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2025] 李대통령, 이제 중·일 외교전으로…'실용외교' 시험대

김주훈 기자 (jhkim@dailian.co.kr)

입력 2025.10.30 00:15  수정 2025.10.30 00:21

中, 미국 위주 외교에 줄곧 '견제'

시진핑 11년 만 방한…균형외교 과제

개최 가능성 높아진 '한일 정상회담'

'강경' 日 총리와 '관계 개선'도 숙제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을 재확인했지만, 미국을 견제하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았기 때문이다. '한미일 3각 공조'를 강화해야 하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진 상황에서 중국과의 '동반자 관계'도 발전시키는 균형 외교를 선보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 모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며, 이 대통령과의 양자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두 정상 모두 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치르는 만큼, 우리 정부 입장에선 향후 '한중일' 관계 발전의 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한국이 20년 만에 의장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을 높일 기회로만 평가됐지만, 미·중·일을 비롯한 21개 APEC 회원국 정상급 인사가 경주로 모이면서 '외교 격전지'로 평가될 정도로 중요성이 커졌다. 정치권에선 미국과의 한미 관세 후속 협상과 별개로,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밀접한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미 관세 여파로 한국은 미중 위주의 외교전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다. 미중 무역 전쟁 여파로 중국은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미국을 견제해 왔다. 더욱이 미국에 대한 한국의 태도를 두고 비판하거나, 조현 외교부 장관이 관례를 깨고 먼저 방중한 것을 두고선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는 등 한중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환구시보와 그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9월 조 장관이 중국을 공식 방문한 것에 큰 기대감을 보인 바 있다. 외교 관례상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방한할 차례였지만, 조 장관은 관례를 깨고 중국을 찾자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려는 한국 측의 주도적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미국이 최근 관세와 투자 배분 등의 문제에서 한국에 압력을 가해 한국이 균형 외교의 중요성을 더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 과정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노선을 이전과 같이 유지할 수 없다는 발언에 대해 경계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글로벌타임스는 "경제적 이익이 희생된다면 국가 안보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야말로 한국 정치 지도자들과 재계 리더들이 계산해 봐야 할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미국 방문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중요하게 판단하는 '경제 협력'에 대한 지지를 우회적으로 보낸 것으로 풀이되지만, 중국 입장에선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한국이 미국 위주의 정책을 펼 수 있다는 신호에 불쾌감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 촬영을 마친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한국 입장에선 중국과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대 교역 상대국일 뿐 아니라,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도 그동안 중국을 향해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외교에서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부각되는 면모이기도 하다. "국익에 도움이 되면 가깝게 지내는 것이고, 도움이 안 되면 멀리하는 것"이라는 기조를 일관적으로 유지하며 '친중' 논란을 '균형 외교'로 정면돌파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간) 공개된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지리적·경제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각각 주도하는 블록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며 "두 맷돌 사이에 끼어 있는 형국으로 중국과 미국이 팔을 한 쪽씩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3국 협력을 중시하는 기본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동시에 중국이나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거나 과도한 대립을 하려고 하지 않는데, 한국은 한미동맹을 계속 중시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역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의 외교적 상황을 설명하며 중국과의 '동반자 관계'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 문제가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러브콜을 보냈지만, 끝내 성사되진 않았다. 우리 정부 입장에선 한국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북한과 관계를 개선할 계기가 될 수 있었지만, 현재로선 중국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한중 정상회담에선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며 "한반도 이슈와 북한 이슈 및 주변 정세에 대한 사안도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24일 도쿄 중의원(하원)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과의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주목할 점이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과의 관계 발전 교두보로 일본을 활용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일 3각 공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미국을 방문하기 전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총리와 먼저 만나 '한미일 협력'에 방점을 찍은 바 있다. 이는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 노선에 따른 전략으로 평가된다.


일본과의 '셔틀외교'가 수월하게 복원될 수 있던 배경에는 '온건파'로 분류되는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의 영향도 일부 작용됐다는 평가다. 이시바 전 총리는 퇴임 전 한국을 찾아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화할 정도로 한일 관계 개선에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후임 총리인 다카이치 총리의 경우, '강경파'로 분류되며 이번 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인사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 선출 이후 "한국은 일본에 중요한 이웃 나라이자 국제사회의 여러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우려와 달리, '한일 관계' 발전 의지를 드러낸 것인데, 이는 미국의 관세 전쟁 여파라는 분석이 있다. 일본 역시 미국으로부터 상호 관세 15%를 통보받았고, 나아가 한국보다 높은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도 합의했다.


그동안 양국은 미국과의 협상 과정을 일부 공유할 정도로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양국 정상은 협력 중요성을 확인하고, 미국발 관세 여파를 대비하기 위한 경제적 협력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 등 쟁점은 아직 숙제로 남았지만, 한일 정상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 만큼 향후 논의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관측된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이날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한일은 현재 흔들리는 아주 불투명한 세계 무역질서 속에서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면서 "어느 때보다도 글로벌 파트너로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강하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축하메시지에 '미래지향적 상생협력'이라는 표현을 썼고, 일본 신임 총리는 '미래지향적 안정적 발전을 희망한다'라는 표현을 썼다"며 "두 분의 메시지 기조가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잘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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