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지사님, '바란다고 해 주는' 건 사과가 아닙니다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6.10.18 04:00  수정 2026.10.18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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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 재정 빨대' 발언 논란에도 사과 않고 '버티기'

소방관 순직으로 여론 악화되자 민주당 먼저 '백기'

마지 못해 사과한 추미애, 끝까지 본인 자존심만 챙겨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7일 경기 부천시 순천향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천 도장공장 화재 사망 소방관의 빈소 조문을 마친 뒤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문제의 ‘소방 재정 빨대’ 발언에 대해 나흘 만에 사과했습니다. 그동안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도 버티다 지난 17일 부천 공장 화재로 순직한 고(故) 김진석 소방위를 조문한 자리에서 결국 입을 연 겁니다.


그런데, 사과 방식이 참 가관입니다. “제 의도와 다르게 (뜻이) 전달됐다면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사과를 바라시니까 정말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고 한 겁니다.


앞에 ‘사과를 바라시니까’라는 말을 왜 붙였는지 궁금합니다. 보통 이런 추임새가 붙으면 사람들은 “내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들 원하니 사과를 해 주마”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이는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면’이라는 문장과도 궁합이 잘 맞습니다. 악의 없이 말실수를 한 것이라면 “제 의도와 다르게 실언을 해서 죄송하다”라고 하는 게 정상입니다. ‘다르게 전달됐다면’이란 표현에는 화자(話者)가 아닌 청자(聽者)를 탓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말한 건 그게 아니었는데, 당신들이 잘못 들었다면 유감이다”라는 의미인 겁니다.


애초에 추미애 지사가 국민 앞에 사과할 생각이 있었는지부터 궁금합니다.


그가 사고를 친 건 지난 13일이었습니다.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이 “소방 재정에서 국비의 비중 자체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자, 추 지사가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는 말로 호응한 겁니다.


맥락상 추 지사가 의도적으로 소방당국과 소방관들에게 악의적으로 부정적인 언급을 한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추 지사는 무려 6선 의원 출신입니다.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이 본인 말이 국민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판단이 안 설까요. 설령 말이 나올 때야 실수였다 쳐도 내뱉은 다음에는 ‘아 큰일났다’라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정무적 감각이 무딜까요.


이때 즉각 사과하고 실수를 바로잡았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사과는 없었고, 야당인 국민의힘을 비롯, 전 국민의 비난이 추 지사를 향했습니다. 문제의 발언이 있었던 다음 날인 14일에는 소방공무원 노동조합인 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가 나서 “소방관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도 추 지사는 본인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웬 난리냐는 듯 입을 굳게 다물고 본인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더군요.


압도적인 머릿수를 앞세워 같은 편의 잘못은 기를 쓰고 옹호에 나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울타리를 믿었던 걸까요. 평소라면 그의 기대대로 그렇게 며칠 시끄럽다 말았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지난 16일 부천 오정구의 한 도장공장 화재현장을 살피던 중 흐느끼는 한 소방관을 위로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다 지난 16일에 추 지사가 쳐놓은 사고의 파장을 증폭시킬 일이 발생합니다. 경기도 부천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시민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소방관 5명이 부상을 당했고 그 중 김진석 소방위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인간적으로 이 정도 상황이면 사과를 하겠거니’ 하던 예상은 여지없이 깨집니다. 화재 현장으로 달려온 추 지사는 ‘소방 재정 빨대’ 발언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얘기 하지 마시죠”라고 일축하며 다시 한번 본인의 길을 뚜벅뚜벅 걷습니다.


자신은 언제까지고 고고함을 유지하며 버틸 수 있도록 민주당 동지들이 끝까지 울타리가 돼 줄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동지들도 바보는 아닙니다. 이건 잘못 감쌌다가 다 같이 오물통에 처박힐 일인데 본인들부터 살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고 발생 전만 해도 별생각이 없어 보였던 민주당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부랴부랴 사과에 나섭니다. 사고를 친 당사자인 추 지사는 하지도 않은 사과를 민주당이 대신 한 겁니다.


결국 17일 새벽 김 소방위가 순직했다는 비보가 전해집니다. 애도의 물결이 분노로 바뀌면 그게 향할 곳은 분명합니다. 그게 무섭다고 경기도지사가, 경기도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 빈소를 모른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외통수입니다.


그렇게 빈소에 찾아간 추 지사가 사과랍시고 한 게 ‘잘못 들었다면 유감이고, 사과를 바란다니 사과하겠다’는 소리입니다.


나흘 동안 입 다물고 버티다가 화재 사고로 소방관이 순직하고, 믿을 구석이었던 민주당이 백기를 들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사과하면서도 본인의 자존심은 끝까지 지키려는 모습에 국민은 분통이 터집니다.


판사에, 6선 국회의원에, 장관에, 도지사까지 화려한 감투만 쓰며 평생 남 앞에서 고개 숙일 일 없이 살아온 인물이었기에, 설령 잘못을 저질러도 고개 숙이는 법을 모르는 걸까요.


길 가다 실수로 부딪치더라도 상대방이 넘어져 다친다면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인간 된 도리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고의가 아니라며 사과 없이 버티는 아이가 있으면 어른들은 ‘자존심이 강한 아이’라 하지 않고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아이’라고 합니다.


염치는 접어둔 채 막말하고, 우기고, 버티는 게 정치 여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부디 이번 일을 계기로 말은 가려서 하고,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고, 사과를 할 거면 제대로 하는 분위기가 정치판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려다 순직한 고 김진석 소방위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재난 현장에서 소방관이 희생되는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랍니다. 추미애 지사는 더욱 간절히 빌어야 할 겁니다. 나아가 소방관 안전을 위한 행정 지원에도 전력을 쏟아야 할 겁니다. 앞으로 소방관이 희생되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추미애 소방 재정 빨대’가 소환될 테니 말입니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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