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서 연령 제한으로 수술 못 받아…한국행 결심
30세 딸의 간 기증으로 17시간 생체간이식 성공
“한국서 얻은 새 생명으로 어려운 이웃 도울 것”
마르코 씨와 딸 킴벌리 씨가 귀국을 앞두고 지난 21일 서울아산병원 신관 옥외정원에서 간이식·간담도외과 의료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기원·문덕복 교수, 기증자인 딸 킴벌리 씨, 수혜자 마르코 씨, 이승규 석좌교수. ⓒ서울아산병원
간경화가 악화돼 간이식이 필요했지만 현지에서 수술받기 어려웠던 60대 미국인 자선사업가가 한국에서 딸의 간을 이식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미국과 페루를 오가며 어려운 이웃을 도와온 그는 서울아산병원에서 17시간에 걸친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자선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28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은 지난 8월 14일 간경화를 앓던 마르코 안토니오 키로스(69) 씨에게 딸 킴벌리 루시아 키로스(30) 씨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생체간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부녀는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해 퇴원했으며, 오는 29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마르코 씨는 미국과 페루를 오가며 부동산 건설 사업과 자선사업을 활발히 펼쳐왔다. 사업으로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양로원 노인과 저소득층 가정, 투병 중인 어린이 등 어려운 이웃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그러던 2008년 페루에서 담낭 제거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지방간이 발견됐지만, 당시에는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아 별다른 치료 없이 지냈다.
이후 지난해 9월 복부에 물이 차는 복수 증상이 나타나면서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올해 2월에는 폐에도 체액이 쌓여 호흡이 어려워졌고, 검사 결과 간 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화가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진은 간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수술받을 병원을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마르코 씨는 페루에서 간이식 대상 연령 제한으로 수술을 받을 수 없었고, 미국에서는 뇌사자 간이식을 위해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치료 방법을 찾던 그는 생체간이식을 알게 됐고, 여러 의료기관을 알아본 끝에 서울아산병원을 선택했다.
지난 5월 말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은 마르코 씨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의료진은 자녀들의 건강 상태와 체격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딸 킴벌리 씨의 간 일부를 이식하기로 결정했다.
수술은 지난 8월 14일 진행됐다. 송기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가 딸 킴벌리 씨의 간 일부를 떼어내는 기증자 수술을, 이승규 석좌교수와 문덕복 교수가 아버지 마르코 씨의 간이식을 맡았다.
산타 분장을 한 마르코 씨(오른쪽 첫 번째)가 페루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수술 과정은 예상보다 까다로웠다. 간경화가 심하게 진행되면서 간 주변 혈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딱딱해진 간 일부가 몸의 주요 혈관인 하대정맥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거나 대량 출혈이 발생할 위험도 컸다.
이에 의료진은 혈액이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우회로를 먼저 만든 뒤 손상된 간을 제거하고 새로운 간의 혈관을 연결했다. 약 17시간에 걸친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킴벌리 씨는 수술 8일 만에 퇴원했으며, 마르코 씨도 3주 만에 건강을 회복해 병원을 나섰다. 두 사람은 귀국 전 마지막 검사와 외래 진료를 마친 뒤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문덕복 교수는 “환자의 굳어진 간이 대정맥을 완전히 감싸고 있어 수술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문맥과 대정맥 사이에 우회로를 미리 만드는 등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어려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승규 석좌교수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중증 간질환 환자들도 서울아산병원을 찾고 있다”며 “앞으로도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고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마르코 씨는 “올해 초 숨쉬기조차 힘들었을 때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한국에서 새 생명을 얻은 만큼 앞으로도 페루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아산병원은 1992년 첫 간이식을 시행한 이후 지난해 초 단일 의료기관으로는 세계 최초로 간이식 9000례를 달성했다. 연간 간이식 수술 건수는 약 500례로, 이 가운데 생체간이식이 약 400례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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