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도 LP 듣고 필름카메라 든다…뉴트로를 고르는 2030 [Now 2.30]

박상준 기자 (psj96@dailian.co.kr)

입력 2026.10.30 07:02  수정 2026.10.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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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과 트렌드 속에서 발견하는 옛 것의 매력

SNS에서 취향 발견·공유…디지털 일상에 스며든 뉴트로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판교의 한 스타트업(신생벤처)에서 웹 디자이너로 일하는 김유민(33)씨의 하루는 온갖 첨단 기술과 함께 시작된다. 눈을 뜨면 스마트폰의 인공지능(AI) 에이전트가 당일의 일정을 정리해 보여준다. 업무 중 막히는 문제가 생기면 생성형 AI에 질문을 던지고 점심값은 손목의 스마트워치를 갖다 대 결제한다. 퇴근길에는 AI 에이전트에게 "OO 카페로 가는 택시를 잡아줘"라고 지시한다. 요금은 당연히 자동 결제다.


그런데 그렇게 도착한 카페는 아날로그 감성을 전면에 내세운 공간이다. 스피커에서는 LP 음악이 흘러나오고, 테이블에는 종이책과 손글씨를 쓸 노트가 놓여 있다. 예약한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읽던 페이지 귀퉁이를 펼치고, 마음에 남는 문장은 노트에 옮겨 적는다.


2주에 한 번쯤 이곳을 찾는다는 김씨는 "평소에는 정보의 바다에서 산다. 편리한 기술을 동원해서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다 보면 가끔 이 공간이 절실해진다"며 "여기서는 책을 몇 쪽 읽었는지, 뭘 해냈는지 따지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는 테이블 한쪽에 뒤집어 놓는다. 다만 돌아가기 전에는 읽은 책과 공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그날의 여유를 기록하는 공간은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다.


김씨가 즐기는 것은 잠깐의 휴식만이 아니다. 스트리밍 대신 LP로 음악을 듣고 화면 대신 종이를 펼치는 경험에도 취향이 담긴다. 오래된 매체를 즐기되, 그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할 때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다. 옛것을 오늘의 생활에 맞게 받아들이는 '뉴트로'의 한 장면이다.


뉴트로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취향은 아니다.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말로 옛 것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재해석해 즐기는 흐름을 뜻한다. 2018년 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주요 소비 트렌드로 선정되는 등 2010년대 후반부터 주목받았다. 과거를 추억하는 데서 나아가, 자신에게 낯선 옛 물건과 문화를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 관심은 필름카메라와 LP, 오래된 공간과 놀이 등 여러 취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청년들이 이를 찾는 이유도 저마다 다르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쉬고 싶은 사람도 있고, 물건을 직접 다루거나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이 좋은 사람도 있다. 같은 옛 물건이라도 지금의 생활에서 발견하는 재미는 다른 셈이다.


뉴트로로 대표되는 아이템인 필름카메라로 찍은 공원의 정경.ⓒ김호준씨 제공
같은 옛것, 다른 즐거움…일상에 녹아드는 뉴트로

업무에서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정확히 따라가야 하는 김호준(31)씨는 취미에서는 그 책임을 잠시 내려놓는다. IT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그의 취미는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김 씨는 "조금 틀려도 초점이 나가도 괜찮다"며 "그런 지점이 더 자유롭고 재밌다"고 말했다.


시작은 실용적이었다. 사진에 관심은 있지만 비싼 카메라를 새로 사지 않고 즐기고 싶어 집에 있던 물건을 꺼냈다. 지금 사용하는 자동 필름카메라 '신도리코 SR-10D 줌'도 거실 서랍장에서 찾은 어머니의 물건이다.


몇 년 전 록페스티벌에서 찍은 사진은 필름 촬영의 재미를 보여줬다. 사람들도, 카메라를 든 자신도 움직이는 탓에 초점이 흔들렸다. 선명한 사진을 기대했다면 실패였겠지만, 나중에 받아 본 결과물에는 오히려 공연장의 역동성이 담겼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얻는 우연이 필름 촬영을 계속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재미는 촬영 뒤에도 이어진다. 필름을 맡길 현상소를 찾아가고 며칠 뒤 스캔본을 받아 보는 과정까지 취미에 포함된다. 그는 "원하는 사진을 얻었는가 아닌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그보다는 경험에 더 의미를 둔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도 여전히 쓴다. 길을 걷다 눈에 들어온 풍경은 스마트폰으로 담고 주말 나들이에는 필름카메라를 챙긴다. 필름 사진은 스캔본을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에 게시할 사진을 고르며 거듭 들여다본다. 한 롤에 많아야 36장 남짓인 장면들이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항구의 노을을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 빛 번짐이 선명히 남았지만 이조차 필름카메라의 우연성이라는 설명이다.ⓒ김호준씨 제공

4년째 LP를 모은다는 윤정아(31)씨에게 옛 매체의 매력은 음악을 듣는 시간에 있다. 신입사원 시절 회식 후 우연히 들른 LP바에서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와 빌 위더스의 'Just the Two of Us'를 들은 것이 계기였다. 그날의 음색이 마음에 남아 가게를 다시 찾았고, 집에 턴테이블도 들였다. 지금은 작은 책장 하나를 LP로 채울 정도다.


윤씨는 "이동 중이거나 평상시에는 여전히 스마트폰과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만,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가지고 싶을 땐 하던 일도 전부 내려놓고 LP를 재생하곤 한다"고 말했다.


듣는 즐거움에 취향을 표현하는 재미도 더해진다. 그는 "솔직히 LP를 듣기만 하는 것도 매력 있지만, LP로 꾸며진 내 방을 자랑하고 LP를 즐기는 '엔틱한' 내 모습을 올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며 "또 SNS를 통해 레트로 취향에 맞는 아이템을 새롭게 발견하고 내 지난 취미를 기록해 둘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옛 물건에서 찾는 오늘의 위안…경험하고 공유하는 취향

청년층이 실제로 아날로그 매체를 접하는 모습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올해 3월 전국 만 19~59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 이내 필름카메라 현상소를 방문했다는 응답은 20대 13.6%, 30대 7.2%였다. 40대는 4.8%, 50대는 2.0%였다. 레코드숍 방문 경험도 20대 17.2%, 30대 10.4%로 40대 8.0%, 50대 3.6%보다 높았다.


디지털 공간은 이런 취향을 발견하고 나누는 통로로 쓰인다. 같은 조사에서 SNS·유튜브를 통한 필름카메라·아날로그 사진 관련 콘텐츠 소비 비율은 20대 41.6%, 30대 30.0%였다.


ⓒ데일리안 DB

특히 온라인에서 옛것을 향한 관심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KPR 인사이트연구소가 올해 6월 공개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레트로 감성 관련 온라인 언급량은 2023년 6월~2024년 5월 12만6689건에서 2025년 6월~2026년 5월 18만3168건으로 약 44.6% 늘었다.


연구소는 관심의 내용에 변화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앞선 기간에는 빈티지 스타일과 LP 등 매체에 관한 표현이 두드러졌다면, 최근에는 위로와 공감 등 감정에 관한 표현이 부상했다. 옛것의 외형을 즐기는 데서 나아가, 이를 통해 얻는 정서적 경험에도 의미를 부여한다는 해석이다.


옛것을 고르는 이유가 반드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서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필름을 현상해 기다리는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LP 한 장에 집중하는 시간이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된다. 빠르고 편리한 기술이 일상이 된 시대에도 취미에서 원하는 것까지 모두 같지는 않다. 2030은 그렇게 오래된 물건에서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재미와 여유를 찾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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