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바타3' 이어 올해도 할리우드 중심의 연말 극장가 전망
주요 배급사 신중한 행보 속 연말 성수기 한국영화 존재감 약화
같은 장면도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대중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한 성과 뒤에 가려진 이야기부터 익숙한 관행, 변화 속에서 불거지는 논쟁까지. [클로즈업]은 쉽게 지나쳤던 맥락을 짚고, 당연하게 여겼던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봅니다. 하나의 정답보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연말 극장가를 앞두고 할리우드 대작들의 경쟁이 일찌감치 달아오르고 있다. '듄: 파트3'와 '어벤져스: 둠스데이'는 북미 기준 오는 12월 18일 같은 날 개봉한다. 두 작품 모두 세계적인 팬덤을 거느린 기대작으로, 한날 맞붙는다는 사실만으로 '듄스데이'(Dunesday)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국내에서도 '어벤져스: 둠스데이'는 12월 16일, '듄:파트3' 역시 12월 개봉을 예고하면서, 경쟁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가 됐다.
반면 연말 성수기를 겨냥한 한국영화 대작 소식은 잠잠하다. 개봉을 준비하는 신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장가 분위기를 주도할 만한 작품은 많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서울의 봄'과 '노량: 죽음의 바다'가 맞붙은 2023년 12월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82%에 달했고, '소방관'과 '하얼빈'이 개봉한 2024년 12월에도 57%로 외화를 앞섰다.
'어벤져스: 둠스데이'·'듄: 파트3'ⓒ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흐름이 꺾인 것은 지난해다. '아바타: 불과 재'의 12월 개봉이 확정되자 주요 투자·배급사들은 연말 대작 개봉을 사실상 접었다. 그 자리는 12월 24일 개봉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31일 개봉한 '만약에 우리' 등 중소 규모 멜로 영화들이 틈새를 공략하는 식으로 채워졌다. '만약에 우리'는 입소문을 타고 해를 넘겨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성과를 냈지만, 12월 극장가의 중심은 '아바타: 불과 재'와 '주토피아2'였다. 한국영화 대작끼리 맞붙던 연말 풍경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올해도 그 빈자리를 채울 작품부터 손에 꼽힌다.
올해 한국영화가 흥행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니다. '왕과 사는 남자', '군체',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호프', '살목지'에 이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암살자(들)'까지 이달 3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올해 300만 고지를 밟은 한국영화는 다섯 편이 됐다. 다만 이들 작품의 흥행이 한국영화 전반의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몽유도원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남은 하반기 기대작으로는 '몽유도원도'가 꼽힌다. '택시운전사'로 1200만 관객을 동원한 장훈 감독이 9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김남길과 박보검이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형제를 연기한다.
천만 영화 '국제시장'의 후속편 '국제시장2'도 전작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기대를 모으지만, 개봉 목표 시점은 내년 설 연휴다. 하반기 기대작이 남아 있고 내년 초 대작도 준비 중이지만, 정작 12월 성수기를 겨냥한 대형 한국영화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감지됐다. 그간 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주요 투자·배급사들은 영화제 기간 미디어 행사를 열고 하반기와 이듬해 라인업을 소개해왔다.
여러 작품의 감독과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신작을 알리고 향후 사업 방향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개봉을 앞둔 작품뿐 아니라 앞으로 관객과 만날 한국영화를 미리 엿보는 무대였던 셈이다.
올해는 사정이 달랐다. CJ ENM의 '국제시장2', NEW의 '최종면접', 시네마서비스의 '감옥의 맛' 등 개별 작품 중심의 행사가 눈에 띄었다. 여러 편의 신작을 한꺼번에 선보이던 과거에 비하면 라인업 공개 규모가 제한적이었다. 영화제 행사만으로 배급사들의 사업 전략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향후 작품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던 자리가 줄었다는 점은 최근 한국영화 산업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배경에는 제작·투자 위축이 있다. 극장 관객 수가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대규모 제작비를 들인 영화의 흥행 실패는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모두에 큰 부담이 됐다. 투자 결정이 늦어지고 제작 편수가 줄어든 여파는 수년의 시차를 두고 개봉 라인업에 반영된다. 올해 몇몇 한국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더라도 이미 진행된 제작 위축의 영향을 단기간에 되돌리기 어려운 이유다.
투자·배급사들의 판단도 신중해졌다. 과거에는 연말 성수기라는 시기적 이점을 보고 대작을 배치했다면, 지금은 경쟁작과 손익분기점, 개봉 이후 관객 동원 가능성까지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 대형 작품일수록 실패에 따른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성수기 개봉이 흥행을 보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위험을 분산하거나 경쟁을 피하는 선택이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이런 판단이 쌓일수록 연말 극장가에서 한국영화의 자리가 좁아진다는 점이다. 연말은 오랫동안 한국 상업영화의 주요 승부처였다.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로 관객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인 만큼 주요 투자·배급사들은 대작을 앞세워 경쟁해왔다. 지난해 '아바타3'에 연말을 내준 데 이어, 올해도 그 자리에 할리우드 프랜차이즈가 들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작품이 부족하면 배급사는 개봉 시기를 더 신중하게 고르고, 특정 시기의 경쟁을 피하려는 판단은 다시 한국영화의 존재감을 약하게 만든다. 이 흐름이 굳어지면 연말 성수기는 한국영화가 흥행을 노리는 기회가 아니라 할리우드 대작들의 경쟁을 지켜보는 시기로 바뀔 수 있다. 300만 영화가 다섯 편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영화가 다시 연말 극장가의 중심에 서려면 개봉 시기를 고민하기에 앞서, 그 시기에 내놓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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