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에 불 지르고 도주한 20대女 "호기심에…"

이지희 기자 (ljh4749@dailian.co.kr)

입력 2025.10.30 17:03  수정 2025.10.31 07:59

서울숲 공원 산책로에 불을 지른 뒤 도주한 러시아 국적 관광객이 1심 재판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서울숲ⓒ뉴시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이정형)는 지난 16일 일반물건방화 혐의로 기소된 20대 러시아 여성 A씨에 대한 선고기일을 진행하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6월11일 오후 4시6분 서울 성동구 소재 서울숲 공원 산책로에서 술에 취한 채로 포플러나무(미루나무) 꽃가루에 불을 붙인 혐의를 받는다.


그는 호기심에 라이터로 꽃가루에 불을 붙였는데 바닥을 덮고 있던 꽃가루를 따라 불길이 급격하게 번지자 발로 밟으며 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불길이 잡히지 않았고 잡초 등에 번졌다. 당시 A씨는 30초가량 뒤 현장을 떠났다.


결국 소방 인력 61명과 장비 22대가 출동해 1시간가량의 진화 작업 끝에 불을 껐지만 500㎡가량의 부지가 불에 타서 훼손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러시아에서 아이들이 꽃가루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본 적이 있어 꽃가루에 불이 붙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며 "사건 당시 꽃가루에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불길이 번지는 것과 범행 현장 주변에 꽃가루가 길게 놓여 있는 것도 봤다"고 판단했다.


이어 "결국 피고인은 꽃가루에 라이터로 불을 붙일 경우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면서도 호기심에 불을 붙였으므로 방화의 고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면서 "불길이 제대로 진화됐는지 확인하지 않고 119 등에 신고하지도 않은 채 현장을 이탈했다. 이는 공공의 위험에 대한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용인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 "이 사건 화재가 진화되지 않았더라면 인근 학교나 숲으로까지 불이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다수의 생명·신체·재산에 직접적 침해의 결과가 없었더라도 방화 행위로 그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해 기수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호기심에 우발적으로 범행에 나아간 것으로 보이는 점, 재산상 피해가 크지 않은 점, 인명피해가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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