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한 용서’ 여운 남긴 레전드 뒷모습

데일리안 스포츠 = 이경현 객원기자

입력 2013.01.27 09:16  수정

25일 기자회견 갖고 공식 은퇴 선언

불이익 불구, 원흉이던 후배 용서

박재홍 은퇴 기자회견에 손민한(왼쪽)이 깜짝 등장했다.

한국야구 사상 첫 30-30 고지를 개척한 호타준족의 대명사 박재홍(40)이 은퇴를 선언했다.

25일 서울시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은퇴식을 박재홍은 17년간의 프로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날 박재홍의 은퇴와 더불어 주목받은 것은 그가 맡고 있던 선수협회장직을 내려놓게 됐다는 점과, 은퇴식에 깜짝 등장한 손민한의 존재 때문이었다.

박재홍에게 손민한은 한마디로 애증의 대상이다. 조용히 선수생활 말년을 보내던 박재홍이 선수협 회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떠맡게 된 것이나, 결국 새로운 소속팀을 구하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끝내게 된 직간접적인 계기가 알고 보면 모두 손민한 때문이었다.

2011년 12월 9일 박재홍은 한국야구 제 7대 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본인도 당황했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추대였지만 박재홍은 일단 감투를 쓰고 난 뒤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초상권 비리와 내부 분열로 얼룩진 선수협을 추스르고 정상궤도에 되돌려놨다.

선수협회장은 누구나 부담스러워하는 자리다. 겉보기에는 선수 대표로서 대한민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자리라는 명예로 포장되지만, 정작 당사자는 욕먹기는 쉬워도 인정받기는 어려운 자리다.

선수협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구단의 눈치를 봐야하고, 각 구단 선수들 간의 이해관계도 조율해야한다. 특히 한창 시즌 중에 개인성적에 신경 쓰기도 바쁜 상황에서 선수협까지 돌보기란 쉽지 않다.

박재홍은 선수협회장을 맡을 당시 이미 현역 연장과 은퇴의 기로에 있었다. 성적부진으로 팀 내 입지는 하락세였다. 선수협 역시 내부 비리로 얼룩지며 이미지가 바닥으로 치닫고 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자신의 돌보기도 벅찬 상황에서 박재홍은 책임감 하나로 회장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비상상황 속에서 1년 동안 선수협을 지켜냈다.

박재홍은 최근 개인의 트위터를 통해 손민한을 강하게 꾸짖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전임 선수협 회장으로서 초상권 비리사태와 선수협의 분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면피로 일관하려든 데 대한 질타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선수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순간에 껄끄러운 관계였던 손민한을 부른 것도 박재홍의 결정이었다. 같은 야구인으로서 후배의 살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선배의 배려였다. 최근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92학번 조성민의 데자뷰도 손민한을 바라보던 박재홍의 애증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어쩌면 박재홍은 선수협회장을 맡으며 개인으로서는 많은 것을 손해 봤다. 현역생활 연장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박재홍은 말년에 선수협회장직을 역임하며 온전히 야구에만 전념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해야했다.

소속팀 SK는 은퇴 후 지도자 연수 제의를 거절하며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까지 고려했을 때도 선수협 회장직은 발목을 잡았다. 모 구단은 박재홍의 선수협 회장직 사퇴를 조건으로 영입을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재홍은 자존심과 신의를 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깔끔한 은퇴를 선택했다. 박재홍은 떠나는 순간까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어떤 원망도 하지 않았고, 손민한까지 끌어안으며 자신보다 남을 더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선수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말년이었을지 몰라도, 야구인 박재홍으로서 보낸 마지막 1년은 아름다운 희생으로 귀결된다. 야구실력보다 더 멋진 사나이 박재홍의 당당한 은퇴가 많은 팬들에게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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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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