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스텝보다 ‘마이클 잭슨’ 떠올리다

이충민 객원기자 (robingibb@dailian.co.kr)

입력 2009.12.01 14:56  수정

[집중분석]변화무쌍한 김연아 스텝

‘죽음의 무도’ 현란한 스텝에 담긴 비밀?

‘피겨퀸’ 김연아(19·고려대)는 점프도 잘하지만 스텝도 화려하다.

2009 세계선수권 쇼트프로그램 ‘죽음의 무도’에서 뽐낸 현란한 스텝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했다. 마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로 대변되는 무하마드 알리의 변화무쌍한 풋워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세계선수권을 중계했던 유로 스포츠 러시아 중계 캐스터와 해설자도 입을 다문 채 김연아의 스텝에 매료됐다. 김연아의 스텝은 현역 선수들과 차원이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다.

캐스터는 “저 화려하고 변화가 심한 스텝을 보라. 내 기억으로는 바로 저런 스텝을 제냐(2006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예브게니 플루셴코의 애칭)가 보여줬다. 이것이 진짜 프로”라며 극찬한 바 있다.

이에 질세라 해설자도 “저 스텝은 외워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일까”라고 반문하며 “잘은 몰라도 김연아는 뭔가 내적인 감각으로 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연아가 지난 시즌 ‘죽음의 무도’ 편에서 보여준 스텝은 레벨 3이었다. 세계선수권에서 이 직선스텝시퀀스로 기본점수 3.3에 가산점 1점을 합쳐 무려 4.3이나 챙겼다.

마이클잭슨과 백댄서들이 특수제작한 구두와 무대장치로 지구중력을 버티고 있다.

김연아는 최대한 안쪽으로 기울인 스케이트 날에 몸 전체를 맡긴 채 낮은 중심축으로 변화무쌍한 스텝을 밟는다.

마이클잭슨 ‘린’이 떠오른 김연아 안무

김연아가 ‘죽음이 무도’에서 보여준 동작들 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마이클 잭슨의 안티 그래버티 린(이하 린)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안무가 바로 그것.

김연아는 ‘죽음의 무도’ 시작 점프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 콤비네이션을 소화한 직후, 왼팔 팔꿈치를 절도 있게 가로로 저은 뒤 이 안무를 소화했다. 양쪽 스케이트 날을 일자로 벌린 채 몸을 앞으로 심하게 기울이는 ‘중력무시’ 자세를 연출한 뒤, 미끄럽게 원을 그리며 턴한 것이다.

이 장면은 마이클잭슨의 ‘스무스 크리미널’ 뮤직 비디오에 나온 ‘린’ 안무와 매우 흡사하다.

마이클 잭슨의 ‘린’도 몸을 앞으로 심하게 기울이는 춤으로 지구 중력의 압도적인 힘을 버틴다. 물론, 이 춤의 비밀은 린 안무를 위해 특수 제작한 신발과 무대장치에 있다.

그러나 김연아는 이 안무를 평범한 스케이트만 신고 보여줬다. 김연아가 특수제작하지 않은 구두를 신고 중력 버티기 동작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스케이트를 신고 있기 때문. 스케이트 날을 눕혀 옆으로 미끄러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력을 무시할 수 있었다.

오토바이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멈춘 오토바이를 기울이면 오토바이는 당연히 중력에 의해 넘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토바이 경주대회에서 오토바이를 옆으로 심하게 눕힌 채 코너링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나가는 힘이 있기에 가능하다.

또한 ‘원심력’에 의해 몸이 중심축에서 튕겨져 나가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몸을 오토바이가 누운 방향으로 최대한 기울여야 한다. 중심축을 아래에 놓고 깊숙한 코너링을 시도해야만 사고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연아가 마이클잭슨의 특수 제작한 구두 없이 중력무시 안무가 가능한 또 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연아는 오토바이 전문 경주자들처럼 안쪽이든 바깥쪽이든 심하게 기울인 스케이트 날 방향으로 몸 전체를 자주 맡긴다. 덕분에 깊은 스케이트 날과 중심축 낮은 동작으로 변화무쌍한 방향전환, 더 현란한 스텝동작을 창조해 낼 수 있다.

이것은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영역이기도 하다. 김연아를 제외한 현역여자피겨선수들 중 누가 스케이트 날을 심하게 기울이면서 스텝에 극심한 변화를 주는 모험을 감행할까. 안무 도중 넘어지기 싫다면 스케이트 날 기울기를 중립 가까이 놓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마이클잭슨의 린 안무가 떠오르는 김연아의 변화무쌍한 스텝, 그 숨은 비결에 오토바이 경주자들과 같이 원심력을 통제하는 힘과 지혜, 도전 정신이 녹아있다. [데일리안 = 이충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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