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콘텐츠 넘기다 지쳤나…롱폼·팟캐스트로
출퇴근부터 잠자리까지…일상에 스며든 목소리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출근 준비를 서두르던 직장인 김시우(30·가명)씨가 현관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빠뜨린 이어폰을 찾기 위해서다. 휴대전화의 '나의 찾기' 기능을 실행하자 책상 위에서 익숙한 소리가 울렸다. 씻는 것도 건너뛴 아침이지만 이어폰만큼은 챙겨야 했다.
지하철에 올라타면 출근길의 또 다른 일과가 시작된다. 전날 올라온 팟캐스트를 확인하는 일이다. 유튜브에서 재생할 영상을 고르지만 정작 화면을 볼 생각은 없다. 이어폰으로 수십 분에서 한두 시간씩 이어지는 대화를 듣는다.
누군가는 같은 시간 숏폼 수십 개를 넘겨본다. 김씨는 대화 하나를 길게 듣는다. 짧고 강렬한 영상에 익숙한 2030의 취향이 꼭 짧은 영상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출퇴근길이나 식사 시간에는 긴 이야기를 고르고 잠들기 전에는 잔잔한 목소리를 찾는다. 이럴 때 유튜브는 라디오에 가깝다.
짧아서 편한 줄 알았는데…화면 넘기는 것도 일
"숏폼은 계속 손가락을 넘겨야 해서 피곤한데, 롱폼은 밥 먹을 때 한 번 틀어놓으면 끝까지 신경 안 써도 돼서 편해요."
직장인 이준영(29·가명)씨가 긴 영상을 찾는 이유는 편리함이다. 식사하면서 짧은 영상을 잇달아 넘기는 대신 긴 콘텐츠 하나를 골라둔다. 이씨가 말하는 피로감은 화면을 반복해서 조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있다.
짧은 영상은 금방 끝난다. 그때마다 다음 영상을 넘겨야 한다. 식사 중이라면 수저를 쥔 손이 휴대전화로 향한다. 이씨는 긴 영상 하나를 틀어놓는 편이 낫다고 느낀다. 영상의 길이가 길수록 손이 덜 가는 셈이다.
데일리안이 20~30대 50명에게 롱폼 이용 이유를 복수응답으로 물은 결과 38명(76%)이 식사·샤워·청소 등 다른 활동을 하면서 배경음으로 활용한다고 답했다.
깊이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는 응답은 29명(58%), 숏폼의 피로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응답은 21명(42%)이었다.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나 아이돌에 대한 팬심과 친밀감은 17명(34%), 잠들기 전 틀어놓는 용도는 14명(28%)이 꼽았다.
긴 영상을 즐긴다고 그 시간 내내 화면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김 는 지하철에서 듣고 이씨는 밥을 먹으며 틀어둔다. 두 사람에게 롱폼은 따로 시간을 내서 감상하는 콘텐츠이기 전에 다른 일을 하면서도 즐길 수 있는 이야기다.
버스 안에서 한 승객이 무선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데일리안 어윤수 기자
잠들기 전에는 토크쇼…자극보다 잔잔한 대화
가장 즐겨 보는 롱폼 장르로는 22명(44%)이 웹예능·토크쇼를 꼽았다. 지식·교양·다큐멘터리가 12명(24%), 일상 브이로그가 8명(16%)으로 뒤를 이었다. 게임·스트리밍 전체 영상과 제품 리뷰·비평은 각각 4명(8%)이었다.
대학생 최수현(24·가명)씨는 잠자리에 들 때 잔잔한 토크쇼나 브이로그를 고른다. 최씨는 "자기 전에 유튜브를 켜놓는데 숏폼은 너무 자극적이라 잠이 깨고, 롱폼으로 잔잔한 토크쇼나 브이로그를 틀어두는 게 잠이 잘 온다"고 전했다.
최씨가 원하는 것은 길이뿐 아니라 분위기다. 긴 영상이라도 자극적인 내용이라면 잠들기 전 찾을 이유가 없다. 이씨가 화면을 넘기는 행동에 피로를 느낀다면 최씨는 콘텐츠의 자극을 줄이고 싶어 한다.
토크쇼에서는 출연자들이 질문에 답하고 서로의 경험에 말을 보태며 대화를 이어간다. 브이로그에는 한 사람의 일상과 그에 대한 설명이 담긴다. 화면을 지켜보지 않는 순간에도 목소리와 생활 소리는 이어진다.
이렇게 틀어두는 영상은 일종의 '백색소음' 역할을 한다. 정확히는 사람의 말과 생활 소리가 섞인 배경음이다. 모든 장면을 챙겨보지 않아도 되고 잠깐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도 된다. 최씨는 그중 잔잔한 이야기를 잠자리의 배경으로 고른다.
혼자 먹는 밥에도 대화가 필요하다
식사할 때 틀어놓는 영상에 '밥친구'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화면 속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말과 웃음소리가 식사에 함께한다. 아무 소리 없는 방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청취형 콘텐츠를 이야기할 때 외로움과 적막도 빼놓기 어려운 이유다.
팟캐스트형 콘텐츠는 출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이다. 일상적인 경험부터 경제와 문화 등 특정 주제에 대한 설명까지 소재도 다양하다. 질문에 답하고 다른 출연자가 말을 보태는 과정이 긴 대화를 만든다.
짧은 영상에 담기 어려운 설명을 찾아 롱폼을 선택하기도 한다. 직장인 박현우(35·가명)씨는 "깊이 있는 정보를 알고 싶을 땐 숏폼으로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누군가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식사에 곁들일 대화가 필요하다. 유튜브를 켜는 순간마다 원하는 것이 같지는 않다. 짧은 영상을 연달아 넘기는 일상에도 하나의 이야기를 느긋하게 듣는 시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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