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마저 바쁘긴 싫어요"…'느린 여행'에 빠진 청춘들 [NOW 2.30]

송오미 기자 (sfironman1@dailian.co.kr)

입력 2026.10.29 07:01  수정 2026.10.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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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관광지 대신 소도시 찾는 청년들

동해 묵호·日히로시마·시즈오카 등 취향도 세분화

많이 보는 것보다 경험·충전·치유에 초점 맞춰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도쿄와 오사카 등 일본의 대도시는 이미 여러 차례 다녀왔어요. 이번 휴가에는 조금 색다른 곳을 경험하고 싶어 산골 마을 시라카와고와 다카야마 온천을 찾았습니다. 분주한 도시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한적한 풍경을 즐기고, 온천에서 쉬며 여유를 만끽하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남기는 재미가 컸다면, 이제는 낯선 동네를 천천히 거닐고 그곳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 훨씬 더 기억에 남더라고요." (직장인 최아현·여·37)

2030 세대의 여행 공식이 바뀌고 있다. 유명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빠르게 많은 곳을 둘러보며 인증샷을 남기는 여행'에서 벗어나 사람이 덜 붐비는 고즈넉한 소도시를 찾아 '천천히 머무는' 여행이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모습이다.


치열한 경쟁과 속도전에 지친 청년들이 여행에서만큼은 자신만의 속도를 찾으려는 데다, 여행이 일상화하면서 개인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목적지를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유명 관광지를 여러차례 경험한 여행객들이 익숙한 명소를 벗어나 지역 고유의 풍경과 일상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덜 붐비는 곳 찾아 떠난다…히로시마·시즈오카·미야코지마 등으로

청년들의 발길이 유명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소도시로 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강원 동해 묵호항, 충남 예산 대흥면, 경남 남해 등 지역 색채가 짙은 소도시가 대표적이다. 해외의 경우 일본 가고시마·다카마쓰·마쓰야마·미야코지마·시즈오카, 중국 윈난성(리장·다리)·산동성(웨이하이·옌타이)·후베이성(은시) 등 한적하거나 지역 특색이 돋보이는 지역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대중교통이나 편의시설은 다소 불편하지만, 지역 고유의 분위기와 고즈넉함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청년층을 끌어당기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남들과 차별화된 여행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매우 뚜렷해지고 있다"며 "특히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이색 소도시 목적지를 찾는 수요가 두드러지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은 항공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9월 제주항공 인천~히로시마 노선 탑승객은 18만40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만9000여명보다 42% 증가했다.


인천~시즈오카 노선 탑승객도 17만8000여명으로 지난해 12만6000여명보다 41% 늘었다. 인천~마쓰야마 노선 탑승객은 18만8000여명으로 지난해 16만9000여명보다 11% 증가했다. 제주항공에 따르면, 일본 중소도시 노선 탑승객은 2024년 61만여명에서 2025년 76만여명으로 늘었으며, 올해는 3분기까지 70만여명을 기록했다.


트리니티항공의 인천~사가 노선 여객수도 지난해(1~9월) 대비 올해 약 40% 증가했다. 진에어의 인천~미야코지마 노선 여객수도 작년 대비 올해 20%가량 늘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일본 소도시에 대한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며 "소도시 탑승객 중 20~30대 청년층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진에어 관계자도 "엔화 약세로 일본을 여러 차례 방문하는 여행객이 늘면서 도쿄·오사카 등 주요 도시를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 소도시를 찾는 경향이 있다"며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수요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 어달삼거리. ⓒ데일리안 독자 제공
 관광지 '도장 깨기'는 옛말…골목길 걷고 동네 식당 찾는다

"평일에는 출근 지옥철에서 시달리고 주말에는 자격증 공부로 채우다 보니 숨 쉴 구멍이 필요했어요. 여행마저 일정표대로 쫓기듯 다니면 휴가가 아니라 또 다른 노동처럼 느껴져, 이번 휴가 땐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항구 소도시 묵호에 다녀왔어요. 논골담길과 바람의 언덕,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등을 천천히 둘러보고, 소품샵에서 마그네틱과 엽서 등도 구매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묵호 간김에 옆에 인근에 있는 망상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도 걸었습니다." (직장인 김석준·남·29)

소도시를 찾는 청년들이 하는 일은 특별하지 않다. 전통시장을 천천히 둘러보고, 동네 주민들이 찾는 오래된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가게에 들어가 오랜 시간을 보내거나, 별다른 정해진 일정 없이 바닷가와 골목길을 거닌다.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기보단 자신의 컨디션과 기분에 맞춰 발길을 옮기는 식이다.


하루에 여러 관광지를 방문하는 대신 한두 곳에 오래 머물며 지역의 일상을 경험하는 데 무게를 둔다. 유명 명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과 사람, 예상치 못한 발견을 여행의 기억으로 간직하려는 것이다.


여행의 기준도 '얼마나 많은 곳을 방문했는가'에서 '무엇을 느끼고 경험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행 사진을 올려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나 인증을 위한 관광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만족과 휴식에 집중하려는 수요도 커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치열한 경쟁 속 '나만의 속도'로…여행 경험 축적에 따른 취향 세분화

청년들이 추구하는 느린 여행은 단순한 관광 형태의 변화를 넘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고 '나만의 속도(Pace)'를 되찾기 위한 자기돌봄의 과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예전에는 청년들이 패키지 여행을 많이 선택했지만, 요즘에는 개별여행으로 많이 넘어간 상태"라며 "빡빡하게 짜여진 일정으로 정신없이 여행을 다니기 보다는 여유롭게 본인의 속도에 맞게 여행을 다니며 '자기 치유'를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이 일상화하면서 목적지와 경험을 선택하는 기준이 다양해진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해외여행이 특별한 연례행사에 머물지 않고 비교적 익숙한 여가 활동으로 자리 잡으면서,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정 교수는 "기성세대에 비해 젊은 사람들은 여행이 일상화된 측면이 있다"며 "처음 파리에 가면 에펠탑을 찾지만, 그 다음 방문 땐 파리 현지인처럼 일상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듯이, 여행 경험이 쌓이면서 남들이 다 가는 유명지 대신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가 반영된 소도시로 목적지가 세분화되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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