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탐방]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갖기 현장 점검
불안·부담은 잠깐...적극적 의욕에 추가 인원 채용 계획도
<편집자 주>지난 6일 서울시는 ‘노숙인 일자리 갖기’ 일환으로 노숙인 600여명을 건설현장 곳곳에 배치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지난달 9일 “노숙인 건설현장 배치를 검토하라”고 한지 1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다.
동절기 공사현장에 일거리도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숙련되지 않은 노숙인들을 성급히 배치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현장에서 만난 노숙인들은 자신들을 더 이상 ‘노숙인’이라 부르는 것을 거부하며 재활의지를 불태웠다. 자신들은 ‘재활인’이라는 것이다. 데일리안은 서울시의 ‘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노숙인과 건설업자, 시 행정 담당자들을 직접 만나봤다.
“노숙인이라니요, 저희는 노숙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를 ‘재활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13일 오전 11시. 서울시 종로구 ‘종로업그레이드 프로젝트 공사’현장. 노숙인 10명이 배치됐다는 이 곳은 종로 1가에서부터 3가까지 1.3km구간을 포장하는 작업으로 지난해 11월 시작돼 오는 4월 말까지 진행된다.
이곳에서는 노숙인들을 ‘노숙인’이라 부르지 않고 있었다. 노숙인 지원센터 등에서 왔다고 해서가 아니라 재활을 꿈꾼다고해서 ‘센터인’ 또는 ‘재활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주)유진컨스트택 문명석 소장은 “이들이 일을 갖는 순간 더 이상 노숙인이 아니다”며 “재활을 하기 위한 재활인이고, 절망과 좌절을 접고 밝은 곳으로 나가기 위한 ‘희망인’들”이라고 불렀다.
문 소장은 “처음에 노숙인들을 배치한다는 소리를 듣고 ‘일을 잘 할 수 있으려나’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면서 “ 하지만 막상 일을 시켜보니 토요일에도 자신들이 앞 다퉈 나와 일을 하려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으며, 일에 대한 숙련도도 붙고 있어 지금은 일을 부리기가 한결 수월해 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욕이 있다면 일요일도 나오라고 하고 있다”며 “몇몇의 재활인들은 의욕이 넘쳐 자신들에 대한 ‘특별배려’에 거부감까지 일으킬 정도”라고 전했다.
문 소장은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이곳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고, 따뜻한 방한 칸 마련한 다음 기술을 배워 재기를 꿈꾸는 것”이라며 “이 같은 요구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직영 직원들과 조를 짜 작업하게 하고, 숙련기술을 배우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이들에겐 사회적 관심이 오히려 부담이 될 정도”라며 “그냥 둬도 의욕적으로 일 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관심이 탈이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곳에서 만난 재활인 김종민(41·가명)씨는 “일을 할 수 있어 즐겁다”며 “어서 벌어서 따뜻한 방한 칸 마련해 내 생활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사출공장 근로자로 있다가 IMF가 터지면서 일자리를 잃고, 처와 이혼한 뒤 노숙인이 됐다는 그는 “몇 년을 일을 하지 않고 살다가 막상 막노동을 하려니 몸이 힘든 것은 있지만 어디를 가서는 이만큼 힘들지 않은 곳이 있겠느냐”며 “일이 있어 즐겁고, 희망이 있어 웃음이 난다”고 미소 지었다.
김씨는 또 “하루 한 끼니 때우는 것이 걱정이던 시절은 가고, 점심도 5000원짜리로 먹고 있다”며 “더욱 좋은 것은 직영업체 직원들과 차등 없이 뭐든 것을 지원받고 있어 한마디로 살판난다”고 말했다.
이들 재활인이 하루 일당으로 받는 일급은 5만원. 시공업체와 서울시가 각각 2만5000원을 부담하는 것이다.
당초 서울시는 1개월을 단위로 월급을 주는 방안을 생각했으나 현장에 재활인들을 배치하고 보니, 당장 수중에 가진 현금이 없는 재활인들로서는 현장을 오고가는 교통비와 저녁꺼리가 마땅치 않았던 것.
이에 서울시는 각 시공업체에 일당을 주급으로 지급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이해한 업체들도 적극 협조해 주급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하지만 다른 현장의 재활인들은 “주급으로 받다보면 목돈을 모으기 힘드니, 다소 힘겹더라도 버텨보겠다”며 월급으로 줄 것을 요청하는 사례도 있어 그들의 재활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부담이라니요, 의욕이 넘쳐서 탈입니다. 예정에도 없던 인원채용 계획을 세웠는데요.”
13일 오후 2시. ‘노숙인 일자리 갖기’의 또 다른 시범 사업장인 ‘강변북로(청담대교-성수대교)확장공사’ 현장을 찾은 취재진은 현장관계자들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당초 시공업체들이 서울시의 눈치를 살피느라 노숙인들을 배치 받아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소문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 이곳에서도 노숙인들을 노숙인이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쌍용건설 이상돈 현장소장은 “재활인들을 받는 것에 가장 반대했던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의욕에 넘치는 그들을 보고 현재까지는 가장 좋은 평가, 최고점을 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부담은 있어요. 그들이 사고라도 당하면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바로 시공업체입니다. 하지만 기존 용역회사의 인부들이 ‘시간만 때우면 그만이라는 식’인 반면, 재활인들이 잠시도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생각을 달리 하게 됐다"는 것이 이 소장의 설명이다.
이 소장은 당초 이 같은 우려 때문에 재활인들에게 쉬운 일만을 시켜왔으나 매일 오후 일과시간이 끝나고 갖는 ‘애로 및 건의사항 청취’ 시간을 통해 ´제발, 우리를 다른 인부들과 똑같이 대해 달라´는 요구를 듣게 되면서 이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재기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초창기 재활인들은 “할만하다”고 하다가도 “교통비가 없어 못 다니겠다”고 호소했지만 이제는 업체에서 주급으로 일당을 쳐주겠다는 것도 뿌리치고 ´그렇게 하면 목돈을 모을 수 없으니 아예 월급으로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다는 것이 현장 관리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데일리안이 현장에서 만난 재활인들은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당히 외치고 있었다.
이 소장은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 보다 숙련된 기술의 습득에 있었다"며 "이들을 숙련공들과 붙여서 호흡을 맞추게 하고 있으며, 당초 계획은 없었지만 이들이 원한다면 공사가 끝나는 12월까지 숙련자에 한해 특별채용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자리 갖기 프로그램은 노숙인들에게 ‘기회’이자 ‘희망’입니다.”
이명박 시장이 임기를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추진한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이 성공을 이룰지 아직까지 불투명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노숙인들은 이를 ‘현대판 뉴딜정책’으로 부르고 있었다.
강변북로 현장에서 만난 재활인 김남석(54·가명)씨. 김씨는 노숙을 하기 전 건설현장을 다니며 미장이 일로 하루 12만~15만원까지 받았을 정도로 숙련된 기술공이다.
그는 “꼭 밥을 먹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현장관계자들과 친분을 쌓고 앞으로 일감이 많아지면 기술을 인정받아 더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은 동절기라 일감이 없어 잡일을 하고 있지만 서울시에서 일자리 갖기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고 일감이 많아지면 더 좋은 날이 오지 않겠느냐”며 “시장이 어떤 이유로든 노숙인들에게 일자리를 준 것은 잘한 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건설경기가 좋지 않을 때 정말 힘들었던 것은 서민”이라며 “일이 없어 끼니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일감을 주는 것은 잘은 모르지만 현대판 뉴딜정책 아니냐”고 되물었다.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를 통해 프로그램을 알게 돼 지원했다는 김씨는 “현재 일을 다니면서 조그만 월세방을 얻어 생활하기 시작했으며 업체에서 주는 아침과 점심, 오전, 오후 간식까지 먹을 수 있으니, 끼니 걱정은 덜게 됐다”면서 “초창기 6시였던 퇴근시간도 저처럼 잠잘 곳이 마땅치 않은 동료들을 배려, 오후 5시로 앞당겨져 동료들 또한 쉼터나 센터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챙겨 먹는 등 이제는 끼니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김씨와 다른 계획을 가진 재활인도 만날 수 있었다.
이명철(40)씨는 “카드빚 800만원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됐으며 때문에 노숙을 해왔다”고 털어놓으면서 “빨리 이를 갚고 작은 포장마차라도 해야겠다”고 재기의지를 다졌다.
이씨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보니 자연스럽고 편하게 일할 수 있어 좋고, 또 자신이 열심히만 하면 계속 일 할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며 “가게를 차리면 사장님 소리 듣겠다”고 웃음지었다.
“그들이 재활의지를 불태우는데 과감히 땔감이 되겠습니다.”
서울시는 ‘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그램을 지속추진하기 위해 기존 노숙인지원팀을 과 수준인 ‘노숙인대책반(이하 대책반)’으로 승격,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충열 과장을 필두로 14명으로 꾸려진 대책반은 앞으로 ▲노숙인 일자리 확충 ▲현장 재배치 등 애로사항 해결 ▲노숙인 참여유도 등을 중점 추진할 예정이다.
이 과장은 13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완벽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그러나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시는 노숙인 지원팀을 과로 승격, 대책반을 꾸리게 됐다”며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크게는 사회양극화 해결과 사회 통합이 중요한 문제이며, 때문에 어려운 계층에서도 정말 어려운 노숙인들에게 희망과 자력을 주는 부분을 고민해 오던 것이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며 “막상 시작하고 보니 반응도 좋고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차원에서 아예 지원팀을 꾸리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시는 1월부터 사업을 시작해 노숙인 1170명의 신청을 받아 이 중 건강검진과 오리엔테이션을 통과한 963명을 선발했으며 1차 확보된 일자리 149개 사업장에 인력 600명을 배치, 지난 6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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