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전역을 마치고 완전체로 복귀한 BTS. ⓒ 데일리안 DB
국가대표가 되는 순간 따라붙던 ‘국위선양’이라는 명분이 이제는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 통로로 받아들여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낸 뒤 쏟아진 일부 선수들의 병역 관련 발언은 단순한 말실수를 넘어 예술·체육요원 병역특례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방탄소년단(BTS)조차 별도의 병역 혜택 없이 순차적으로 입대해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반면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아시안게임 금메달 하나로 현역 복무 대신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제도의 취지가 다르다는 설명만으로는 갈수록 커지는 형평성 논란을 잠재우기 어려운 이유다.
논란이 거세지자 국회에서도 제도 손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는 예술·체육요원 병역특례의 종목별·대회별 형평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역모 쓴 AG 축구대표팀 박승수. ⓒ 박승수 SNS
“군대 안 갑니다” 금메달 뒤 드러난 병역특례의 민낯
발단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대표팀의 우승 이후였다.
한국은 3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에서 일본을 1-0으로 꺾고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4연패라는 기록을 세웠다. 성적만 놓고 보면 박수를 받아 마땅한 결과였다.
하지만 우승 직후 일부 선수들의 발언과 행동이 논란을 키웠다.
주장 이기혁은 금메달을 들어 보이며 “군대 안 갑니다”라고 말했고, 양민혁은 “군 면제라는 보상이 있으니까 그거 하나만 보고 경기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승수는 금메달을 딴 뒤 전역모를 쓴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다. 야구대표팀 주장 노시환 역시 앞서 “과정은 필요 없이 금메달이라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물론 선수 입장에서 병역 문제가 절실할 수 있다. 특히 이기혁처럼 입대를 코앞에 둔 선수라면 금메달이 선수 생활의 향방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결과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얻은 금메달은 국민 입장에서 국가적 성취로 받아들여지는데, 정작 선수 본인들에게는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쳐졌고, 이로 인해 태극마크의 의미 자체가 흔들렸다.
더욱이 현행 제도는 정확히 말해 ‘군 면제’가 아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는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돼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34개월 동안 해당 분야에서 복무하고 544시간의 특기 활용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다만 현역병으로 입대하지 않고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에게는 사실상 병역 혜택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시안게임 야구는 프로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이라는 강력한 동기 부여를 제공한다. ⓒ 연합뉴스
53년 전 만들어진 기준, 왜 BTS는 안 되고 프로 선수는 되는가
현재 논란의 뿌리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술·체육요원 제도는 당시 ‘국위선양’과 ‘문화 창달’에 기여한 예술·체육 특기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여러 차례 기준이 바뀌었지만 체육 분야의 핵심 기준은 현재까지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이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다. 현행 병역법 시행령도 이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1970년대 대한민국에서 국제 스포츠대회나 국제 콩쿠르에서의 입상은 국가의 존재감을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와 스포츠, 문화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다. 특히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BTS가 대표적이다. 빌보드 정상에 오르고 세계적인 팬덤을 구축한 이들은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별도의 예술·체육요원 편입 혜택을 받지 않은 채 멤버 전원이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BTS의 병역특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사회에서 거셌지만 결국 제도는 이들을 예술·체육요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금메달 목에 걸고 애국가 부르는 축구대표팀. ⓒ 뉴시스
축구·야구에 쏠린 혜택, ‘아시안게임 금메달’ 하나로 갈리는 운명
종목 간 형평성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문체위 국감에서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 혜택 대상이 된 선수 43명 가운데 축구와 야구 선수가 36명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10명 중 8명 이상이 두 종목에 집중된 셈이다.
특히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사이의 기준 차이는 제도의 허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는 것이 아시안게임 금메달보다 더 높은 경쟁력을 요구하는 종목이 적지 않지만, 현행 체육요원 편입 기준에서는 대회 명칭과 입상 기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한 국제대회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선수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선수가 병역상 훨씬 유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단체종목의 특성도 문제다. 축구처럼 대표팀 전체가 금메달을 따면 미필 선수들이 한꺼번에 예술·체육요원 편입 대상이 된다. 이번 남자축구 대표팀에서는 23명 가운데 군 복무를 마친 선수 등을 제외한 20명이 병역 혜택 대상이 됐다. 야구 역시 미필 선수 상당수가 금메달과 함께 같은 혜택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아시안게임은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로서 명예를 걸고 경쟁하는 무대인 동시에, 일부 프로선수들에게는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회가 됐다.
논란의 발언을 한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주장 이기혁. ⓒ 대한축구협회
국감까지 간 병역특례…‘포인트제’ 해법 제시
7일 국감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손질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됐다.
조계원 의원은 한 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병역 혜택이 집중되는 현행 방식을 바꾸고 국제대회 성적을 누적해 평가하는 이른바 ‘마일리지·포인트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번의 대회 결과만으로 혜택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성과를 낸 선수에게 그에 걸맞은 혜택을 주자는 취지다. 세계선수권대회 등 현재 병역 혜택 기준에서 빠져 있는 대회의 성과도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포인트제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인지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국 일정 점수 이상을 쌓으면 현역 복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한다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데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방부가 제도 전반에 대한 손질 가능성을 내비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방부는 6일 예술·체육요원을 포함한 보충역 감축·폐지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병역 의무자 간 형평성과 공정성, 병역자원 감소, 국민적 공감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설명이다.
문체부 역시 같은 날 국감에서 기존 제도가 선수와 예술인의 기량 유지에 기여한 측면은 인정하면서도 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시대상에 따라 병역에 대한 개념과 공정에 대한 가치가 많이 바뀐 것 같다”며 체육계와 예술계 의견을 수렴하고 국방부·병무청과 협의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선수들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한 국군체육부대 활성화 필요성에도 공감했다.
태극마크는 분명 특별하다. 국가를 대표해 국제무대에 나서는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명예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태극마크가 ‘병역 해결 창구’로 먼저 인식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BTS가 세계 음악시장을 뒤흔들고도 병역 의무를 이행했던 장면과 아시안게임 금메달 뒤 병역 혜택을 먼저 이야기하는 일부 선수들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뤄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 입장에서 씁쓸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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