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피론 강조하며 정면돌파 시도 계속
"정상화 흐름" 내세우고 주식 이동 촉구
이상경 사표 수리에도 파장 여전 가운데
국민의힘 "대통령 직접 나서 사과하라"
아세안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7일(현지 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공군1호기에 탑승해 인사하고 있다ⓒ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로 이어지는 '정상외교 슈퍼위크'를 본격화한 가운데, 국내에서는 부동산 정책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집값이 떨어지면 집을 사면 된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정부 핵심 인사가 사퇴했지만, 부동산 기조를 둘러싼 여론은 계속해 요동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아세안 순방을 마친 뒤 귀국 직후 APEC 정상회의 준비에 돌입해야 하는 만큼, 국내 현안을 직접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외교 일정 중 부동산 시장 과열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내며 정부의 규제 기조가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강조했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외교 슈퍼위크인 이번 주만이라도 여야가 정쟁을 멈추고 APEC 성공을 위해 무정쟁 주간을 선언하자"며 "나부터 솔선수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의 최종 목표가 국익 추구인 만큼 국익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전 세계인 앞에서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고도 촉구했다.
정 대표의 발언은 대통령이 외교 일정에 몰두하는 사이, 국내에서는 10·15 부동산 대책 후폭풍과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의 사퇴 파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나왔다. 대통령이 외교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부동산 민심이 악화하자, 여당은 '국익 외교'를 내세워 정쟁 자제를 요청하며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외교 슈퍼위크 동안 정부와 여당이 제한된 반응을 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과 달리 이 대통령은 '정책 불가피론'을 직접 내세우며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은 과도한 부동산 투자라는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다"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거품은 필연적으로 터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단순히 경제 위기가 아니라, 모든 부문에 걸친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에서 주식시장으로의 자산 이동 필요성을 강조해왔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모습에서 자산시장 정상화의 긍정적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방향을 계속 고수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 장중 4000선을 돌파해 1년 최고치로 마감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부동산 규제 정책의 방향을 선회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정책 기조 유지에 방점을 찍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는 세번째 부동산 대책인 10·15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으로 묶어 대출규제를 강화했다. 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하는 '갭투자' 차단을 위해 이들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도 지정해 2년 실거주 의무도 함께 부여했다. 이런 가운데 이 전 차관의 실언과 함께 제기된 부동산 갭투자 의혹, 복기왕 민주당 의원의 '15억원 정도는 서민 아파트' 발언 등으로 민심은 더욱 냉각됐다.
특히 이 전 차관은 이 대통령의 '부동산 책사'로도 불려온 인물이다. 그의 행보로 정책 신뢰가 흔들리자, 그는 23일 유튜브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한 데 이어 24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 대통령은 하루 만인 25일 이 전 차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사표가 신속히 수리된 것은 논란이 장기화될 경우 10·15 부동산 대책의 동력 약화는 물론, 국정 운영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서 '서민 주거 사다리 걷어차기'란 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을 둘러싼 민심 역시 요동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1~23일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적절성'을 물은 여론조사 결과 '적절하다'는 긍정평가는 37%, '적절하지 않다'는 부정평가는 44%가 나왔다. 부정평가가 7%p 차로 긍정 평가를 앞섰다. 조사는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다만 이는 이 전 차관의 사퇴 전에 집계된 수치다.
논란이 된 인물의 사퇴, 외교 슈퍼위크 속에서도 이 대통령은 여전히 부동산 대책의 후폭풍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비규제지역에서 풍선효과가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시장 불안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이 전 차관의 사퇴만으로는 문제를 봉합할 수 없는 점을 들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부동산 대책의 철회까지 촉구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전날 최보윤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 대통령이 '10·15 부동산 재앙'을 차관 한 명 사퇴로 덮으려 한다"면서 공세에 고삐를 죘다.
김도읍 정책위의장도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이재명 정권이 세 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을 잡기는커녕 국민의 분노만 커졌다"며 "결국 정부의 잘못된 규제 정책이 실수요자를 월세 세입자로 내몰고 국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좌절시켰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의장은 "그런데 민주당은 이재명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국민의힘을 향해 정치 공세라 치부한다"며 "10·15 수요억제책은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부동산 민심이 진정되지 않은 채 긴장이 높아지는 와중에도, 이 대통령은 외교 일정을 흔들림 없이 소화했다.
이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에 도착해 1박 2일간의 아세안 정상회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 대통령은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스캠 범죄 대응을 논의하고, 아세안 국가들을 대상으로는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강조하면서 한·아세안 연간 교역액 3000억 달러 달성 목표, 자유무역협정(FTA) 개선 협상 개시 제안 등 경제협력 구상을 제시했다.
이날 오후 귀국한 이 대통령은 곧바로 경주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 준비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APEC에 참석 차 경주를 찾으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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