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초연 [현장]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11.04 08:08  수정 2026.11.04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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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하 작가 웹툰 원작…옴니버스 구조 대신 간호사 정시나에 초점

25곡·7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11월 22일까지 이화여대 삼성홀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형 뮤지컬 지원사업’ 시범공연 선정작

웹툰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지난달 31일 개막해 초연 무대에 올랐다.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형 뮤지컬 지원사업’의 시범공연 선정작이다. 올해 3월 시작한 이 사업은 5월 심의에서 낭독공연 30편과 시범공연 8편을 선정했다.


박명우 프로듀서는 3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한 집 건너 마음이 아픈 분이 계시고, 그 곁에서 함께 무너지는 가족도 분명히 있다”고 무대화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 이야기를 공연으로 한 번은 꺼내 놓고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에이엠컬처

원작은 이라하 작가의 동명 웹툰(위즈덤하우스)으로, 작가가 정신병동에서 6년여간 간호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뮤지컬은 정신건강의학과 간호사 정시나가 환자들을 돌보다가 자기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아끼던 환자가 퇴원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하자 충격을 받은 시나는 낯선 병동에서 눈을 뜨고, 자신 역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극본·가사는 김수아, 연출은 진영섭, 작곡은 김희은·정수윤이 맡았다.


진영섭 연출은 우리 모두가 정상과 비정상 사이 어딘가를 살아가는 경계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작품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특정한 누군가를 겨냥하기보다 간호사 한 사람이 어떻게 다치고 또 어떻게 회복해 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청소년부터 부모 세대까지 지금을 사는 관객 모두와 회복과 연대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각색은 원작과 구조를 달리했다. 여러 환자의 사연을 옴니버스로 엮은 웹툰과 달리, 뮤지컬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인 시나를 중심축에 세웠다. 김수아 작가는 “웹툰은 여러 환자의 사연을 우화처럼 풀어내지만, 뮤지컬은 무대의 언어와 구조에 맞게 새로 짰다”며 “매일 성실하게 살던 시나가 아프고 또 이겨내는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모습에 무게를 뒀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에이엠컬처

무대는 실제 병동을 재현하는 대신 빛과 선, 그림자로 만든 추상적인 공간으로 꾸몄다. 1막의 ‘하얀병원’은 시나의 기억과 환상, 불안이 뒤섞인 공간으로, 같은 인물이 현실과 환상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2막에서는 환상이 걷히고 현실의 병동이 드러나는데, 극 내내 병동을 비추던 냉백색 조명은 마지막에 따뜻한 빛으로 바뀌어 객석까지 번진다.


음악은 25곡으로, 7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오프닝 넘버 ‘아무튼, 굿모닝’은 밝고 빠른 곡이지만 시나의 불안과 긴장을 함께 담았고, 같은 선율이 이후 다른 감정으로 변주된다. 시나와 도현, 부기, 이오 등 인물마다 다른 음악적 색채를 부여한 뒤 후반부에 이들의 목소리를 앙상블로 모으는 구성이다.


김희은 작곡가는 환자들을 어둡게 그리지 않는 데 신경을 썼다며 “저마다 사연은 있지만 듣는 사람이 아프게만 받아들이지 않도록 여러 색깔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안무 역시 이야기의 무게를 덜어내는 쪽에 맞췄다. 유민영 안무감독은 “감정적으로 무거운 작품인 만큼 동작은 단순하고 밝게, 유쾌하게 짰다”며 “환자들이 겪는 불안과 혼란은 움직임의 속도를 바꾸거나 시차를 두는 방식으로 드러냈다”고 말했다.


뮤지컬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에이엠컬처

정시나 역의 유주연은 “시나는 남을 돌보던 사람에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된다”며 “스스로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극 중 ‘아파요, 도와주세요’라는 대사를 꼽으면서 “힘든 순간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혼자서는 이겨내기 어려워도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시나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같은 역의 최태이는 “지금 사람들도 여전히 아픔과 불안을 품고 산다”며 “내일에 대한 희망과 바라는 것들이 용기로 바뀔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김도현 역의 정동화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산다’보다 ‘살아낸다’는 말이 더 어울릴 만큼 하루하루가 치열하다고 했다. 그는 “화려한 말보다 관심과 이해, 배려, 용기, 희망, 사랑 같은 소박한 것들이 필요한 때”라며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고부기 역의 최민우는 작품의 메시지를 길게 풀어 설명하는 대신 극 중 가사 ‘이젠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를 들었다. 그는 “들을 때마다 울컥하는데, 이 말이 곧 우리 작품의 메시지 같다”며 “잘하고 있고 지금 가는 길이 헛되지 않다는 것, 힘들고 무너질 때도 있지만 내일 또 아침이 오니 다시 힘내자는 말이 우리가 듣고 싶은 위로”라고 덧붙였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22일까지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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