 하는 것처럼 돼 있지만 환자들 대개 내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내가 자격증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저 주변 지인들에게 한 것처럼 예쁘게 해달라고만 부탁한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하지만 시술이 잘못되거나 하면 모든 책임을 병원 측에서 내게 전가하기 때문에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됐다”며 “이후로는 일절 관련 일을 하지 않지만 아직도 종종 내 연락처를 수소문해 시술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 한국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성형수술 분쟁으로 인한 상담 건수는 모두 4806건으로, 전년보다 28.5% 급증했다. 성형수술 부작용 피해구제 건수도 2008년 42건에서 지난해 130건으로 5년 새 3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이 같은 객관적인 수치에도 불구하고 성형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에 대해 심리학 전문가들 상당수는 지나친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잘못된 성취욕구의 폐해라고 입을 모은다. 채규만 한국심리건강센터장(전 성심여대 심리학과 교수)은 13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과도한 성형열풍에 대해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외모를 갖고 싶다는 접근(Approching)욕구가 너무 강해 ‘나는 (사고를 당하는 것이) 아니겠지’라는 회피 심리까지 파생된 것”이라며 “우리 사회 내 만연한 외모지상주의가 사람들의 합리적인 판단까지 흐리게 만든 셈”이라고 지적했다.
채 센터장은 이어 “심지어 아직까지 집단의식이 강한 우리 국민들의 경우, 주변 지인들의 사례를 통해 일종의 모방심리도 적잖이 작용하고 있다”며 “언론 등을 통해 아무리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해도 ‘내 주변 사람들은 아니더라’ 식으로 판단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또한, 그 사람의 내면과 고유의 개성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여전히 외적요소를 통해 가치판단을 매기는 사회적 의식도 큰 문제”라며 “명품을 착용하면 마치 자신의 지위가 높아진다고 착각하는 심리와도 맞닿아 있다. 이런 사회적 풍토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성형을 향한 사람들의 왜곡된 욕망은 근절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경정신과전문의 이나미 박사도 “사람들이 생명의 위험성을 회피할 정도로 성형을 갈망하는 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정형화된 외모를 부추기는 광고나 콘텐츠들이 범람하기 때문”이라며 “이로 인해 주체적인 사고방식 보다는 남의 시선과 부추김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성형중독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겉보다는 내실을 평가하는 사회적 의식과 시스템 구축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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