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논란에 한발 물러선 與
쟁점 수정했지만…법안 본질은 그대로
"특정 사건에 재판부 구성 자체가 위헌"
'위헌' 판단시 정부·여당 책임론 직면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17일 강원 춘천시 민주당 강원특별자치도당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위헌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법안을 손봤지만, 위헌 여지는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강행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탓에 야권으로선 막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내란재판부에 대한 민심의 평가가 여야 득실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17일 강원도당에서 진행된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전날(16일) 의원총회를 통해 대략 윤곽이 잡혔다"며 "아주 세세한 미세 조정이 남아 있지만,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민주당은 위헌 논란에 휩싸였던 '내란재판부 설치법'에 대한 시비를 없애기 위해 여러 쟁점을 수정했다. 사실상 2심부터 재판부를 설치하거나 판사 추천 과정에서 임명까지 법원 외부 인사를 배제하는 등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당의 수정 법안을 살펴보면 추천 방식과 재판 절차에서 변화가 있다.
대표적으로 기존 법명이 수정된다. '12·3 윤석열 비상계엄 등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명칭 때문에 처분적 법률(특정한 개인이나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법)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윤석열' 이름 대신 내란 및 외환을 추가해 법명을 일반화시켰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은 이관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내용도 담길 방침이다. 기존 1심부터 설치하는 내용은 유지되지만, 부칙에 이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다. 사실상 2심부터 운영하기로 당내 의견이 모인 결과다.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은 지귀연 부장판사가 이끄는 1심 재판부가 계속 심리하게 된다.
'외부 인사'가 판사를 추천해 사법부 독립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일부 수용됐다. 당초 헌법재판소 사무처장·법무부 장관·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이 추천위를 구성하도록 규정돼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추천위원 추천권을 법원이 갖고, 추천위원도 법원 내부인으로 구성하도록 수정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대법관 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판사를 임명하거나, 내란범의 사면 제한 규정 등 조항도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오며 김 원내대표가 이언주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내에선 위헌 소지가 해소됐다고 보는 분위기다. 당초 원안을 두고 대통령실과 당내 일부에선 우려를 드러낼 정도로 이견이 있는 법안이었지만, 의원총회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수정안에 대해선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권칠승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그동안 내부 혹은 외부에서 지적했던 여러 가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논란이 됐던 것들을 다 해소했기 때문에 위헌 여부는 이제 없어졌다고 당에선 보고 있다"며 "여기서 더 이상 위헌 여부를 이야기하는 건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다만 야권에선 '위헌' 소지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내란재판부 자체가 위헌이기 때문에 일부 조항을 수정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특정 사건에 대해 특정한 재판부를 구성하는 것 자체가 위헌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일부 요건을 완화하더라도 내란재판부가 구성되고 재판을 진행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사실상 위헌성을 약화시키는 정도에 불과하지 위헌성이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야권에선 "독극물은 조금 덜어내도 독극물"이라며 내란재판부 설치법이 명확히 위헌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우리 헌법은 군사 법원을 제외한 어떠한 특별법원도 허용하지 않는다"며 "특정 사건만을 위해 특정 정치적 목적 아래 기존 사법 체계와 분리된 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발상 자체가 '명백한 위헌'"이라고 했다.
김정철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위헌 소지를 해소했다고 하지만, 위헌성이 약화된 것에 불과하지 특정 사건에 대해 특정한 재판부를 구성하는 것 자체가 위헌성이 있다"며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특정 사건을 맡을 판사를 지정하는 것은 결국 누구 손에 의해서 정해지든 간에 기본적으로 위헌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번 내란재판부 설치법에 대한 세부 조항을 수정한 이후, 오는 21일 또는 2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내란재판부는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위헌 소지가 최소화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추진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한다"고 밝힌 만큼, 사실상 연내 처리는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다만 내란재판부는 절차를 거쳐 설치되는 것과 별개로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존재한다. 현재 내란재판부를 둘러싼 민심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팽팽하게 엇갈릴 정도로 논쟁이 많은 사안이다.
비전코리아가 올리서치/포털신문의 의뢰로 지난 10~12일 사흘간 무선 100% ARS 방식으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에 대한 여론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45.7%가 찬성, 우리 국민 43.9%가 반대로, 찬반 간의 격차가 오차범위 내인 1.8%p에 불과할 정도로 민심이 팽팽하게 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여당이 위헌 소지를 일부 해소한 것이 민심에 당장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지만, 분수령으론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윤 전 대통령 재판 선고가 꼽힌다.
윤석열 전 대통령 ⓒ서울중앙지법 제공
정치권에선 내란재판부 설치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헌법소원은 피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위헌법률신판이 제청될 경우 내란 재판이 정지되며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재판이 정지된 것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커질 가능성이 있으며, 위헌 판단이 내려진다면 정부·여당의 책임론은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대립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합헌이라고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정도의 사안"이라며 "사실상 정부·여당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사건이 무죄가 내려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에 재판부를 압박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 일부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내란재판부 설치 필요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여당이 그동안 이 문제를 '일방통행식'으로 추진한 것에 대한 불만이 향후 역풍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거대 여당이 사법부와 소통으로 풀 수 있었던 사안임에도 최종 수단인 입법을 활용했고 위헌성 논란까지 있기 때문이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사실 여기까지(내란재판부 설치법 추진) 오면 안 됐다"며 "사법부가 지귀연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나 재판부 배정 등 문제로 국민의 불신을 키운 것은 맞지만, 사법부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은 내란재판부 설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위헌성 논란 등으로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결국 윤 전 대통령의 1심 판결이 중요한데, 만약 이상한 판결이 나온다면 내란재판부 문제가 다시 커지는 것은 물론 그동안 사법부와 각을 세운 여당의 정치력이 무능하다는 생각을 중도층은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내란재판부 설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얼마나 끌어내고 있냐가 중요하며, 민심이 50% 이상 넘지 못한 것은 결국 정치력이 문제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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