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진청, 신품종 ‘천량’과 이중구조하우스로 생산 위험 낮춰
재배면적 반토막 난 인삼 산업 돌파구…가공시장에 길 찾다
김제 백산인삼 김태엽 대표 “젊은세대 겨냥한 인삼 체질개선 중요”
재산과 재물을 뜻하는 '천량'은 생산량 감소 등 어려움에 직면한 인삼농가의 새로운 돌파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백삼인삼이 실험 재배 중인 2년생 천량 모습.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농업의 가치와 미래 기술을 조망해 온 ‘농사직썰’이 다섯 번째 여정을 시작한다. 시즌1의 연구 성과를 시작으로 지역 기술(시즌2 월령가), 해외 진출(시즌3 케이팜), 연구 현장의 이면(시즌4 혁신의 씨앗)까지 짚어 왔다면, 시즌5는 그 기술력이 시장에서 어떻게 부가가치로 전환되는지에 주목한다.
이번 시즌의 대문은 ‘청춘농담(靑春農談)’이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고부가가치 원재료를 바탕으로 청년 농업인이 현장에서 써 내려가는 생생한 성공담을 뜻한다. 동시에 청년의 감각과 기획력이 전통 농업의 색과 밀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포착하겠다는 뜻도 담았다.
기술은 실험실에 머물 때보다 시장에서 소비자와 만날 때 더 또렷한 가치를 갖는다. 본지는 농촌진흥청이 공들여 육성한 원천 기술과 품종이 청년의 기획력과 만나 어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지 추적할 계획이다. 단순한 우수 사례 소개를 넘어 기술 기반 농업 창업 생태계가 농촌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어떻게 떠받치는지 현장에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전북 김제 백산면에서 4대째 인삼 농사를 잇는 김태엽 백산인삼 대표는 요즘 땅과 입맛을 함께 바꾸는 실험이 한창이다. 밭에는 염류에 강하고 수량이 많은 농촌진흥청 신품종 ‘천량’을 심었다. 또 수확한 인삼은 식혜와 라떼, 분말처럼 일상에서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제품으로 바꾼다.
그동안 인삼 농가는 한 번 농사지은 땅을 떠나 새 재배지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인삼 농사를 지을 땅이 없다. 특히 뿌리썩음병을 비롯한 연작장해에 폭염과 집중호우까지 겹치면서 재배지는 더 빠르게 줄고 있다.
이에 농진청은 같은 곳에서 다시 인삼을 키우는 정착형 재배기술과 이중구조하우스로 해법을 찾고 있다. 농진청의 이 기술은 젊은층에게 외면 받는 인삼 시장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결국 농가에서 생산한 제품은 소비자의 손에 닿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품과 팔리는 방식이 바껴야 한다.” 농진청의 품종·시설 기술을 받아 든 김 대표가 생산에서 가공, 유통으로 영역을 넓히는 이유다.
김태엽 백삼인삼 대표가 농진청 신품종 천량을 소개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1만ha로 줄어든 인삼밭…구원투수 ‘천량’의 등장
인삼산업의 기반은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농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인삼 재배면적은 2009년 1만9702㏊에서 2024년 1만585㏊로 줄었다. 생산액도 2012년 1조831억원에서 2024년 5637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1인당 소비량도 동반 하락세다. 2009년 0.48㎏였던 소비량은 2024년 0.27㎏으로 내려앉았다.
인삼 시장이 좀처럼 반등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자, 농진청은 재배 안정성이 높은 품종 개발과 민관 협력 보급으로 대응하고 있다. 2025년까지 천량과 고원 등 7개 품종을 개발했다. 신품종 보급률은 2022년 19.0%에서 2025년 21.8%로 높아졌다.
천량은 여주 재래종에서 순계 분리해 육성한 품종이다. ‘재산과 재물’을 뜻하는 순우리말을 이름에 담았다. 10a당 수량은 642㎏으로 비교 품종인 천풍 519㎏보다 많다. 염류장해 지수는 1로 천풍의 3보다 낮다. 진세노사이드 Rg1과 Rg2 함량도 각각 3.10과 1.09로 천풍의 2.57과 0.54를 웃돈다.
김 대표는 “김제에서 재배하는 인삼은 재래종과 천량 두 가지로 나눠 식혜를 시험하고 있다”며 “염류에 강한 품종의 안정 생산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맛과 가공 적성까지 시장에서 검증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인삼은 지금 위기가 맞다. 미래 소비자인 20대 여성들이 인삼을 먹지 않고, 동네 마트에서는 구입하기도 어렵다”며 “신품종 보급이 농가의 생산 위험을 낮추는 일이라면 식혜와 라떼 개발은 소비자의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하늘에서 바라본 이중구조하우스. 오른쪽 하우스가 농진청이 개발한 인삼용 이중구조하우스다. 왼쪽편은 기존 전통적인 재비 방식의 인삼 시설물.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35도 폭염을 잡다…수확량 두 배 가까이 늘린 ‘이중구조하우스’
인삼은 뿌리썩음병 등 연작장해가 커 같은 밭에서 이어짓기 어렵다. 기존 노지에서는 예정지를 2~3년 관리한 뒤 4~6년 재배하고 다시 10년 이상 쉬거나 다른 땅으로 이동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농지가 줄고 임차료가 오르면 이동경작은 생산비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중구조하우스는 일반 하우스 위에 외부 차광망과 이중 활대를 더한 시설이다. 천장 60㎝를 열어 열기를 빼고, 차광망으로 들어오는 빛을 조절한다. 2025년 7월 인삼 재배시설 내재해형 규격으로 등록돼 태풍과 폭설에 견디는 기준도 갖췄다.
농진청 비교자료에서 한여름 내부 최고기온은 관행 해가림 시설 35.5도, 이중구조하우스 33.5도로 나타났다. 33도 이상인 날은 51일에서 32일로 줄었다. 4년생 인삼의 고온 피해율은 88.3%에서 15~20%로 낮아졌고, 10a당 수량은 378㎏에서 713㎏으로 늘었다. 연간 작업시간도 10a당 93.4시간에서 44시간으로 감소했다.
농진청은 이중구조하우스로 인삼 재배의 여러가지 변수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부는 인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통풍과 폭염에 대응 가능항 차광에 신경을 썼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김 대표가 체감한 변화도 노동과 생육의 균질성이다. 그는 “하우스 재배를 해보니 일단 허리가 아프지 않다. 햇빛도 앞뒤 차이 없이 골고루 들어온다”며 “비를 직접 맞지 않아 병원균 포자가 퍼질 가능성이 줄고, 야생동물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10a당 설치비는 관행 시설 750만~900만원, 이중구조하우스 5400만~7500만원이다. 내구연한은 각각 6년과 18년이다. 농진청은 보급 대상을 2025년 8곳에서 2026년 14곳, 2027년 누적 2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2026년 사업비는 4억8000만원이다. 1곳당 8000만원을 국비와 지방비로 절반씩 지원한다. 김제도 실증 거점에 포함됐다.
이승돈 농촌진흥청장은 “해마다 인삼 농가가 좋은 땅을 찾아 옮겨 다녀야 하는 고충과 사람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기상재해까지 이중고에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다”며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착형 재배 기술의 적용 상황을 제대로 살피고, 농가에 도움이 되도록 꼼꼼히 보완해 더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태엽 백산인삼 대표는 인삼 대중화에 뛰어들어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적인 인삼 구매방식의 틀을 깬 그의 도전이 인삼 시장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길 기대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김태엽 대표 “나는 인삼디자이너”…빙수·라떼·식혜로 무한변신
김 대표는 4대째 인삼 농사를 잇고 있다. 가업처럼 이어진 농사를 피하려 이스라엘과 이집트에서 6년을 보냈고, 귀국한 뒤 서울의 백화점 식당가에서 요리를 배웠다. 그런데도 인삼은 그의 삶과 떨어지지 않았다.
김 대표가 여러 경험 끝에 인삼에 뛰어든 것은 부친의 병환으로 김제에 내려온 뒤 2012년부터였다. 다양한 경험 덕분인지 인삼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다양한 구상이 머릿속을 맴돌었다. 특히 해외 생활과 조리 경험은 원물을 식품과 콘텐츠로 바꾸는 밑천이 됐다.
그의 독특한 실험정신은 시장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전환점이 바로 인삼가루였다. 김 대표는 2020년 디저트 프랜차이즈 A업체게 인삼 빙수를 제안했다.
그는 “업체 본사를 찾아가 인삼 빙수를 제안했지만 6개월 동안 만나주지도 않았다”며 “포기하지 않고 샘플을 계속 보냈다. 제품이 채택되자마자 전국 200개 매장에서 약 2만그릇이 판매됐다”고 말했다.
빙수에 쓰고 남은 분말은 라떼로 길을 넓혔다. 수삼은 보관 과정에서 상할 수 있지만 건조 분말은 취급이 쉽다. 꿀과 우유를 더하면 카페 메뉴가 된다. 백산인삼의 인삼가루는 현재 김제의 자활센터와 복지관을 비롯해 서울 용산·성수동 일부 카페에서 라떼와 식혜 형태로 판매 중이다.
김태엽 대표가 이중하우스에서 재배 중인 인삼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출시 3년 반이 된 인삼 식혜는 미국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는 ‘효자품목’이 됐다. 인삼 식혜는 현재 미국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에 수출돼 현지에서 4.9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이처럼 김 대표의 노력은 인삼을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준다. 단순히 ‘인삼은 쓰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최근 유행하는 건강, 웰빙, 다이어트 등의 트렌드에 맞춘 시장 공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전통적인 인삼 재배기술로는 지금의 소비문턱을 넘기 힘들다. 1차 생산으로 끝나지 않고, 가공과 체험 등 다양한 경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백산인삼은 젊은 소비자와 접점을 늘리는 일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외국인을 농장으로 초청해 인삼을 캐고 꿀청과 인삼주를 만드는 체험이 대표적이다. 또 서리태에 인삼가루를 넣은 뻥튀기 ‘콩삼바삭’도 준비하고 있다.
젊은 농부답게 원물을 설명하기보다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익숙한 음식과 짧은 영상으로 먼저 다가가는 전략으로 인삼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김 대표는 “뻥튀기나 식혜, 과자류로 가볍게 시작해 사람들 마음속에 인삼이 자리 잡아야 농가도 살아남을 수 있다”며 “인삼이 몸에 좋다는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친숙하고 더 가볍게 소비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삼의 대중화를 위해 SNS 홍보뿐만 아니라 다앙한 가공품이 지속적으로 나와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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