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에게만 의존하던 한국 스타일
개인기, 아마 선배들보다 한 수 아래
그야말로 ‘텐진의 비극’이다.
한국농구가 중국 텐진에서 열린 ‘제25회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 대회’에서 최종 7위의 성적으로 모든 일정을 마감했다. 1960년 이 대회가 창설된 이래 한국농구가 거둔 역대 최악의 성적이다.
한국은 대회 초반 5연승을 달렸지만 또다시 이란-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중동세’에 덜미를 잡히며 사상 최초로 4강에도 진입하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여기에 순위 결정전에서는 복병 대만에게까지 일격을 당했고, 필리핀에게도 시종일관 고전한 끝에 신승했다.
따라서 중국이나 중동세는 고사하고 이제 아시아 중위권팀들을 상대로 확실한 우위를 장담할 수 없게 됐음을 확인한 것이 이번 ‘텐진 참사’의 냉혹한 교훈인 셈이다.
프로화 이후, 퇴보하는 한국농구
한국 남자농구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1997년이 마지막이었다. 공교롭게도 한국농구가 프로화로 접어든 원년이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 농구는 12년 가까이 아시아대회에서 정상을 밟아보지 못했고, 자연히 세계무대와도 인연이 끊어졌다.
또한 안방에서 정상에 오른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마지막으로, 한국농구의 국제무대 성적은 날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2005년 카타르 도하 아시아선수권 4위, 2006년 도하 AG 5위(사상 첫 노메달), 그리고 이번 2009년 텐진 아시아선수권 7위에 이르기까지. 최근 7년간 한국 농구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역대 최악의 성적을 계속 갱신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중동세에 완패했지만, 한국을 제외한 해외 언론들의 분위기는 이변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주를 이뤘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은 이제 아시아에서도 4강권을 벗어난 전력으로 평가받는 게 현실이다.
이쯤 되면 ‘프로화’가 과연 한국농구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심각한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중국에 이어 ‘아시아 2인자’를 호령하던 80~90년대 아마 시절과 달리, 프로화 이후 한국농구의 국제 경쟁력이 날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반성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마보다 못한 프로’…한국농구를 망쳤다
한국은 이번 대회 개인기와 기술, 전술, 파워, 스피드 등 모든 면에서 어느 하나도 경쟁 국가들에게 뚜렷한 우위를 보이지 못했다.
센터진은 겉보기에 신체조건은 좋아졌지만, 골밑에서 외국 센터들에게 번번이 밀리며 공수에서 높이의 우위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슈터진은 내내 확률 낮은 3점슛에만 의존하며 과거의 ‘양궁농구’를 답습했고, 장신화에 실패한 ‘꼬꼬마’ 가드진은 안정적인 리딩도, 득점력도 보여주지 못하며 오히려 수비에서는 ‘자동문’으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조직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프로화 이후 국내 무대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의존하던 습관에 길들여진 한국 선수들은, 예전 한국농구만의 개성과 경쟁력을 모두 잃었다.
국내 무대에서 ‘스타 대접’을 받는 선수들도, 정작 국제 대회에서는 상대 선수 하나 제칠 수 있는 개인기나 기술이 없고, 주도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창의성도 부족했다. 무늬는 ‘프로’지만, 정작 기본기는 아마 시절의 선배들보다도 못한 것이 한국농구의 냉정한 현실이다.
무리한 프로 일정도 대표팀의 국제경쟁력 저하에 한몫을 담당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한국은 대표팀 소집부터 정상적인 컨디션을 갖춘 선수들이 전무했다. 정규리그 54경기에 플레이오프까지 치른 선수들은 이미 녹초가 되어있었다. 82게임을 치르는 NBA(미 프로농구)도 있다지만 선수층의 깊이와 주전의존도 등에서 이미 비교 자체가 난센스다.
한국농구의 전면적 혁신 없이는 미래도 없다
대표팀을 둘러싼 체계도 엉망이다. 프로 출범이후, 대한농구협회와 KBL간의 뿌리 깊은 알력다툼은 대표팀 운영에 있어서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대한농구협회는 재정능력도 없으면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고, KBL은 돈주머니를 꿰차고 있었지만 정작 소통의 의지도, 혁신을 위한 노하우도 부족했다.
올해는 KBL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대표팀을 둘러싼 지원환경은 많이 개선됐지만 선수선발에서부터 대회 준비에 이르기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사령탑도 지난 시즌 프로 우승팀인 KCC 사령탑이던 허재 KCC 감독이 시간에 쫓겨 대표팀을 맡았지만 시간이 촉박했고 국제경험도 부족했다. 자연히 대표팀 운영에 장기적인 비전이나 기획은 꿈도 꿀 수 없이 당장 눈앞의 대회를 치르는데도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선수들은 설령 대표팀에 합류한다 해도 대회가 코앞에 임박, 손발을 맞출 시간도 부족한데다 만일 성적이 좋지 못하면 모든 비난을 다 뒤집어써야한다. 프로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기피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환경인 셈이다.
결국 문제는 대표팀의 일시적인 성적부진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농구의 기형적 구조를 기초부터 완전히 혁신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매년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작게는 현행 프로농구 6라운드 54경기 체제와 외국인 선수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에서부터, 대표팀 운영에 있어서 전임감독제와 상비군 제도의 도입까지. 또한 대한농구협회와 프로농구 연맹으로 분열된 농구계 행정기구의 일원화 등 묵은 화두들에 대한 ‘열린 논의’가 이제부터라도 진행되어야만 한다.
프로화 이후 10여년, 한국농구가 과연 ‘프로’를 처음 도입했던 근본적인 취지가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해야하는 시기에 와있다. 프로가 한국농구의 발전은커녕, 퇴행과 분열만을 가속화시켰다는 냉정한 현실에 이제 농구계가 팬들 앞에 겸허히 대답해야할 의무가 있다.[데일리안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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