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하던 주 선교사 증언 "수용소 탈출계획 알리자 '오지마라'"
개인적으로 이송경비 지불했으나 끝내 대사관 측 받아주지 않아
여명학교를 졸업한 북한이탈주민 A(25)씨가 미술치료 과정에서 그린 그림. 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북한군 앞에 꽃제비 소년들이 구걸하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라오스에서 남한으로 오려다 강제북송된 ‘꽃제비’ 출신 탈북고아 9명이 이민국수용소를 빠져나올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도 한국대사관에서 이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대사관은 이들이 우돔사이 이민국에 있을 때엔 ‘너무 멀다’고 했고, 수도 비엔티안으로 옮겨져서도 ‘라오스 당국에서 연락올 때까지’라며 이들을 인계받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을 보호하던 중 라오스 공안에 체포됐다가 28일 저녁 이민국에서 추방돼 29일 새벽 한국으로 들어온 선교사 주모 씨 측은 “라오스의 이민국수용소에선 식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돈만 내면 외출이나 외박도 가능하다”면서 “주 선교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대사관으로 탈출할 계획을 알리자 ‘오지 말라’고 만류했다”고 밝혔다.
탈북고아 일행은 지난 10일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우돔사이 이민국수용소에 있던 중 이민국이 ‘한국대사관으로 데려가겠다’며 이송경비를 지불하라고 요구해 1500달러(약 170만원)을 건넸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도착한 곳은 한국대사관이 아닌 비엔티안 이민국이었고 이곳에 다시 수감됐다. 20일 이들 앞에 북한 사투리를 쓰는 남성 2명이 나타나 탈북자 1명씩을 조사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주 선교사는 다시 한국대사관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으나 대사관측에선 ‘이민국이 진짜 탈북할 의사가 있는지 떠보는 것이다’라며 재차 만류를 하는 바람에 이민국을 탈출할 기회를 또다시 잃어버렸다.
결국 우돔사이에서처럼 비엔티안의 이민국수용소에 수감된 상태에서도 식사를 하기 위해 매일 외출을 할 수 있었던 이들은 1시간반 남짓 떨어진 한국대사관에 한발도 들여놓지 못한 채 강제북송된 것이다.
이들 탈북자 9명이 이례적으로 중국으로 추방된 이유는 마침 라오스에 다른 볼일로 와 있던 북한대사관 직원이 탈북자 소식을 전해들었고, 이후 라오스 공안에 탈북자들의 신병인도를 지속적으로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 사투리를 쓰는 남성 2명이 이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자필사인을 받아간 것은 나중에 알고보니 북한대사관이 아이들의 여권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탈북자 호송 과정에서 없던 비행기까지 띄운 평양 압송을 위해 중국에서 적법한 여권과 단체여행 비자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대사관은 이들이 이민국수용소를 나와 식사를 하는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면담이 가능했었지만 이를 묵살했다. 게다가 정부는 ‘라오스 정부가 탈북자들에 대한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탈북자들은 이민국수용소에 있다가도 통상 1~2주면 신병인도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17일간이나 억류 상태가 지속됐는데도 라오스 정부와 제대로 된 협상조차 하지 못한 한국대사관의 소극적인 태도가 문제가 되고 있다.
아이들이 북한 사투리를 쓰는 남성과 면담한 뒤 불안을 느낀 주 선교사가 한국대사관으로 도망치겠다고 했지만 대사관 측은 ‘기다리면 잘 될 것이다, 다된 밥에 코 빠뜨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한국대사관 직원은 주 선교사에게 ‘도청될 수 있으니 전화하지 말라’고도 했다.
주 선교사는 “이민국이 ‘한국으로 데려다주겠다’며 아이들만 빼돌린 이후 별도 억류 상태에서 풀려나자마자 한국대사관에 신고를 했고, 그제서야 한국대사관 직원이 이민국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라오스 공안에 체포돼 이민국수용소에 억류돼 있던 탈북자 9명은 27일 북한측 인사에 넘겨졌으며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해 항공편으로 27일 쿤밍을 거쳐 그날 밤 11시에 베이징으로 옮겨졌다.
탈북자들은 이날 베이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28일 오후 1시30분 고려항공편에 실려 평양으로 압송됐다.
5명의 미성년자를 포함한 9명의 탈북고아 중에는 주 선교사와 3년간 중국에서 함께 생활한 아이도 있으며, 이번에 4번째 강제북송된 여자아이도 포함됐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