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을 모집합니다.”
최근 한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공지다. 대기업이나 유망 스타트업의 채용 공고가 아니다. 연말 개막을 앞둔 뮤지컬 ‘킹키부츠’가 극중 배경이 되는 구두공장 ‘프라이스 앤 선’(PRICE&SON)의 직원을 모집한다면서 띄운 이벤트다. 당연히 실제 직원으로 채용하는 건 아니고, 관객을 극의 세계관 속 일원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콘셉트 몰입형’ 마케팅의 일환이다.
ⓒ씨뮤, 쇼노트
‘킹키부츠’ 공연제작사 CJ ENM이 게시한 ‘사옥 이전 안내 및 신입사원 공개채용’이라는 공지에는 주요 업무로 ‘공장 출퇴근 기록 및 올바른 사내 문화 조성’이 제시됐다. 이는 유료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로, 사내 임직원몰, 사내 이벤트, 수습 기간 후 사원증 제공 등의 복지 혜택이 제공되면서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특히 뮤지컬을 3회 이상 관람하면 실물 사원증 발급이 가능하다.
무려 11년 만에 귀환하는 뮤지컬 ‘보니앤클라이드’(12월 11일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개막) 역시 SNS를 통해 ‘보조 탐정 채용’이라는 이색적인 추리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자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해당 이벤트의 내용 자체는 작품과 직접적 연관성은 없지만, 이벤트에 등장하는 사건의 단서가 되는 테마들의 시대와 배경이 극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특히 흥미로운 이벤트를 통해 뮤지컬 관람권을 상품으로 제공하면서 관객들의 구미를 당기기도 한다.
최근 웨스트엔드에서 매진 행렬을 이어온 ‘미러’(A MIRROR)의 한국 초연 당시에도 이색적인 마케팅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공연은 ‘조엘과 레일라의 결혼식’이라는 설정 속에 관객들을 초대해 허가받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독창적인 연출을 선보이는데, 실제 결혼식처럼 청첩장 형식의 리플렛을 배포하거나 로비에 웨딩 포토 테이블 및 포토존을 설치해 극장 자체가 하나의 결혼식장으로 변모해 현실과 허구를 허무는 연극적 장치를 극대화해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공연계가 ‘콘셉트 몰입형’ 마케팅에 주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히 관객을 ‘관전자’로 두지 않고, 작품의 일원이 되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팬들에게 강력한 소속감과 참여도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극의 분위기와 핵심 스토리를 미리 체험하게 함으로써 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극대화하는 효과도 탁월하다. 관객은 더이상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서사를 함께 완성해나가는 ‘참여자’로서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최근 주목할 만한 지점은 이러한 ‘서사적 몰입’이 ‘기술적 몰입’과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객 경험의 질을 예매 단계에서부터 끌어올리려는 시도도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태양의서커스 ‘쿠자’가 도입한 ‘XR 좌석뷰’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이는 관객이 티켓 예매 시, 단순한 좌석 배치도나 단편적인 사진이 아니라 XR(확장현실) 기술을 통해 원하는 좌석에서 실제 무대가 어떻게 보일지 360도로 ‘체험’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관객이 공연을 선택하는 첫 단계인 ‘예매’ 과정에서부터 기술을 통해 몰입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단순히 좋은 자리를 고르는 것을 넘어, ‘내가 이 자리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가’를 미리 시뮬레이션하게 함으로써 관객의 만족도와 기대감을 동시에 관리한다. 이는 서사적 몰입을 넘어 기술적 몰입으로 관객 경험의 질을 높이는 한 단계 진화된 전략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최근 공연계에는 이머시브 공연처럼 관객이 적극적으로 공연에 개입하는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일반적인 작품에서는 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연 마케팅 단계에서 단순히 티켓을 파는 것을 넘어 공연 전후의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총체적 경험’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라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공연장 밖에서부터 그 벽을 하무는 시도가 공연의 흥행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고 봤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