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의 좌표[D:쇼트 시네마(142)]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2.14 08:25  수정 2025.12.14 08:25

한정길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연인과 헤어진 후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 기혁(전성일 분)은 성소수자인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다.


일자리도 구해지지 않는 답답한 일상 속에서 그는 우연히 메신저로 가출청소년 상우(김동휘 분)를 알게 된다. 늦은 밤 “하룻밤만 재워달라”는 상우의 부탁에, 아파 보이고 갈 곳 없어 보이는 그를 외면하지 못하고 집으로 들인다.


며칠을 함께 지내는 동안 기혁은 상우가 잠시만 시야에서 사라져도 불안해지고,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릴까 두려워진다.


집을 치워주고, 신발끈을 묶어주는 사소한 행동들이 쌓이며 두 사람은 묘한 친밀감을 만든다.


그러나 기혁이 두려움과 외로움 끝에 잠든 상우에게 입을 맞춘 그날 밤, 상우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진다. 이후로 기혁은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한다.


혼란과 공허 속에서 기혁은 결국 친구가 권했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신발끈이 풀린 기혁에게 친구가 “이 일은 디테일이 중요하다”며 묶어주는 순간, 상우가 남기고 간 말과 온기가 다시 떠오른다.


상우가 누구였는지, 진짜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로 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혁은 그날도 여전히 흔들리며 하루를 살아간다.


'노마드'의 관계는 처음부터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 연인과 이별한 뒤 새로운 동네로 흘러온 기혁은 외로움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고, 우연히 만난 상우에게 빠르게 마음을 기댄다.


하지만 그 감정은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비대칭적이며, 안정되기보다는 불안이 만든 애착에 가깝다. 상우가 방 안에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기혁이 초조해지는 장면들에서, 그의 마음은 상우라는 사람보다 상우가 채워주는 자리에 더 매여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반면 상우는 기혁에게 특별한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그저 하룻밤 머물 곳을 찾았고, 며칠 동안 몸을 누일 공간을 얻었을 뿐이다. 기혁이 전해주는 온기는 상우에게 위안이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애정이나 의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상우는 처음부터 머물러 있을 사람이 아니었고, 기혁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두 사람의 짧은 동행은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두 사람이 지나가는 지점이 잠시 겹쳤던 순간에 가깝다.


영화가 성소수자의 관계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이 비대칭성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읽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청춘이 겪는 외로움, 사회적 안정망의 부재,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감각’은 기혁이 상우에게 과도하게 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노마드'라는 제목은 결국 이 둘의 간격을 말한다. 상우가 떠난 뒤에도 기혁이 상우를 종종 떠올리는 건,그를 향한 마음 보다 자신의 결핍이 컸기 때문 아닐까. 러닝타임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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