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PP, 임기 안엔 안 돼…그래도 해 놔야"
농지조사 "땅 뺏는다는 걱정 안 해도 돼"
1조 약속에 3000억…상생기금 미충족분 정부가
농업계 '예산 5% 법제화' 요구엔 즉답 안 해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농어민과의 대화'에서 윤일권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농지 전수조사와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 가입 추진을 둘러싼 농어민 반발을 수습하기 위해 농업계와 직접 대화에 나섰다. CPTPP 가입 추진 기조는 유지하되 피해 보전을 국가의 의무로 이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농심 달래기에 주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구체적인 보전 대책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고, 농업계의 예산 확대 요구와 재정 여건 사이의 간극도 커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대통령은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농림축산어업인 1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타운홀 미팅 형식의 '농어민과의 대화'를 열고 "1차 산업을 비교 우위라고 하는 측면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이것은 대한민국 생존에 관한 안보 산업이자 전략 산업이다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CPTPP 가입과 관련해 회원국 12개국의 개별 동의를 모두 받아야 해 임기 안에 최종 타결은 어렵다고 설명하면서 "결국은 비난만 받고 결과물 없이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가 전체를 위해서는 일부 비난, 비판이 있더라도 해 놔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연내 가입 신청은 하지 않되 중장기적으로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국가 정책 과정에서 목소리가 작은 소수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요구해 왔다고 지적하며 특별한 희생에는 그에 상응하는 특별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1조원을 조성하기로 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3000억원 남짓에 그친 것 같다며 미충족분을 정부가 채우고, 앞으로 정책 추진에 따른 손실 보전은 의무로 이행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과거 정부의 약속 불이행에 따른 농어민 불신을 해소해야 CPTPP 논의도 진전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농지 전수조사에 대해서는 농지를 빼앗거나 불이익 처분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땅 뺏는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며 조상 대대로 경작해 온 농지가 아니라 농사를 짓겠다고 신고한 뒤 매입해 다른 용도로 쓰는 투기성 농지를 파악하려는 조사라고 설명했다. 이런 농지가 수도권 인근 지가 상승의 주원인이라고 진단하고, 매각을 원하는 농민을 위해 농지 매입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 대통령은 농산물 가격 지지 요구에 대해서는 품목별 최저가격 보장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할지 자신이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쌀값 지지 정책만으로도 정치적 논쟁이 크다고 언급하면서, 대안으로 생산량을 사전에 파악해 과잉 경작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이날 농어민 현안을 부동산 문제와 연결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농지 전수조사를 '수도권 인근 지가 상승의 주원인'인 투기성 농지를 걸러내는 작업으로 규정하면서, 농정 현안을 최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건 주택 공급·집값 안정 기조의 연장선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CPTPP 역시 임기 내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점을 스스로 밝히면서도 추진 의지를 밝힌 만큼, 당장의 지지율보다 차기 정부까지 이어질 통상 전략의 기반을 다지는 데 방점을 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반면 두 사안 모두 농어민에게는 재산권과 생계가 걸린 문제라 국정 전체의 논리로 설득하는 방식이 오히려 현장의 반감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농업계는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를 반기면서도 예산 확대를 요구했다. 노만호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대통령과 농업계의 만남이 8년 만이라며 CPTPP 가입 신청을 미룬 결정에 감사를 표하는 한편, 국가 재정 대비 2.8% 수준인 농업 예산을 최소 5%로 늘리고 이를 법제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내년 농업 예산 비중을 확인한 뒤 참고하겠다고 답했다.
청와대는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CPTPP 가입 논의와 농어민 피해 보전 대책을 함께 풀어간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농업계가 요구하는 예산 확대와 가격 지지 제도는 재정 부담과 직결되고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 등 민감한 쟁점도 남아 있어, 피해 보전 약속이 구체적인 제도로 마련되느냐가 농어민 설득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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