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에 도움 받지만…편성 등 '이후'까지 함께 노력 필요”
“회당 계약하는 작가들 처우 개선도 과제”
수십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글로벌 OTT의 블록버스터급 다큐멘터리(이하 다큐)가 한국 제작진의 손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편당 수천만원 남짓한 빠듯한 예산과 부족한 시간에 쫓기며 ‘버티고’ 있다. ‘K-다큐’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는 이렇듯 양극화된 생태계가 있다.
2023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지만, 그 이면엔 “다큐도 거대 자본을 타지 않으면 화제성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냉혹한 현실이 있었다. 15억 원 내외가 투입된 넷플릭스 다큐 ‘사이버 지옥’의 사례에 비춰 볼 때, 2년의 시간과 방대한 취재 인력이 투입된 ‘나는 신이다’ 역시 수십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회당 수천만원 안팎에, 편성 시간에 쫓기는 일반 방송사의 다큐가 넷플릭스를 따라가기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K-다큐가 창작자의 ‘사명감’을 넘어 하나의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등 공공 기관에서 다큐 제작을 지원하고 있으나, 대다수 사업이 편당 1~2억원 선의 단발성 지원에 그쳐 부족하다는 반응이 있다.
'다큐 3일' 속 한 장면. 기사 내용과는 무관ⓒKBS 영상 캡처
공적 자원을 과감하게 투입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공영방송을 위한 K-다큐 진흥 정책 토론회’에서는 연간 500억원 규모의 다큐 전문 진흥 기금을 신설하자는 제안이 등장했다. 방송통신발전기금,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영화발전기금을 통합하고, 나아가 OTT 및 방송사 기여금 제도를 신설해 재원을 마련하자는 내용이다.
다만 창작자들은 지원금 규모만 늘리기보다는, 지원금 ‘다음’ 단계까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큐 제작사 필름팍투라의 임홍재 PD는 “지금도 정부의 제작 지원금은 있지만, 결국 편성까지 연결이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결국 어떤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고, 또 알려져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 작품들도 많다”고 짚었다.
임 PD는 이 같은 구조에서는 제작을 완료하는 것에만 목적을 두는 ‘지원금 사냥꾼’을 걸러낼 수 없다는 정부 지원금의 한계를 지적했다.
다큐 편성 비율을 법적으로 의무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수신료를 받는 KBS, EBS에서는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다큐를 편성할 필요가 있다.
다큐를 꾸준히 연출해 온 방송사 PD 이영철(가명) 씨는 “정부의 제작 지원금을 받아 제작을 완료해도, 편성까지 모두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성격이 맞지 않는 케이블 채널로 송출이 되기도 한다”고 안타까운 현실을 짚으면서도 “그럼에도 방송사 입장에선 수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외주 제작사의 작품을 편성하더라도, 각 방송사의 포맷에 맞게 송출하기 위해선 프로듀서가 필요하다.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든다. 마이너스인 콘텐츠를 어느 플랫폼이 원하겠나. 결국 수신료를 받는 KBS, EBS가 역할을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혹은 편성까지 보장하는 방안으로 지원금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함께 공유하는 부분이 마련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AI로 제작
제작에 참여하는 스태프, 전문가의 처우를 개선해 다큐가 활발하게 제작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를 위해 지원금이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쓰이는지까지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러 지상파 다큐 제작에 참여한 작가 김다빈(가명) 씨는 “회당 출연료를 받는 메인 작가들은 다큐만 해서는 버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큐는 제작 기간이 길어 수개월에서 1년이 넘어가는 프로젝트로 운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회차는 예능, 드라마보다 현저히 짧다. 결국 회당 출연료는 예능과 같아도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다큐를 채우는 전문가의 출연료 개선도 과제다. 그는 “다큐에서 활약하는 전문가의 비중, 중요도에 따라 다르지만, 예능프로그램 속 연예인들의 출연료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도 안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원과 더불어 생태계 스스로 자생력을 갖추려는 다각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비영리 단체의 활발한 활동으로 다큐가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독 소사이어티(Doc Society)는 영국은 물론, 전 세계 독립 다큐 영화 제작자를 지원하며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 채널4의 독립영화 비디오 부서가 폐지되자, 해당 부서원들이 채널로부터 자금을 확보해 다큐 전문 재단을 설립한 것이 계기였다. 다큐의 자금 조달 및 배급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피칭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영화의 주제와 연관된 비영리 단체 및 NGO와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자생력을 획득해 나갔다.
다만 이 PD는 국내에서 다큐의 자생이 가능해지기 위해선, 다큐를 향한 관심도를 확대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PD는 “해외와 국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단 시장이 더 작다는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다큐를 향한 관심이 크지 않다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는 다큐를 시청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일단 어떤 시도라도 ‘팔려야’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콘텐츠만 지원하기보다는, 특정 장르에 특화된 플랫폼을 만드는 등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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