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PT에 참여, 평창은 대한민국에서 동원할 수 있는 최상의 ‘자원’들을 모두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세 번 실패는 없다.’
지난 1999년부터 시작된 힘겨운 싸움이 마침내 결실을 맺을 순간이다.
평창의 올림픽 유치 도전은 이번이 3번째. 지난 12년간 평창은 기나긴 가시밭길을 달려왔다. 외롭고 서러운 순간들의 연속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됐다.
올림픽 유치경쟁을 치르는 동안 평창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감자밭이던 평창 일대에는 웅장한 스키장과 복합휴양시설인 알펜시아 리조트가 들어섰다. 각종 최신식 제반 시설과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는 2018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 도시인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를 압도한다는 평가다.
평창은 1999년 동계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올림픽 유치에 대한 야심을 처음 드러냈다.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축적된 경험과 자신감이 올림픽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진 것.
그러나 평창의 첫 올림픽 유치 도전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1993년부터 2006 동계올림픽 유치를 준비했지만 1997년 불어 닥친 IMF 경제위기로 꿈을 접어야 했고, 전라북도 무주와 2010 동계 올림픽 후보도시 선정을 놓고 대립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계무대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평창의 올림픽 유치 전망도 그리 밝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평창의 저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북한의 지지까지 얻어낸 평창은 여세를 몰아 1차 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51표를 얻은 평창은 40표를 얻는데 그친 캐나다의 밴쿠버를 압도하면서 기적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결집은 상상 이상이었다. 결선 투표에서 유럽국 가들이 밴쿠버에 표를 몰아주면서 평창은 단 3표 차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평창은 포기하지 않고 2004년 재도전을 선언하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무주가 4년 전 ‘2010 올림픽 유치 시 우선권을 준다’는 합의서를 내세워 반발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무주가 국제대회 유치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일단락됐다.
2007년 2월 시행된 현지 실사에서도 최고점을 받은 평창은 시민들의 지지도와 정부 지원 등 모든 여건에서 경쟁 도시를 앞서면서 유치에 대한 기대감도 최고조로 달했다. 평창 시민들은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 승리의 축배를 들 준비를 하면서 긴장감 속에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유럽세는 또다시 평창에 좌절과 눈물을 안겼다. 2007년 7월 과테말라에서 열린 총회에서 러시아의 소치에 개최권을 넘겨준 것. 1차 투표에서는 2표 차로 앞섰지만, 결선투표에선 4표 차로 역전 당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도전이다. 평창은 지난 세 차례의 도전 과정에서 무려 1000억 원의 비용을 쏟아부었다. 정부와 강원도, 후원 기업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고, 평창 시민을 비롯한 전 국민의 뜻이 하나로 모아졌다.
또 6일 오후 열리는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피겨여왕’ 김연아, 입양아 출신 미국 국가대표 스키선수 토비 도슨 등 대한민국에서 동원할 수 있는 카드를 총동원하고 있다.
이번에도 가장 유력한 개최 후보로 거론되는 평창이지만, 걸림돌은 역시 유럽의 견제다. 과연 평창은 높은 유럽세의 벽을 뚫고 개최권을 따낼 수 있을까, 전 세계의 이목이 IOC 총회가 열리는 남아공 더반으로 향하고 있다. [데일리안 스포츠 = 이한철 기자]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