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이, 영화관을 넘어 사유의 플랫폼으로 [공간을 기억하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1.21 16:29  수정 2025.11.21 16:30

[작은영화관 탐방기㉙] 무사이 독립영화관

부산에 위치한 무사이는 독립영화관이자 독립책방, 카페가 한데 모여 있는 그야말로 사유의 놀이터다.


‘생각을 불러일으키다’라는 무사이 이름의 어원에서 출발한 이 공간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잠든 질문과 생각을 조용히 깨우는 일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질문에서 생각이 움트고, 그 생각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흐름을 건강한 순환이라고 믿는 최용석 대표의 철학이 무사이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그래서 무사이는 관객과 독자, 그리고 이곳을 찾는 누구에게나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허락하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경계를 두지 않는다는 운영 철학... 책과 영화는 '짝패', 카페는 '전환의 공간'


무사이가 어떤 점에서 다른 지역의 독립영화관과 구별되는지에 들여다 보면, 이 공간을 움직이게 하는 고유한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다른 지역의 독립영화관과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사실 제가 모든 영화관의 운영 방식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무사이만의 특징을 굳이 꼽자면 ‘경계를 두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직접적으로 해롭지 않다면 어떤 영화든 상영할 수 있고, 어떤 관람객에게든 열린 공간이 되기를 지향하고 있어요. 이는 단순히 프로그래밍 기준에 경계를 두지 않는다는 뜻을 넘어, 상영하는 영화의 종류, 상영을 제안하는 주체,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층, 상영이 이루어지는 시간대 등이 모든 것에 불필요한 제한을 두지 않으려는 운영 철학이기도 합니다. 외부에서 보기에 어떻게 평가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희는 무사이가 다양한 가능성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경계 없이 열려 있다는 점이 무사이의 가장 큰 특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사이 제공

무사이가 세 가지 기능을 한 공간에 겹쳐 놓은 선택 뒤에는, 각 매체가 서로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고 움직이는지에 대한 그의 오랜 관찰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사이를 운영하며 점점 분명하게 느낀 점이 하나 있어요. 책과 영화는 서로 다른 형식을 갖고 있어도 결국 같은 지점에서 시작해 같은 지점으로 돌아가는 매개체라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책이 모든 것의 기반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영상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그 경계가 훨씬 흐릿해졌다고 느껴요.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글을 써야 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어떤 장면을 먼저 그려봐야 하잖아요. 그러니 책과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서로 나누어 맡고 있는 ‘짝패’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방과 영화관은 책과 영화를 담아두는 그릇, 다시 말해 ‘생각이 가장 촘촘하게 차 있는 공간’이에요. 이 두 공간은 사람들의 내면을 흔들고, 불러일으키고, 머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죠. 그렇다면 카페는 어떤 역할일까요? 저는 카페를 책과 영화로 들어가기 전의 전실이자, 깊은 생각을 마친 뒤 일상으로 돌아오는 환기의 공간이라고 느낍니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천천히 걸어나갈 수 있는 여백 같은 자리죠. 무사이의 카페가 그런 ‘전환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활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역과 함께하는 생존 조건, 무사이가 지향하는 궁극의 가치 '삶의 회복'


무사이는 프로그래밍과 도서 큐레이션에서 부산이라는 지역성을 반영하기 위한 뚜렷한 기준을 따로 두고 있지는 않다. 다만 지역 독립영화관으로서 더 많은 지역 주민이 이 공간을 찾길 바라는 현실적인 마음이 자연스럽게 작용하며, 부산이라는 환경을 고려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영화 프로그램에서는 지역과의 협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요. 부산독립영화협회와 함께 월 1회 '인디크리틱 인 무사이'라는 이름으로 GV를 진행하고 있고, 부산의 영화평론가가 주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소개하는 상영도 매달 열고 있습니다. 부산독립영화제나 인터시티 영화제와의 협업도 저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역 연결 지점이죠. 책방 역시 지역성과 닿아 있어요. 부산의 작가 분들을 초청한 북토크를 월 1회 정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고, 올해는 '사유지'(思惟智)라는 개인 책장을 분양해 지역 시민들의 책과 문화 콘텐츠를 전시할 수 있는 작은 플랫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는 무사이가 지역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정리하자면, 명확한 기준을 세워 지역성을 프로그램에 억지로 끼워 넣는 것은 아니지만, 무사이는 자연스럽게 부산과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지역과 함께하는 일은 저희에게 의미 있는 선택이면서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생존 조건이기도 해요."


무사이의 영화 상영 기준은 특정 장르나 성격에 경계를 두기보다, 가능한 한 다양한 세계관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순간 이미 창작자의 생각과 시선이 고유한 표현으로 스크린에 새겨진다고 보기 때문에, 이 공간은 특정 주제나 형식을 걸러내기보다는 서로 다른 생각들이 머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둔다


"영화 상영도 '이런 영화만 상영한다'는 기준이 따로 없어요. 언젠가부터 저는 어떤 영화든 그것이 만들어진 순간 이미 누군가의 생각과 세계관이 담긴 고유한 표현이라고 느끼게 됐거든요. 아쉬움이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영화를 모두 알 수도 없고,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수급이 어려워 소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에요. 그럴 때마다 공간의 한계를 가장 크게 느끼곤 합니다. 영화를 고를 때 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반응이 오는 지점이 있다면, 제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삶과 시선을 담고 있는 작품일 때예요. 나와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런 영화일수록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무사이의 기준은 기준의 부재가 아니라, 가능한 한 열린 상태로 영화를 맞이하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누군가의 생각이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그 순간을 존중하고, 그 다양성을 공간 안에 담아두는 것.그것이 무사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입니다."


책과 영화가 한자리에서 머무는 환경은 새로운 형식의 기획들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기반이 됐다.


"무사이에서는 책과 영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지점을 자연스럽게 탐색해왔고, 그 과정에서 여러 실험적인 프로그램들이 탄생했어요. 예를 들면, 책을 주제로 삼거나 특정 책을 해석한 영화를 상영한 뒤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북씨네', 문학과 공연을 결합해 새로운 감각으로 작품을 풀어낸 '북콘서트', 영화를 보고 떠오른 이미지를 시로 쓰는 '영화로운 시'같은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사례는, 특정 단어를 하나 선정한 뒤 그 단어와 연결된 영화를 함께 보고, 그 단어를 주제로 글을 쓰고, 다시 그 글로 영화를 소개하는 형식의 'OO영화제' 예요. 한 단어를 매개로 책·영화·글쓰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만들고자 했던 프로그램이죠. 개인적으로 가장 해보고 싶은 시도도 있습니다. '북돋우고 영화로운'이라는 타이틀의 책-영화제입니다. 책을 주제로 삼아 영화, 음식, 공연, 그림 등 다양한 예술 요소를 엮어내고, 지역의 여러 공간과 창작자들이 함께 만드는 형태의 작은 지역 문화영화제를 구상하고 있어요. 문학과 영화, 그리고 지역 문화 생태계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실험을 꼭 실현해보고 싶습니다."


무사이의 미래를 화제로 삼는 순간, 이 공간은 계획을 앞세우기보다 흐름을 따라 변화의 결을 스스로 형성해가려는 방향을 자연스럽게 내비쳤다.


"솔직히 말하면, 이 공간이 어떤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는지 저도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사업 초기에는 무사이 구성원들이 대부분의 흐름을 주도하려 했어요. 프로그래밍이나 큐레이션, 커뮤니티 활동까지 직접 방향을 잡고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려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그 방식이 조금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저희 역량의 부족함일 수도 있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공간이 스스로 원하는 방향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요즘의 무사이는, 제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는 '파도에 몸을 맡긴 상태'에 가깝습니다. 이제 공간은 저희 구성원이 아닌, 무사이를 찾는 분들의 개성과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모습을 바꿔가고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무사이 극장으로, 또 어떤 분에게는 무사이 책방으로, 문화공간으로, 카페로 불리고… 이렇게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은, 이 공간이 더 이상 저희만의 공간이라기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 재정의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확장이라는 말보다는, 무사이가 자연스럽게 다양해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방향을 정해 끌고 가기보다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에 귀 기울이며 함께 변화하는 중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무사이가 지향하는 가장 깊은 지점은, 이 공간이 누구에게나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힘을 건네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닿아 있다.


"저는 이 공간이 '삶의 회복을 돕는 공간' 이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삶의 회복이란, 결국 다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설레고, 무엇이 불편한지, 이런 가장 본질적인 감각들을 다시 알아차리는 일이죠. 그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곧 삶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회복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 - 생각 - 연결 - 기억(기록)으로 이어지는 작은 순환을 거쳐야 한다고 봐요. 질문을 만났을 때 생각이 생기고, 그 생각이 또 나 자신과 연결되고, 그렇게 연결된 감정과 경험이 시간이 지나 기억이 될 때 비로소 삶이 조금씩 회복되는 거죠. 제가 바라는 무사이는 이 순환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공간입니다. 누구든 이곳에서 잠시 멈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삶으로 다시 부드럽게 돌아갈 힘을 얻어가는 경험을 했으면 해요. 그리고 언젠가 지역마다 이런 공간이 하나씩 생겨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무사이를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My Life 문화플랫폼, 무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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