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찔레의 편지 264>푸른색은 희망이다. 푸른 달동네
안창마을에 희망의 깃발 나부끼기를 기대한다
좁은 골목에 아무렇게나 도열한 붉은 고무통에 고추와 상치가 자란다. 거름이 부족한 탓인지 깊은 주름을 가진 주인 할머니의 앙상한 몸처럼 채소도 그저 그렇다. 여름날, 팍팍한 다리로 오르는 골목길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제법 키가 웃자란 접시꽃이나 맨드라미, 봉숭아, 담 아래 붙어 생명줄을 이어가는 채송화 같은 것들이 깊은 숨을 내 뱉는 나를 바라본다.
안창마을 푸른 집들 I
먹장구름에 하늘을 가리웠으나 푸른색을 칠한 슬레이트 지붕과 물통들이 하늘처럼 푸르고 블록을 쌓아 올린 담의 퇴색한 푸른빛이 오히려 눈을 선명하게 하는 달동네, 안창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나의 70년대를 추억한다.
동구 범일4동과 부산진구 범천2동에 걸쳐있는 안창마을은 우선 찾아가는 길조차 쉽지 않다. 부산진시장 뒤로 들어가 언덕배기 길을 따라 범일초등학교를 찾고 그 길로 곧장 오르면 수정산 골짜기에 위치한 안창마을이다. 멀리 자성대 부두가 보이는 마을 꼭대기에 서면 거의 푸른 페인트를 칠한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이 따개비처럼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창마을 푸른 집들 II
안창마을은 6.25전쟁 시절 피난민 거주촌부터 시작된 부산의 대표적인 집단이주민촌이다. 거의 모든 이곳의 땅은 자연녹지이며, 800가구가 넘는 동네의 집들 중 건축허가를 받은 집은 83가구에 불과하다. 또한 각 세대는 3-20평의 노후 불량의 주택들로 땅이 생긴 모양대로 지어졌다. 이런 이유로 2006년 여름 장마 때 슬레이트 지붕이 바람에 날아가면서 고압선이 끊겼고 집안은 온통 물바다에 암흑천지로 변해 촛불로 몇 날 몇 일을 보내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바다를 끼고 형성된 부산에는 아직도 달동네들이 많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이곳 인근 문현동 돌산마을, 황령산 아래 물만골, 구덕산 아래 꽃동네, 천마산 아래 부민동, 초량 산복도로 일대, 감천동, 전포동이 있다. 이렇듯 달동네가 많은 이유는 산이 많은 곳이라 동네의 형성이 자연히 산등성이를 타고 이루어졌던 점, 6,25전쟁 등을 겪으며 과다 유입된 인구가 여러 곳의 산등성이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던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부산 달동네 풍경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재개발에 의해 집을 잃은 사람들이나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도시 빈민자 계층의 지속적인 유입이 계속되어 오면서 현재의 달동네들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마을 입구 세종대왕의 모습이 뚜렷한 만원 권 지폐가 그려진 벽화는 그런 면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듯 하다. 아이들과 천사들이 별나라에서 줄을 타고 달 위에서 잠을 자는 모습의 길 반대편 벽에 그려진 그림은 이곳 사람들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라 여겨지면서 슬며시 웃음이 난다.
벽화를 따라 간선도로를 걷다보면 다른 달동네와 달리 이곳에는 오리고기집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제법 유명하다고 한다. 마치 금정산의 산성마을이 염소고기로 유명한 것과 흡사한 모습이다. 높은 산 위이면서 계곡 물이 조금씩 흐르는 지형적 특성을 이용한 이런 장사는 자연 그들의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강구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안창마을 벽화 I
조금 더 가면 만화로 그려진 벽화가 있고 그 다음에 보이는 악동(惡童) 두 명의 그림이 보인다. 내가 안창마을을 찾게된 동기가 바로 이 그림이다. 골목대장인 듯한 한 아이가 골목길에 들어오려는 같은 또래의 아이에게 새총을 겨누고 그것을 눈치 챈 아이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자기를 겨누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쳐다본다. 각각 다른 벽에 그려졌으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하게 되는 이 그림은 70년대에 나와 친구들의 모습 그대로다.
옛 기억에 대한 반추는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이 벽화를 보면서 나는 그 시절 골목길을 채웠던 아이들의 고함소리와 즐거운 소란함에 젖어든다. 골목을 이루는 벽 뒤로 누구의 집 아버지는 늘 취해있었고, 할머니와 살던 누군가는 시골로 갔던 기억이 난다.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 놀던 우리가 빈곤하다는 것이 단지 불편한 것에 그치지 않고 불안함과 피로감이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자란 뒤의 일이다.
안창마을 벽화 II
푸른 벽에 광안대교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의 벽화 한 폭은 현실과 괴리감을 가지고 있는 도시의 부조화를 보여주지만 온 화면의 푸른 바탕은 그래도 그 속에서 희망의 싹이 움틀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까? 노란 오리가 이제 막 걸음 뗀 아이의 발걸음처럼 줄지어 걷고 지붕 아래 처마를 타고 노는 좀 더 자란 오리는 나중에 지붕 위를 훨훨 날아 좀 더 나은 삶의 타로 안주 할 수 있을까?
안창마을 벽화 III
이 빈한한 마을에서 조금은 무거웠던 마음을 덜 수 있는 이유가 이 모든 벽화들이 그래도 유쾌하고 희망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곳의 벽화들은 문화관광부로부터 6000만원의 지원을 받아 2007년 6월부터 안창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 <안(內).창(蒼).고(庫)>를 추진한데서 비롯되었다. 이곳에서 목회활동을 하던김선일씨가 2004년 이라크 내 테러단체에 피살당하자 일시 이목이 집중되었던 이 마을이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받게 된 것이다.
안창마을 벽화 IV
프로젝트는 미술작가그룹인 ´오픈 스페이스 배´의 주도로 진행됐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이들은 안창마을이 추구하는 모습에 대해 주민의 의견을 가정 존중하여 반영하였다고 한다. 그림을 직접 그리고 설치를 한 이들은 지역 미술가, 부산대 건축과 동아리, 동의대 미대생, 신라대 공예과 학생들이라고 한다. ´오픈 스페이스 배´는 부산 기장군의 배나무 과수원 구릉에 있다. 언젠가 이곳을 방문해 그림구경을 하고 차를 얻어 마신 적이 있어 반가웠다.
이 프로젝트에서 또 하나의 작지만 예쁜 작업이 레고 조각을 이용한 문패, 작은 나무판에 주사위나 꽃을 그린 안내판 등을 개성 있게 제작해서 설치한 것이다. 작고 보잘것없는 집이나 좁은 골목길에 제 이름을 가장 돋보이게 찾아주는 작업이야말로 이 마을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긍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창마을 골목길 I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쪽은 불편하다. 이런 나의 방문은 다분히 미학적 관점에서의 호기심을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 큰데서 비롯되는 미안함 때문이다. 가장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이곳 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막연한 동정론을 펼치는 것일 것이다. 그와 더불어 잠시 호기심으로 이곳에 와서 그들 주변을 기웃거리는 것도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을 주민들에게 웃으며 "안녕하세요"하고 공손히 인사하는 것뿐이다.
안창마을 골목길 II
또 한가지 마음 불편한 것은 이 마을에 와서 듣게 된 재개발에 관한 이야기다. 2008년 8월 27일 14만9천109㎡의 안창마을이 주택재개발을 위한 정비지구로 지정. 고시되었다고 한다. 주거환경의 정비를 위해서라고 한다. 821채의 기존 주택이 모두 철거되고 1천500여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15층 이하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된다는 계획이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곳 주민들은 더 열악한 환경으로 이주해야 할지 모른다. 다만 이곳을 재개발해도 인프라가 없고 외진 곳이라 생각만큼 재개발이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아 건설회사들조차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조금 안도한다.
이곳의 재개발 계획은 ´도시의 미관´이나 ´주거환경의 정비´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법하다. 재개발도 결국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만족하게 느낄 수 있는 배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재개발의 한 주체로 참여함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담보 받을 수 있을 것이며 그 지역의 정체성이 반영된 개성이 넘치는 재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다행한 것은 관청의 의식이 바뀌어 이곳의 빈집들도 마치 통영의 동피랑 마을처럼 작가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게 한다는 말을 듣는다.
안창마을 골목길에서 만난 접시꽃과 창문
이 마을에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을 오른다.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이 골목길 오르며 차 오르는 깊은 숨소리처럼 고단할 수도, 얽힌 길처럼 헝클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작은 방에 뚫린 쪽창에서 소탈한 할머니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여름 더위에도 푸른 색 담 아래 심겨진 고추모종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 웃음소리나 고추모종에서 끈질긴 생명력과 의지로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안창마을 풍경
동네 마을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푸른 담과 지붕, 그리고 지붕에 얹어놓은 물통들이 모두 파란색이다. 인도의 ´blue city´라 불리는 ´조드뿌르´를 닮았다고 누군가가 그랬다. 그러나 나는 이 마을을 규정짓는 푸른색의 이미지에서 몽골족의 ´하닥´을 떠올렸다. 푸른 천 ´하닥´은 길상(吉祥), 혹은 축복, 안녕을 의미한다. 그래서 몽골족은 의식(儀式)이 있을 때는 푸른 천 ´하닥´을 목에 두르기도 하고 멀리 길을 떠나는 자식에게도 꼭 푸른 천을 손에 쥐어준다.
그런 푸른 천들이 공중에 날리는 느낌을 이곳에 대입해본다. 푸른색은 희망이다. 푸른 달동네 안창마을에 희망의 깃발 나부끼기를 기대한다.
안창마을 벽화 V
* 안창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문현동 ´안 동네´가 있습니다. 얼마 전 상영된 영화 ´마더´를 촬영했던 곳이지요. 안창마을보다 늦게 벽화마을로 조성된 곳이지만 이곳은 정부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자원봉사자들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벽화마을입니다.
문현동은 과거부터 부산의 `사립문´역할을 하던 곳으로 ´문 너머´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문 너머에 있는 희망´을 주제로 벽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두 곳을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참고의 글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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