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장류축제 박혜원 공연 중단 사태, 공공행사의 빈곤한 문화 의식 노출
70년대 건전가요·국풍81부터 잼버리 사태까지 이어지는 관행
"무대 독립성 보장 및 외부 개입 차단하는 제도적 매뉴얼 필요"
‘컬처’(Culture)와 ‘리셋’(Reset)을 합친 [컬처리셋]은 문화계의 익숙한 장면을 원점에서 다시 바라보는 칼럼입니다. 무대 위의 화려한 성과와 차트 위의 숫자, 연일 이어지는 화제와 논란 뒤에는 늘 그것을 만들어낸 구조와 사람이 있습니다. 대중문화계의 이슈를 단편적인 사건으로 소비하기보다, 그 배경과 맥락을 읽어내는 데 집중합니다. 업계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관행에 질문을 던지고 새롭게 떠오르는 흐름의 의미를 짚으며, 익숙함을 한 번 ‘리셋’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15일 전북 순창군에서 열린 제21회 순창장류축제 개막식 축하공연 도중 가수 흰(HYNN·박혜원)의 무대가 주최 측의 개입으로 중단됐다. 흰이 두 곡을 부르고 다음 곡을 준비하던 중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엄청난 팬 한 분이 계신다”며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호명했다. 흰은 무대 아래로 내려갔고, 김 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짧은 인사말을 건넸다. 공연은 김 대표가 내려간 뒤 재개됐다.
현장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비판이 이어지자 김 대표는 18일 SNS를 통해 가수와 관객에게 사과했다. 공연 중이라 인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사회자가 갑자기 호명했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순창장류축제위원회 역시 “주최 측 착오로 공연 도중 내빈 인사가 이뤄졌다”며 사과했다. 흰의 소속사는 “라이브 공연을 하다 보면 다양한 상황이 생긴다. 앞으로도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해 노래하겠다”는 입장만 냈다.
가수 흰(박혜원, 왼쪽),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오더엔터테인먼트, 데일리안DB
경위가 어떻든 결과는 같다. 관객 앞에서 진행 중이던 공연이 내빈 인사를 위해 멈췄다. 공연을 하던 사람도, 공연을 보던 사람도 그 결정에 관여하지 못했다. 진행상의 착오로만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이 장면이 공공 행사에서 아티스트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대 위 가수는 관객과 소통하는 주체가 아니라 의전 순서에 따라 언제든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행사 구성 요소로 취급된다는 빈곤한 문화 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대중문화와 아티스트를 행정력의 통제 하에 두거나 국가적 목적을 위해 동원하는 관성은 그 뿌리가 깊다. 1981년 신군부는 5·18 1주기를 앞두고 여의도광장에서 관제 축제 ‘국풍81’을 열고 대학생과 연예인들을 대거 무대에 세웠다. 1970년대부터는 정부가 건전가요를 제정·보급하고 음반에 의무적으로 싣게 하면서 대중음악을 국정 홍보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 제도는 1990년대 중반에야 폐지됐다.
과거의 노골적인 강제 동원 방식은 사라졌으나, 아티스트를 공공의 목적을 위해 언제든 차출할 수 있는 자원으로 여기는 행정 편의주의적 시선은 현재 진행형이다. 2022년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는 방탄소년단(BTS)을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그해 10월 부산에서 유치 기원 무료 콘서트를 열었다. 당초 공연장으로 정해진 부지는 출입로와 수용 인원 문제로 안전 우려가 제기돼 결국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으로 바뀌었고, 공연을 앞두고 지역 숙박요금이 치솟는 등 논란이 이어졌다. 국가적 이벤트를 위해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차용하면서도, 정작 무대의 안전과 운영 프로세스에 대한 행정적 배려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룹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이듬해인 2023년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서는 이러한 행정 권력의 오만함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행사가 폭염과 태풍으로 파행을 겪자 정부는 수습책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 케이팝(K-POP) 콘서트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국방부에 군 복무 중인 멤버를 포함해 방탄소년단이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팬덤은 “공권력 갑질”이라고 반발했고, 성 의원은 차출하자는 취지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행정의 실패를 수습하는 데 아티스트를 앞세우려 한 시도라는 비판은 피하지 못했다.
아티스트를 통제 가능한 소유물로 여기는 권력의 태도는 동원뿐만 아니라 ‘배제’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경북 구미시는 2024년 12월 25일 구미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가수 이승환의 콘서트를 공연 이틀 전 취소했다. 구미시는 앞서 ‘정치적 선동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요구했고, 이승환 측이 서명을 거부하자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대관을 취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5월 구미시가 이승환과 소속사, 예매자 100명에게 총 1억 2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연 취소의 근거로 제시된 안전 우려가 구체적이지 않았다고 봤다. 당시 시장 개인의 배상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고, 이승환 측은 이 부분에 대해 항소했다.
가수 이승환 ⓒ뉴시스
앞선 사례들은 모두 성격이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공공의 무대를 행정력이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언제든 통제하고 징발할 수 있는 소유물로 여긴다는 점이다. 무대를 빌려주거나 마련했다는 이유로 그 위에서 이뤄지는 공연까지 주최 측의 재량에 속한다고 보는 인식이다.
이 같은 개입은 아티스트에 대한 결례에 그치지 않는다. 공연은 무대 위 아티스트와 객석의 관객이 함께 만드는 것이다. 주최 측이 공연을 임의로 멈추는 것은 그 시간을 위해 자리를 지킨 시민의 문화 향유를 가로막는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러한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갈등을 수습하는 것은 온전히 아티스트 개인의 유연한 대처와 프로 정신이었다. 그러나 행정적 오판과 의전의 책임을 아티스트에게 떠넘기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아티스트의 프로 의식에 기대는 대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공연 중 외부의 개입이나 과도한 VIP 의전으로 인한 큐시트 임의 변경을 엄격히 차단하는 행정 매뉴얼의 마련, 아티스트와의 계약 단계에서 무대 운영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등의 방식이 거론된다. 공연장 대관 역시 아티스트의 발언이나 성향을 조건으로 삼을 수 없다는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대를 마련한 쪽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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