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4700만이 노사모도 아닌데”

입력 2009.05.31 10:31  수정

홈페이지 칼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대한 감성적 접근 경계

“방송 3사, 노 전 대통령 순교자·희생양 등으로 부각시켜”

김동길 연대 명예교수는 “적어도 장례식 날 하루는 완전히 ‘노사모의 날’이었고 그 날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노사모의 대한민국’이었다”면서 “방송 3사의 PD도 아나운서도 몽땅 ‘노사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감상적인 추모열기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방송 3사가 노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그리면서 이명박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는 듯한 보도 태도를 취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김 교수는 30일과 31일 잇따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접근하거나 ‘순교자’ 등으로 그리는 것에 경계했다.

김 교수는 31일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더니’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시인 모윤숙의 유명한 작품 중에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가 있는데, 나는 16대 대통령의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만일 모 시인이 오늘도 살아 있다면, 혹시 ‘노무현 씨는 죽어서 말한다’고 한 수 읊지 않았을까 남들이 안하는 생각을 해보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적어도 장례식 날 하루는 완전히 ‘노사모의 날’이었고 그 날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노사모의 대한민국’이었다”면서 “방송 3사의 PD도 아나운서도 몽땅 ‘노사모’처럼 내 눈에는 비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론 사람이 죽었다는데 슬픈 기색을 나타내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카메라는 슬픈 표정보다는 오열하며 울부짖고 하염없이 눈물 뿌리는 그런 얼굴들만 골라서 비쳐 주었다”며 “그들의 신원을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부모의 상을 당한 것처럼 실신한 듯 통곡하고 있었다”고 방송 3사의 감성적인 접근을 문제삼았다.

김 교수는 “참여정부에서 총리도 지내고 장관도 지낸 사람들의 눈물은 이해가 가지만, 한 때는 그 정권의 국민적 지지율이 10퍼센트대로 하락한 적도 있었고, 그 정권하에서 하도 억울하여 한강에 투신자살한 대기업의 사장이나 목을 매어 생을 마감한 광역시의 시장도 있었다”며 “대한민국의 4700만 동포가 다 ‘노사모’가 아닐 뿐 아니라 국군은 죽어서 말하지만 국군 아닌 사람이 죽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차분한 자세로 역사의 심판을 기다려 보자”고 끝맺었다.

앞서 김 교수는 30일에도 ‘정권교체는 아직도 멀었습니다’라는 글에서 전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보며 “2007년 대선을 통해 여당은 야당이 되고 야당은 여당이 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민장은 가히 ‘세기의 장례식’이라고 할 만큼 역사에 남을 거창한 장례식이었다”며 “인도의 성자 간디가 암살돼 화장으로 국장이 치러졌을 때도 우리나라의 이번 국민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라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중국의 모택동 주석이나 북의 김일성 주석의 장례식도 2009년 5월 29일의 대한민국 국민장을 능가하지는 못하였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떤 사람들은 실황중계를 시청하다가 꺼버렸다고 들었지만 나는 TV 앞에 앉아 오후 시간을 몽땅 보냈다”며 “그리고 정말 놀랐다. 노란 모자, 노란 풍선, 서울광장은 완전히 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같은 국민장이 이뤄진 데에는 정부의 조직력 등이 한 몫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사모 회원이 전국적으로 몇 명이나 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장례식 준비만은 완벽했고, 나 혼자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또 하나의 정부’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면서 “마땅히 존재한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그 정부보다 훨씬 유능하고 조직적이고 열성적인 또 하나의 정부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정부가 보이는 정부보다 훨씬 능력이 있다면, 이명박 후보를 전적으로 지지한 1000만명은 낙동강의 오리알이 되는 것인데, 왜 대통령이 되셔가지고 우리(보수세력)를 모두 이렇게 만드냐”며 “속시원한 말이라도 한마디 들려 달라. 답답해 속이 터질 지경”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또 김 교수는 방송 3사에 대해 ”노무현씨를 하나의 ‘순교자’로, ‘희생양’으로 부각시키는 일에 성공했다. 이 장례식이 끝난 뒤에는 그 어느 누구도 노무현씨를 비판할 수 없게 됐다”며 “내가 보기에 노무현씨는 ‘순교자’도 아니고 ‘희생양’도 아니고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를 다 누렸고, 저승으로 가는 길도 본인이 선택한 것일 뿐, 누구의 강요나 권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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