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죽음을 해부한다' 실화소설 파이널 커튼33>
천씨 아내 매춘 생존하기 위한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해요...
지루한 시간이 다시 짤칵짤칵 흘려갔다. 사정이 몹시 궁금해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삐쭉 열었다. 김 기자의 친구가 추운데 나오지 마라고 만류했다. 나까지 곁에 있으면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말로 들려서 망설이는데, 김 기자가 다 끝나간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이 반가워 차문 밖으로 내려놓았던 발을 얼른 안으로 올려 놓고 문을 닫았다. 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서로 악수를 나눴다. 군인들이 자기들의 짚으로 물러갔다. 세 사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같은 말을 또 묻고 또 묻고. 정말 중국놈들은 못 말려.”
김 기자가 자기도 중국사람이면서 중국놈을 욕했다. 백두산 관광 왔다가 늦었다고 둘러댔고, 여권은 본인이 가야 찾아올 수 있으니 너희가 용정까지 같이 다녀와야 한다고 우겼다는 것이다. 근무중인 병사가 순찰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노린 것이라나. 차는 짚과 교차하여 다시 달렸다.
나는 기어코 서울 얘기를 한번 더 꺼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중국으로 나와서 제게 연락해요. 제가 서울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주선해 드릴게요.”
“기런 말 계속하면 나 기분 나빠. 죽는대도 기런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그가 내 말을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봉투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넣어 둬요.”
“뭔데?”
“주인에게 돌려주는 거에요.”
그가 봉투를 받아 안을 들여다 보았다.
“받갔어.”
그가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눈물이 흘러나왔던 모양이었다.
“오늘 가져온 물건을 팔면 이만큼 더 떼서 아우가 챙기라우.”
봉투 속에는 추사 글씨를 팔고 내게 남은 3천 달러가 들어 있었다.
“정연화 그 애 말이야. 좋은 세월에 태어났더라면 제 조국에서 교양 있는 사회주의자로 클 수 있는 재원이었어. 남쪽으로 데려갈 테지? 잘 돌봐줘.”
“그럴게요.”
“훌륭한 사람 만들어 봐. 그 애 빼내오느라 고생을 좀 해서 내가 욕은 해댔지만, 근본은 괜찮은 아이야.”
“알았어요. 빼내줘서 정말 고마워요.”
차가 아까 그가 건너왔던 곳에서 속도를 늦췄다. 황 참사가 탄 쪽의 차문을 열자 바람이 훅 얼굴을 강타했다. 거친 강바람이었다. 뛰어내릴 만하도록 속도가 늦춰졌다. 차가 멈추면 멈춘 지점을 의심하는 숨은 눈길들이 있을지 모른다며 김 기자의 친구가 고안해낸 작별 방식이었다.
“조심해요.”
“걱정 마라우. 저쪽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다시 말하지만 2주 내야. 최대한 노력해 보란 말이야. 암호도 잊지 말고.”
나는 그의 손을 잡은 손에 꽉 힘을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뛰어내렸다. 넘어질 듯 비틀대더니 물푸레나무와 갈밭을 헤치고 둑 밑으로 내려갔다. 차는 계속 천천히 움직였고, 그럴수록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지켜보기 위해 고개를 바짝 뒤로 꺾어야 했다. 달빛에 강물이 허옇게 반짝였다.
우리는 그가 뛰어내린 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차를 멈췄다. 그의 모습을 찾아보려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강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집중했다. 움직이는 물체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소리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분간할 수 없었다. 끈을 놓친 연처럼 그는 내 곁을 떠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놓아야 했다는 후회가 가슴을 알싸하게 적셨다. 결코 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북경 싼리툰의 청스빈관에 도착했을 때 나는 포화가 작렬하는 적진을 뚫고 겨우 살아나온 기분이었다. 모르니까 했지 알면 못했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았다. 의례적인 검문검색에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던 정연화는 오죽했을까?
황 참사가 두만강을 건너간 뒤 나는 새벽녘에 정연화를 데리고 버스에 올랐던 것이다. 신분증을 반드시 검사하는 비행기와 열차 타기를 피하자니까 오직 직행버스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버스는 겨울이 찾아온 황량한 만주벌판을 달렸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데도 버스 안이나 휴게소, 터미널 같은 데서 마주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내 어깨를 와락 잡아챌 것 같았다.
눈초리가 내 행동을 세밀히 관찰하는 것 같았고, 투시경을 낀 시선처럼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알몸을 드러내고 시가를 질주한 것처럼 피곤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 해도 될 고생을 시키는 정연화를 혼내 주어야겠다고 단단히 별렀다. 북경에 도착해서 보자고.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의 증언을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증언이 구체적인 형상과 감정으로 가슴속에 각인되면 두고두고 어느 때든 튀어나와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보다 그녀를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같은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우리는 한 방에 투숙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흡사 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동숙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나 역시 그녀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속에서는 여느 때처럼 야릇한 감정이 풀풀 넘쳤지만. 한 방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데, 하물며 긴 밤을 같이 보낸다는데야 정상일 리 있겠는가. 나는 그녀를 혼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그녀와 내가 방안에서 어정쩡한 상태로 있을 때 최 노인이 왔다. 그는 우리가 북경에 도착했다고 연락을 하자 자신의 식당으로 그녀를 데리고 오지 말라고 내게 신신당부했다. 이젠 종업원들의 입방아도 조심해야 한다고 둘러댔지만, 그보다는 그녀를 서울로 빨리 데려가도록 하려는 나에 대한 압박이었다.
한국사람이 많은 왕징 부근에 한 달짜리 셋방을 얻어줄 테니 그 이후의 일은 자네가 알아서 하라고 딱 잘라 말했다. 서운할 것도 없지만, 서운했다. 그녀를 혼자 놔두게 하는 처사가 야박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가 정연화에 대한 정을 떼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거기에 여권까지 다시 만들어 준다지 않는가.
최 노인은 정연화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순간을 나는 비바람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함으로 받아들였다. 여권을 만들어준 것이 들통나 고생하고 적잖은 돈까지 쓴 처지이기 때문에 그의 성격으로 보면 곧 무슨 말인가 쏟아낼 것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험한 소리를 하더라도 참아줄 결심을 하면서 둘 사이의 긴장을 지켜보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정연화는 그의 눈길을 피해 돌아섰다. 그녀의 쪽빠진 얼굴이며 가냘픈 몸매가 실루엣으로 돋보였다.
“고생했지?”
최 노인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이었다. 어느덧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정연화의 어깨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참았던 설움이 그 한 마디를 신호로 터지려는 것 같았다. 급기야 정연화의 상체가 부들부들 떨렸다. 감당할 수 없었던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흐느꼈다. 최 노인이 허리를 굽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내가 찢어지는 네 속을 안다.”
정연화가 최 노인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최 노인이 눈물을 주르르 쏟았다. 나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런 의식이 얼마나 순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지체 없이 저 사람 따라가. 그렇지 않고 또 이 고생을 할 텐가?”
그는 자기 고생을 접어두고 그녀의 고생을 위로하고 있었다. 나는 입을 열면 울먹이는 소리가 새어 나올까 봐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소파에 앉고, 나는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정연화는 앉으라 해도 선 채였다.
“연화, 이 사람 좋은 사람이야. 총각이고. 지아비로 모셔도 손색없는 사람이야.”
또 그 소리, 라고 말하려다가 분위기가 너무 숙연하여 가만 두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그녀를 어느 정도 수락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녀는 내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란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원한다면 대학에 보내고, 직장을 알선해주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내가 못할 줄 알고? 하는 자신감까지 불끈 솟았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면 아직 내키지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선뜻 네, 하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순결을 잃어서일까? 그렇다면 나는 순결한가? 마음만 고우면 됐지 그건 아무래도 괜찮다고 여기는 데도 더 진전시키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장애물이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그녀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해서일까?
최 노인은 미리 약속해둔 왕징의 부동산중개소로 떠났다. 거기에 들렸다가 식당의 일일결산하는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녀와 나, 단둘이 남았다. 최 노인이 뱉어놓은 말 때문에 그녀와 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녀를 혼내려고 벼르던 마음이 발동할 차례인데, 준비하고 다짐했던 말들이 목구멍 밖으로 밀려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방바닥에 엎드린 채였고,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문득 이 낯선 시간이 어린애들 장난처럼 우스웠다.
“몸보신을 해야겠어요.”
나는 기껏 그렇게 말하고 어색한 순간을 물리치려 했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다시 흐느끼며 말했다.
“선생님, 전 선생님 거야요. 제 새 인생은 선생님이 주신 거야요. 죽을 때까지 선생님 은혜를 갚을 수 없을 거야요. 전 오늘부터 선생님의 종이야요.”
한참의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밀어 침대에 앉혔다. 검불처럼 가벼운 느낌이 손아귀에서 느껴졌다.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었다. 이렇게 해야만 그녀에 대한 보복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녀를 용서할 수 있다는 듯이,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다는 듯이. 욕정이 그럴듯한 핑계를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내복을 걷어 올렸다. 브래지어는 없었다.
개산툰에서 그것까지는 사지 못했는가 보았다. 붉은 젖무덤 이 드러났다. 그녀의 젖무덤에 얼굴을 박고 유두를 가볍게 빨았다. 그녀가 팔을 돌려 내 등을 껴안았다. 그녀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바지에 손을 찔러 넣었다. 부드러운 아랫배가 만져졌다. 바지와 내복을 한꺼번에 아래로 내렸다. 껍질이 벗겨진 땅콩처럼 속살이 미끈거렸다. 도톰한 불두덩이 알맞게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허리를 감싼 그녀의 팔에 순간 힘이 가해졌다.
“전 선생님 거야요. 평생 선생님을 섬기겠어요.”
이젠 내가 옷을 벗을 차례였다. 아무렇게나 웃옷을 벗고 혁대를 풀었다. 바닥에 벗은 것들을 내팽개쳤다. 그리고 그녀의 샅 속에 한껏 부풀어오른 내 것을 쑤셔 넣었다. 그녀가 다리를 벌려 나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녀의 샅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내 몸 가운데에 돋아난 혹의 원초적 본능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안 뒤부터 혹의 난동 때문에 비탄에 빠진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러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녀의 목 밑으로 팔을 넣어 끌어안자 그녀가 말했다.
“저를 서울로 데려가 주어요.”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고 싶었던 말을 중얼거렸다.
“며칠 전 아내를 매춘시켜 연명하던 탈북자를 만났어요.”
치치하얼에 갔을 때 만난 천씨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엿공장에서 일했는데, 공장 주인이 불쌍한 탈북자라서 자신이 도와 주고 있다고 마을사람들에게 자랑하는 바람에 그 도시 변두리로 도망친 사람이에요. 공안에 잡힐까 두려웠기 때문이죠. 도망치자마자 물엿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조선족 청년의 주선으로 변두리서 월 170위안 하는 싼 셋집을 잡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답니다. 우리 글 간판이 나붙은 식당을 찾아 아무 일이나 시켜달라고 사정했답니다.
그러나 중국말을 못해 안 된다, 공안의 단속이 심해 안 된다 하는 이유를 들어 받아 주지 않더랍니다. 수중에 돈도 떨어지고, 급기야 눈 번히 뜨고 굶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대요. 그때 조선족 청년이 찾아왔어요. 안까이(아내)를 구부립시다. 당장 먹을 것이 없지 않소? 말뜻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그에게 청년은 설명하더랍니다. 아내를 매춘시키자. 처녀보다 싸게 받으면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서 대꾸도 안 했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청년은 그들이 막다른 골목에 놓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래요. 탈북자의 아내에게 매춘을 시키고 소개비를 먹을 궁리를 했던 것이지요. 천씨 가족은 오도가도 못하고 굶기 시작했답니다. 청년이 또 찾아왔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그런 짓을 할 수 없다고 말했대요. 한데, 그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종일 멍하니 있던 아내가 말하더랍니다.
무슨 일을 하던 돈을 모아야겠어요. 사람들을 돈으로만 보면 되지 않겠나요? 굶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천씨는 더 말릴 힘이 없었답니다. 이튿날 청년이 두 명의 남자들을 데리고 왔더랍니다. 천씨는 이이들은 데리고 밖으로 나갔답니다. 그 날부터 그는 손님들이 찾아오는 오후 시간만 되면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될수록 먼 곳으로 나돌아다녔답니다. 제가 이번에 만나 몇 푼 주고 왔는데, 그 돈이 떨어지면 그는 다시 그런 생활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녀가 내 가슴 위에 얼굴을 비볐다. 가슴에 다스한 액체가 떨어져 흘렀다.
“천씨 아내의 매춘은 생존하기 위한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해요. 죽더라도 춘향이처럼 정절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이 사람들의 경우에는 타당하지 않지요. 도대체 누가 이 여인에게 돌팔매질을 할 수 있겠어요?”
그녀의 얼굴과 내 가슴이 맞닿은 곳이 흥건히 젖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목에 두른 팔로 그녀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피곤이 엄습했다. 인생의 한 막이 내려진 것처럼 이제는 쉬고 싶었다. <계속>
글/유경 소설가 yookyungpy@gmail.com
그림/이철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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