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의 눈물, 한국의 아빠들은 알고 있나요"

입력 2010.05.05 07:29  수정

<김건표의 행복초대석>코피노의 대부,박기섭 63투어 대표

“무책임한 한국 관광객, 코피노를 세상밖으로 꺼내 놓았다”

아버지를 모르는 코피노가 더 이상 필리핀에서 태어나질 않기를 바란다는 필리핀 교민 박기섭씨

필리핀 유학 1세대 박기섭 씨(43). 그는 지난 1992년 필리핀 유학길에 올랐다. 공부를 마치면 비행기에 몸을 싣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고국을 생각할 무렵, 그는 필리핀 생활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가족들을 필리핀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가이드를 시작하면서 필리핀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필리핀에서 잘 알려진 휴양지를 주로 찾는다. 관광객 수천여 명이 그가 안내해 주는 곳으로 움직였다. 한번 그를 찾은 관광객은 그를 신뢰했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을 필리핀에서 버텼다. ‘63투어’의 대표라는 삶의 훈장이 하나 달렸다.

필리핀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도 빈민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관광객은 이곳을 지나면서 그에게 빈민촌에 대해 묻지만 말이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그는 짬이 나면 필리핀 빈민촌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코피노(코리안과 필리피노의 합성어로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 들을 만난다. “제 잘못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직접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지만요. 고국인 한국에서 온 일부 관광객들이 무책임하게 코피노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 놓았으니까요.”

필리핀 정부에서 파악하는 코피노 인구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없다. 대략 1만5000명 이상이 될 것이라는 추산이다. 그는 아버지를 모르는 코피노가 더 이상 필리핀에서 태어나질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는 코피노 자녀를 둔 필리핀 여성들은 대부분 싱글맘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코피노들을 보면 참담하다는 생각뿐입니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어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필리핀 여성들 일부가 업소에서 일하다가 한국 남자를 만나서 임신하게 되고 아기가 태어나면 대다수 한국남자는 무책임하게 떠납니다.”

“그게 문제인겁니다. 필리핀이나 고국에서 코피노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가는 한국남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필리핀 여성들은 대부분 싱글맘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 분유 값이라도 벌려고 다시 업소를 찾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죠.”

그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그와 차를 타고 시내에서 멀지 않는 곳으로 달렸다.

필리핀 최대의 빈민촌이 눈앞에 펼쳐졌다. 퀴죤시내에서 20분정도 차로 달리면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악취들이 코를 찔렀다.

틈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벽면들은 집들이 뒤엉켜 있고, 그 틈을 비집고 튀어나온 햇빛은 뒤엉켜져 빨래 줄들이 널려있는 옷가지들을 집어 삼킬 정도로 감싸고 있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틈을 비집고 나온 벽면을 통해 하늘을 보면서 자란다. 햇빛을 올려다보는 것이 희망이 된지 오래다.

미적지근한 날씨가 한쪽 모퉁이로 아이들을 내몬다. 몰려나온 아이들은 윗옷을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동네를 활보한다. 그게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이다. 유독 한 아이가 눈들어왔다. 한국 사람을 닮았다. 누군지 물었더니 코피노라고 한다. 그 옆에서 갓 태어난 코피노를 가슴에 안고 입속으로 우유를 힘겹게 넣어주는 필리핀 여성도 눈에 들어왔다.

이 여성은 아이 두 명을 나았지만 다들 코피노가 됐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모유는 나오질 않습니다. 대부분이 분유를 먹이는데 이곳 빈민촌에서는 분유 값 대기도 힘듭니다.”

통역을 해달라고 김 대표에게 부탁을 하곤 물었다. “아이의 아빠는 이곳 생활을 알고 있나요?” 마리델(28)이라는 이 두 코피노 아이의 엄마는 가슴에 안고 있던 아이를 7살 터울인 첫째 아들에게 업고 있으라 눈짓하곤 답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살아간다는 게 힘들어요.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남자친구는 한국으로 떠났어요. 그때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어요. 사랑한다고 했고, 절 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거짓말이었던 거죠.”

이 마리텔이라는 필리핀 여성은 그때부터 코피노 아기를 힘들게 키웠다. 삶에 무게를 혼자 견디지 못하자 아이들 생활 때문에 유흥업소를 다시 찾았다. 그곳에서 한국남성을 만나서 사랑에 빠져 둘째 아이를 임신했는데 그 사람마저도 그를 버리고 필리핀을 떠났다.

그는 종종 빈민촌의 코피노 가정들을 방문해 분유와 일정금액의 생활비를 건넨다
“적어준 주소로 몇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연락이 안됐어요. 알고 있던 전화번호도 다 바뀌었고요. 아이가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냥 눈물만 흘립니다.”

한국남성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의 나이는 19세였다. 둘째 코피노 아이를 낳고는 20대 중반이 넘어섰다.

“아이들을 위해서 돈을 벌려고 해도 이제는 받아주는 곳이 없어요.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이 빈민촌에서만 50여명에 가까운 코피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필리핀에서의 혼혈인과 다문화 가정은 사회적으로 크게 민감하지가 않다.

필리핀이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온 탓도 있다. 스페인, 미국, 일본, 중국계 혼혈인들 다수가 필리핀에서는 부유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필리핀에서 살아가는 다수의 혼혈인들은 부모가 그 옆을 지킨다. 그러나 코피노들의 사정은 다르다. 코피노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존재감은 없다. 그런 만큼 필리핀 현지의 아이들에게도 코피노들은 놀림감이 된다.

박 대표가 차로 달려가 능숙한 솜씨로 분유통을 내렸다. 그러고는 빈민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코피노 가정들을 방문하고 분유와 일정금액의 생활비를 건넸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묻자 그가 “필리핀이 20년 세월을 버티게 해줬는데 저도 이제는 보상을 해야죠”라고 답했다.

“서로가 무책임한 거죠. 필리핀을 찾은 일부 한국인들이 필리핀 여성들을 한순간의 상대로만 생각한 겁니다. 일부 잘못된 생각은 갖고 있는 한국 남성들이 필리핀 여성과 동거를 합니다. 필리핀에서는 낙태가 금지돼 있어서 더 많은 코피노들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코피노 1세대들이 이제 필리핀 사회로 나갈 나이가 됐다. 박 대표는 그런 만큼 그들이 필리핀 곳곳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적으로도 부각돼 이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필리핀 교민 사회는 코피노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코피노 재단 등을 설립해서 코피노들을 도우고 있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코피노에 대한 정확한 인구통계를 파악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제는 코피노에 대한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대책이 시급한 때입니다. 교민사회와 개인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이제는 필리핀과 우리 정부, 민간단체에서도 코피노들의 지원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시내 한가운데를 걸었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그가 생수 한 병을 건넸다. 몇 발자국도 움직이기 전에 생수 한 병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책임지지 못할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리핀과 우리정부,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현재 있는 코피노 가정을 더욱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코피노도 우리의 아이들 아닙니까?”

시내 한곳에 있는 공원으로 들어서며 얘기를 이어갔다. “필리핀 여성들이 착합니다. 코피노를 둔 필리핀 여성들은 떠나버린 아이의 아빠를 원망도 하지만 대부분 자기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편이에요. 그게 더 가슴 아프죠.”

필리핀을 찾는 관광객들은 연 50만~60만 정도로 추산된다. 그의 고객 대다수는 필리핀에서 살아가는 교민들이다. 그는 그들에게 필리핀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항공권, 호텔, 비자관련업무, 부동산 등의 컨설팅업무를 해주면서 코피노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관광객들이 꼭 알아둬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필리핀을 후진국이라고 생각하고 필리핀인들을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 등은 더 삼가 주셔야 해요.”

공원을 나서면서 그는 계속 코피노 아이들이 마음에 걸리는지 “개인이나 작은 단체차원에서도 코피노 가정을 선별해서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뜻있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필리핀 현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글학교, 태권도교육 등을 더욱 활발하게 여는 등 코피노들이 무료로 이용 할 수 있는 지역 센터를 늘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아빠 없는 코피노는 없어야 합니다. 이들 코피노가 필리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한국 어딘가에 계실 아빠들이 꼭 한번 보셔야 됩니다.”

글/김건표 대경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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