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입장번복…여론 악화 부담된 듯
'대장동 사건' 李대통령 배임죄 혐의 놓고
與 "정치검찰의 악의적인 공소…철회해야"
野 "법 없애 면소 노리나…사법 정면도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APEC CEO(최고경영자) 서밋' 개회식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현직 대통령의 형사재판을 중단하는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정안정법으로 명명해 연내 추진하려던 계획을 하루 만에 번복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해당사자라는 점에서 '위인설법'이자 '이재명 방탄법'이라는 야당의 지적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다만 민주당은 이 대통령이 기소된 혐의인 '배임죄'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국가 경제활성화법이라는 주장인데, 국민의힘은 여당이 배임죄를 폐지해 이 대통령이 받는 대장동 개발 비리 혐의 사건 재판을 '면소'(免訴)로 끝내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법원이 대장동 개발 비리 1심 재판에서김만배·유동규 씨 등 관련자들에 중형을 선고하자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가 재부상했다. 이후 여야는 법원의 판결 내용을 각각 다르게 해석하면서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당초 재판중지법에 대해 야권의 '위인설법' '이재명 방탄법'이란 비판이 쇄도하고 여론도 악화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민주당은 이날 이 대통령 의중에 따라 사실상 철회하기로 했지만, 배임죄 폐지 입법을 둘러싼 갈등은 진행형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지난달 31일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과 관련해 업무상 배임 등 혐의를 받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에게 각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특히 재판부는 정진상 전 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민간사업자 내정에 관여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통령의 지시 여부 등은 개입 여부만 열어 놓은 채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민주당은 이번 1심 선고를 이 대통령의 무죄가 확인된 재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준호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원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대장동 일당이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줬다"며 "이 대통령에 대해 업무상 배임 혐의를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된 상황이 됐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치검찰대응특별위원회도 이번 1심 판결을 계기로 검찰을 향해 이 대통령에 대한 배임죄 기소를 공소취소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성남시장은 유동규 등과 민간업자의 유착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수용 방식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판결에 따라, 이 대통령은 관련 사건에 무관한 만큼 검찰이 배임죄 기소를 공소취소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에 적용된 배임죄 항목이 국회 입법으로 폐지될 경우 대통령은 대장동 관련 사법리스크에서 자연스레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재판중지법을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가 없고, 검찰의 공소 역시 힘을 잃게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은 배임죄 폐지 법안을 '대한민국 경제활성화 입법'이라고 규정한뒤, 국민의힘을 향해 정치공세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당이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는 건 이 대통령의 재판을 삭제하려는 게 아닌 기업의 어려움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민의힘은 '배임죄 폐지법'의 목적은 '이재명 구하기' 시도라고 본다. 장동혁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경기지사 시절 국정감사에서 대장동 설계자는 자신이 맞다고 밝혔다"며 "법원이 대장동 개발비리가 성남시 수뇌부 승인 하에 이뤄졌다고 인정했다면, 수뇌부는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이라고 했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법원은 판결문에서 지역주민이나 공공에 돌아갔어야 할 막대한 택지개발 이익이 민간업자에게 배분됐다며 배임죄 성립을 인정했다"며 "그렇기에 (민주당이) 피고인 이재명 한 사람을 구하려고 대법원장 사퇴, 검찰해체, 배임죄 폐지 등 헌정 질서를 문란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은 배임죄 폐지를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경제활성화법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알다시피 배임죄 폐지는 기업을 위한 게 아니라 기업 오너, 경영진을 위한 법"이라며 "피고인 이재명 한 사람을 구하려고 근로자와 투자자, 즉 국민을 저버리는 배신행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만약 배임죄가 폐지된다면 이 대통령의 대장동 재판은 유죄가 아니라 '면소'로 끝나게 된다"며 "법정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법 자체를 없애겠다는 발상은 사법정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 법안이 통과되면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 대통령에 적용할 법 조항 자체가 사라지게 돼 면소 처분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아울러 나경원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성남시민이 누려야 할 이익이 민간업자에게 과도하게 돌아감으로써 성남시와 시민이 피해를 입었다면 그러한 행위를 고의적으로 한 시점에서 배임죄가 성립한다"며 "유착이 어느 정도 형성됐는지 몰랐기 때문에 배임죄가 아니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법률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궤변"이라고 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당이 추진하던 재판중지법을 "불필요한 법안"이라고 밝혔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에 당정 간 의견 조율이 원활치 않은, 나아가 여당이 대통령실보다 앞서 나가는 데 대해 대통령실이 불편한 기색을 표했다는 해석을 낳았다.
이에 당 지도부 핵심관계자는 통화에서 "재판중지법을 추진한 적이 없으니 '철회' '번복'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맞지 않다"며 "강 실장의 발언은 여당이 아닌 끊임없이 당정을 비난하는 국민의힘을 겨냥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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