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단 "국정원 문건 확보"…신규성·명백성 입증 관건
항소심·대법원서 이미 다뤄진 쟁점인데…개시 문턱 높아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변호인단이 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법원청사 앞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한 확정판결의 재심을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관련 외국환거래법 위반 확정판결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법원의 개시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변호인단은 국정원 문건 등 새로운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하지만 핵심 쟁점 상당수가 이미 확정재판에서 다뤄져 실제로 재심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심은 확정된 유죄 판결의 사실인정을 다시 심리하는 예외적인 비상구제절차다. 이 전 부지사 측이 제시한 법적 근거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다.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자에게 무죄·면소나 형 면제, 또는 원판결보다 가벼운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경우에 한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2009년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이 요건을 '신규성'과 '명백성'으로 엄격히 구분하며 두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만 재심을 열 수 있도록 정했다.
'신규성'은 확정판결 당시 재판부에 제출된 적이 없는 증거여야 할 뿐 아니라 당시 피고인 측이 주의를 기울였어도 발견하거나 제출할 수 없었던 부득이한 사정이 입증돼야 인정된다. 제출하지 못한 데 과실이 있다면 존재 자체를 새로 알게 됐더라도 신규성이 부정된다.
'명백성'은 새 증거 단독이 아닌 기존 유죄 증거와 함께 놓고 비교할 때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지를 뜻한다. 새 증거가 들어옴으로써 종전 유죄 판단의 신빙성이 깨져 기존 판결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고도의 개연성'이 증명돼야 하는 구조다. 단순 판결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수준만으로는 재심 개시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변호인단이 새로 들고 온 자료는 북한 인사 리호남의 병원 치료 기록이 담긴 국정원 문건이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은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리호남에게 방북 비용 70만 달러를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당시 리호남은 필리핀 입국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상태였다"며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있다.
다만 '리호남 부재론'은 앞서 이 사건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이미 다뤄진 쟁점이다. 당시 재판부는 공식 초청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김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변호인단이 제시한 '병원 치료' 자료가 신규성을 인정받으려면 당시 국정원이 보유했던 해당 정보를 확정재판 당시에는 입수할 수 없었던 사정부터 증명해야 하는 셈이다. 나아가 해당 문건이 김 전 회장의 진술을 물리적으로 무너뜨릴 만큼 명백한 알리바이가 되는지까지 입증해야 재심 문턱을 넘을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기존 재판에서 판단이 완료됐거나 이미 제출된 자료와 겹쳐 '명백성'도 인정받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항소심은 쌍방울의 주가 상승 기대감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이 전 부지사의 요청에 따른 대납 동기로 판단했고 대법원 역시 검사의 사전면담을 거친 증인들의 법정 진술 신빙성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리호남이 주가 부양 수익금을 남한 상품권으로 교환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국정원 문서는 변호인단이 이미 기존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했던 자료다.
변호인단은 뇌물수수 및 증거인멸교사 혐의에 대해서는 공작·조작을 입증할 명백한 증거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며 이번 청구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전체 확정 혐의 중 일부 대북송금 건으로만 재심 대상이 좁혀지면서 설령 개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유·무죄 판결 자체를 크게 뒤집기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기존 재판에서 이미 다뤄졌거나 제출된 국정원 문건 정도로는 유죄 판결을 무너뜨릴 명백성을 인정받기 어려워 보인다"며 "향후 관련 수사 상황에 따라 추가 재심을 청구한다는 방침인 것 같은데 이번에 재심이 개시되더라도 대상은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에 국한된다"고 짚었다.
한편 변호인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재심 개시를 자신하면서도 리호남의 병원 소재지나 치료 기간, 정보 출처 등 세부적인 서증 내역은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 법원은 변호인단이 제출할 서류 검토를 거쳐 최종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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