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의 불은 공급망인데 손엔 돈 쥐여준다
공급 위기 대응보다 체감 정치가 먼저였나
절약 주문·금모으기 소환 속 익숙한 카드
파장은 전국민적인데 지원금 선별 지급
이재명 대통령이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중동 사태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중동 전쟁의 경제 충격 속에 정부가 추경(추가경정예산) 전면에 내세운 카드는 지역화폐다. 정부는 현재 국내 국면을 '전시'로 규정하고 에너지 수급과 공급망 문제를 점검해왔다. 국민에게는 절약을 당부했고, IMF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까지 소환하며 '공동체를 위해 함께한 위대한 국민'이라 치켜세우기도 했다. '자원안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내민 대표 카드는 에너지 확보 대책이 아니었다. 당장 발등의 불은 에너지와 공급망에 떨어졌는데, 정부가 꺼내 든 것은 지역 소비를 겨냥한 지원금이었다.
가장 본질적인 의문은 여기에 있다. 지금의 위기는 원유·물류·원자재 조달 리스크가 산업 전반의 비용을 밀어 올리는 공급 충격 국면이다. 그렇다면 대응의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그런데 위기의 진단과 처방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지역화폐는 이번 위기와 무관한, 너무 익숙하고 너무 정치적인 카드다.
지역화폐로는 에너지를 확보할 수 없다. 공급망을 복구할 수도 없고, 물류 리스크를 줄일 수도 없다. 정유사의 조달 부담을 덜어줄 수도 없다. 결국 위기의 본질을 겨냥한 카드가 아니라, 사람들이 빨리 체감할 수 있는 카드를 고른 듯한 인상을 남긴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어색함은 더욱 커진다.
정부가 국민에게 반복해온 메시지도 이런 모순을 더 키운다. 정부는 일부 논란을 가짜뉴스로 규정해왔고, "가짜뉴스는 반란 행위"라는 고수위 표현까지 공식석상에서 발신했다. 결국 정부는 지금의 혼란을 실물 부족보다 과도하게 증폭된 불안의 문제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국민은 정부의 장담보다 "아껴 쓰라"는 지침 속 위기 신호를 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추경의 한복판에 세워진 것은 지역화폐다. 손에 잡히는 돈은 즉각 반응을 만든다. 바로 홍보되고, 바로 체감되고, 바로 정치적 언어가 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본질을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마치 정부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인상만은 가장 빨리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선별 지원이라는 설계 역시 이 정책의 기만성을 더 짙게 만든다. 정부가 그간 강조해온 위기는 특정 계층만의 위기가 아니었고 국민 생활 전반을 흔드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정책의 이름은 '고유가 피해지원금'이면서도 실제 지급은 소득 하위 70%에 한정된다. 파장은 전국민적인데, 지원의 범위는 선별해 이뤄진다.
지역화폐의 문제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골목상권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풀린 자금이 담배 사재기나 미용 시술 같은 정책 취지와 무관한 소비로 흘러 들어가는 '지출 왜곡' 현상은 이미 반복돼왔다.
결국 이번 대책이 남긴 인상은 무엇일까. 공급 위기를 관리하기보다, 위기 위에 소비 진작의 언어를 덧씌웠다는 점이다. 지역화폐는 위기의 본질을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에 가깝다. 그래서 더 불편하다. 정부가 진짜 다루고 싶은 게 위기인지, 아니면 위기 국면에서 뽑아낼 정치적 반사이익인지 모호해진다.
에너지 위기 대응이라더니, 결국 난데없는 지역화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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