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취임 이래 가장 분주한 해…이재용, 다른 밀도의 시간 보냈다

정인혁 기자 (jinh@dailian.co.kr)

입력 2025.12.23 13:18  수정 2025.12.23 13:55

공식 일정 비중 매 해 늘어나…실질적 성과로 이어져

엔비디아·테슬라·오픈AI·애플 등과 협력 범위 넓혀

AI·반도체·전장 잇는 행보…삼성의 미래로 연결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회장 취임 이후 가장 촘촘하고 무거운 시간표를 소화했다. 단순히 이동이 잦았던 한 해가 아니라, 삼성의 미래 기반을 다지는 일정이 연중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밀도의 시간을 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전날 기흥·화성 캠퍼스를 찾아 차세대 반도체 기술력을 점검한 일정을 끝으로 올해 현장 경영 일정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이 회장은 전날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경기도 기흥의 첨단 연구개발(R&D) 단지를 방문해 "과감한 혁신과 투자로 본원적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자"고 강조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확대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경쟁력 제고로 DS부문의 하반기 실적이 대폭 개선되자 시장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현장 경영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은 올해 다수의 해외 출장, 비즈니스 미팅, 국내 사업장 점검 등 일정을 소화했다. 중국발전포럼(CDF)을 시작으로 일본 출장, 선밸리 콘퍼런스, 한·미 관세 협상 지원을 위한 장기 체류,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 한·UAE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APEC 정상회의 참석, 연말 미국 출장까지 이어졌다. 비공개 회동을 제외하고 알려진 공식 일정만 약 16건에 이른다.


눈에 띄는 것은 출장 장소보다 이 회장이 만난 이들의 면면과 논의의 성격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이 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회장, 왕촨푸 BYD 회장, 레이쥔 샤오미 회장,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 등 글로벌 산업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들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이 회장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전기차, 공급망 등을 주제로 글로벌 CEO들과 마주 앉았다. 끊임없이 삼성의 주요 사업 축이 확장될 수 있도록 협력의 범위를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춘 미팅이 이어진 것이다. 이는 과거의 '현장 경영'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다.


회장 취임 직후였던 2022년과 2023년, 이 회장의 해외 일정은 사업장 점검과 국가 순방 동행에 무게가 실렸다. 실제로 회장 취임 직후 첫 해외 출장지는 UAE로, 바라카(Barakah) 원자력 발전소 3·4호기 건설 현장을 둘러봤다. 같은 해 하노이 삼성 R&D센터 준공식에 참석했다. 2023년에는 미국 순방을 비롯해 정부 외교 일정에 동행하며 글로벌 CEO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2024년은 변화의 방향이 분명해진 해였다. 이 회장은 5월 말부터 2주간 미국 뉴욕과 워싱턴DC, 실리콘밸리를 가로지르며 30여 건에 달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를 비롯해 퀄컴·아마존 등 주요 빅테크 수장들과 연쇄 회동하며 반도체와 플랫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여름에는 오스틴과 실리콘밸리에 장기 체류하며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과 접촉했고, 파리 올림픽 기간에는 엘리제궁 오찬을 계기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글로벌 기업인들과 교류했다. 현장 점검을 넘어, 전략적 대면의 비중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첨단 복합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삼성전자

다만 이 같은 변화가 한 해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반면 2025년은 해외 출장과 국내 전략 미팅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논의의 무게가 연중 고르게 분산된 첫 해로 평가된다. 아울러 이 회장이 참여한 대화는 대체로 삼성의 미래 기반 구축으로 귀결됐다. 반도체 논의는 AI 플랫폼 협력으로, 전장(자동차 전자·전기 장비) 논의는 공급망 확장으로 이어졌다.


주요 글로벌 CEO들과의 전략적 만남은 구체적인 성과로도 연결됐다. 2월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시작으로, 8월 빌 게이츠 이사장, 10월에는 샘 올트먼 CEO와 젠슨 황 CEO,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회동이 연이어 성사됐다. 11월에는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회장을 각각 만나 AI, 반도체, 전장, 모빌리티를 아우르는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같은 논의는 조 단위 사업 성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테슬라와 165억 달러(약 23조원) 규모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차세대 AI 칩을 생산하기로 했다. 애플과는 차세대 이미지 센서(아이소셀) 공급 계약을 맺었다. 오픈AI와는 서울 서초사옥에서 LOI를 체결하고 HBM 등 메모리 공급과 함께 700조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AMD와의 미팅에서는 HBM 공급을 넘어 시스템반도체 설계 협력 가능성도 거론됐다.


정부와의 협력 역시 소홀하지 않았다. 한·미 관세 협상 지원에 나섰고,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과 APEC 정상회의, 한·UAE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도 잇달아 참석했다. 민간과 공공의 경계를 오가며 삼성의 전략 기반을 넓히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이어진 이 회장의 2025년 행보는 세계 산업 질서의 재편 흐름과 맞물려 있다. 가장 분주한 한 해이면서, 동시에 가장 전략적인 시간이었다는 평가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정인혁 기자 (jinh@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