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없는 여당, 반성 없는 야당, 그 틈에 낀 공무원 [기자수첩-정책경제]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5.10.27 07:00  수정 2025.10.27 07:00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

대통령 당부에도 정쟁만 난무

밤새며 자료 준비한 공무원들 ‘허탈’

‘상시 감사’ 등 특단 대책 필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국정감사에서 김우영 민주, 박정훈 국힘 의원의 문자메시지 갈등 관련 신상발언 끝에 감사가 중지돼 있다. ⓒ뉴시스

정권 교체 후 5개월, 추석 연휴 직후 시작한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가 2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정부 부처 1년 행정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국회 본연의 기능인 견제와 감시를 통해 정부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필요한 입법이나 예산 심사를 위한 자료를 확보하는 목적이다.


이번 국감에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정감사는 되게 좋은 계기다. 국감에서 문제 삼는 거 잘 챙겨라. 문제가 있으니 문제 삼는 거다. 있는 문제는 ‘고맙습니다’ 해라. 스스로 찾으려 하면 잘 안 찾아진다. 시각이 고정돼 있어서 안 보인다. 반대쪽 시각에서 보면 우리가 못 보는 걸 본다. 좋은 기회다. 국회에서, 다른 기관에서, 또는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지적하는 거 잘 보면 ‘우리 부처에 이런 문제가 있구나’ 파악할 수 있으니까 각별히 잘 챙겨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말처럼 국감은 분명 순기능이 있다. 1년 동안 국회가 날을 세워 온 칼이 정부 부처의 썩은 곳을 정확하게 도려낸다면 국가 발전에 위협이 될 요소들을 미리 제거할 수 있다.


이런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국감은 할 때마다 정치권 안팎에서 ‘무용론’이 나온다.


국감 무용론 배경을 긍정적으로 접근하면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20년 전만 해도 국회의원들은 평소 활동을 주권자들에게 속속들이 알리기 힘들었다.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 외 소통 창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효과 좋은 홍보 방법이 국정감사다.


국감장은 모든 미디어가 관심을 집중한다. 그동안 감춰졌던 이슈들이 터지면서 ‘스타 의원’도 종종 탄생한다. 의원 보좌진들이 국감에 칼을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레거시 미디어를 제외하고도 유튜브, 사회관계망(SNS) 등 얼마든지 자신의 치적 홍보가 가능하다. 거의 실시간 생중계할 정도다. 평소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꼬집는 사안들이 매일 미디어를 타니 1년에 한 번 하는 국감에서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


국감 무용론이 나오는 원인을 ‘사실적’으로 접근하면 추태에 가까운 여야 의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치 혐오’까지 부르는 여야 의원들의 추태는 이번 국감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지난 16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감에서는 의원끼리 주고받은 문자를 서로 폭로하며 욕설과 막말을 주고받았다. 당연히 해당 장면은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이런 장면을 중계하는 게 싫었는지 과방위원장은 언론을 국감장 밖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파행을 빚은 과방위 국감은 이튿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올해 국감도 여야를 모두 비판할 수밖에 없다.


3년 남짓 만에 정권을 다시 잡은 현 여당은 국감 내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 5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전 정부 잘못 들추기에만 몰두했다. 국정감사 내내 ‘감사’보단 ‘내란 청산’만 강조했다.


야당도 똑같다. 계엄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은 국민 앞에서 아직도 제대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국감 기간에 제1야당 대표라는 사람은 불법 계엄으로 자리에서 쫓겨나 구치소에 갇힌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 면회까지 다녀왔다.


책임감 없는 여당과 반성이라고는 모르는 야당 사이 공무원이 있다. 정책적 오류나 실수를 지적받는 거라면 응당 공무원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 여야 싸움질을 지켜보느라 이튿날 새벽 5시에야 귀가하는 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국감을 준비하는 공무원들의 최소 두세 달 전부터 의원실에서 요청하는 수만 쪽에 달하는 자료 준비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의원 사전 질의를 받아 장관 답변을 준비하다 보면 동트는 일은 예사다.


매년 국감이 끝나면 무용론과 함께 ‘상시 국감’ 도입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상시 국감은 그동안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상시 국감 선택권도 싸움질하는 의원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치권의 주도권 싸움장으로 변해버린 국감, 고쳐쓰기 어려우면 버리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애먼 공무원만 고생시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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