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3년, 불황을 설계의 시간으로 바꾸다
감산 대신 투자…반도체 초격차 복원 이끌어
여전히 과제 산적, 지난 3년이 부활 기반될 것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연합뉴스
이재용 회장의 취임 3주년, 삼성 반도체의 부활이 시작됐다. "성과로 증명하겠다"던 그의 의지가 마침내 실현되고 있다.
대외 메시지는 삼가면서도 내부적으론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를 주문해온 그는,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용의 3년은 삼성 반도체의 정상 궤도 복귀를 위한 '설계의 시간'이었다.
이 회장은 오는 27일 회장 취임 3주년을 맞는다. 2022년 10월 27일, 별도의 취임식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회장직에 올랐다. 형식보다 실질, 선언보다 실행이었다.
회장에 취임한 2022년 하반기, 반도체 산업은 혹한기의 시작점에 서 있었다. 수익은 급락하고 글로벌 수요는 마비됐다. 실제로 이듬해인 2023년 반도체 시장의 규모는 전년 대비 11.1% 감소하며 혹한기가 본격화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불황을 설계의 시간으로 활용했다. 삼성은 메모리·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시스템 반도체를 잇는 3단 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메모리 부문에서는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중심으로 한 '고부가·고성능 메모리 전환' 전략을 본격화했다. 기존 DDR 중심의 범용 메모리에서 벗어나, AI 연산용 HBM과 CXL 기반 차세대 메모리로 기술 축을 이동시켰다.
파운드리는 단순 생산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 엔비디아·AMD·테슬라 등 고객과의 '협력체계'로 전환을 시도했다. 설계 단계부터 고객과 최적화된 칩 아키텍처를 개발하는 'AI 반도체 파트너' 모델로의 변화였다.
시스템 반도체(SoC) 부문은 모바일 중심에서 탈피해, 차량용 반도체(ADAS), 이미지센서 등으로 응용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회장의 전략은 당장의 '실적 개선'이 아닌 '시스템 구축'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반도체 산업의 심각한 불황으로 2022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43조3766억원에서 2023년 6조5670억원으로 급감했다. 그러나 연구개발비를 오히려 늘렸다. 삼성전자는 전년 대비 13.7% 증가한 28조3400억원을 투입했다. 경쟁사가 전년 대비 감축한 것과 대비된다.
2024년에는 3.5% 늘어난 35조억원으로 2년 연속 영업이익을 웃도는 투자를 단행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이러한 공격적인 투자 기조를 지속하며 현재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최상위권 투자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연구개발비가 반도체 부문에 모두 투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는 이 중 대부분이 반도체에 집중되고 있다고 본다.
이 회장의 3년은 당장의 '실적'에 매몰돼 있지 않았다. 삼성은 반도체 사업의 구조적 안정성을 위해 단기 실적보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불황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고, 감산 대신 미래를 설계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여전히 삼성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HBM3E·HBM4 등 차세대 제품의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 최선단 공정의 수율 안정화 등은 여전히 남은 과제다. 그러나 이 회장이 지난 3년 동안 다져온 시간의 층위는, 삼성 반도체가 직면한 난제 해결의 발판이 될 것이란 평가다.
삼성 반도체의 부활은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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