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걸린 대한민국, 단풍도 치료약이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0.16 07:30  수정 2025.10.16 07:30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늘어나면서 자살률 세계 최고인 대한민국

단풍 숲을 거닐면 피톤치드와 안토시아닌의 향연 속에 우울함이 사라지는 효과

굳이 단풍 명소 아니어도 주변의 단풍을 제대로 느껴 보기를 권유

충북 단양 보발재. ⓒ 최홍섭

대한민국은 지금 곳곳에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충만하다. 개인의 삶이 팍팍해진 데가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기능을 상실했다. 여기에 대외적으론 트럼프의 관세 협박 같은 무거운 얘기만 감돌고 있다. 특히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배고픔’의 고통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니 남과 비교되는 ‘배 아픔’의 고뇌가 더욱 심각해진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살률(인구 10만명 당 자살 사망자수)은 29.1명으로, OECD 국가들 중 여전히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나라의 중추가 되는 40대의 사망원인 1위에 ‘암’을 제치고 ‘자살’이 올라가 더욱 충격을 주었다.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다. 자살 원인이야 매우 복합적이지만,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한 몫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가운데 단풍(丹楓)의 계절이 돌아왔다. 단풍은 동장군(冬將軍)을 지척에 두고 만추(晩秋)에 하늘이 내려 주신 판타지다. 가장 강력한 항(抗)우울제 역할을 한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데려가 하루나 이틀 정도 단풍의 바다에 푹 빠져 보게 하고 싶다.


사실 행복이란 조금 빠른 깨달음이다. 승진해야, 합격해야, 집을 사야, 주식으로 수익을 내야만 행복하다는 클리셰(Cliche)에서 벗어나 눈앞의 소소한 아름다움에도 감동할 줄 알면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어느 한국 목사가 죽은 뒤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께서 “너는 설악산 단풍을 보았느냐”라고 물으시자, 그 목사는 “제가 열심히 사느라 한가하게 단풍 같은 거 보러 다니진 않았습니다”라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아니 너는 내가 한국 땅에다 가장 멋있게 만들어 준 그것을 보지도 않고 왔느냐”며 오히려 서운해하셨다고 한다.


사실 절정기의 단풍을 보고도 감탄하지 못하는 사람은 친구나 애인으로 권하고 싶지 않다. 자연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수성이 없다면 일상생활에서도 공감 능력이 부족할 위험성이 높다. 김진홍 신광두레교회 목사는 “단풍철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단풍 빛깔을 대하노라면 창조주의 위대하신 솜씨를 실감한다”라면서 “그러기에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나 무력감을 회복하는 데는 숲이 최고의 의사가 된다”고 말했다.


전북 고창 선운사 도솔천. ⓒ 최홍섭

단풍은 나무가 햇빛을 흡수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광합성(光合成) 활동을 멈추고 겨울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가을이 되면 낮이 짧아지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나무는 더 이상 충분한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지속할 수 없다. 그래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엽록소의 생산을 중단하게 되고, 잎에서 엽록소가 서서히 분해된다. 그 과정에서 가려져 있던 색소들이 드러나 나뭇잎이 빨강(안토시아닌), 노랑(크산토필), 주황(카로티노이드), 갈색(타닌) 등으로 변하면서 ‘단풍’이란 장관이 펼쳐진다. 햇살이 단풍을 관통할 때 그 어떤 스테인드글라스보다 환히 빛나는 감동을 할 수 있다.


단풍을 보는 것은 스트레스를 진정시키는 효과 만점의 치료법이라고 한다. 뇌에서 부교감(副交感)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엔돌핀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심신이 이완된다. 단풍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 집중력이 좋아져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다.


단풍의 붉은색은 활동성을 촉진시켜 우울감, 무기력함, 의기소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해 준다.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는 사람은 단풍과 같은 붉은 계열의 색을 자주 보면 몸속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혈액순환을 향상하는 효과가 있다. 빈혈이 있을 때 단풍을 보면 헤모글로빈 생성에 도움이 된다.


또 나무가 해충과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물질인 피톤치드도 단풍과 관계가 있다. 산림과학연구원에 따르면 피톤치드는 단풍철인 10~11월 사이에 가장 많이 방출된다. 울긋불긋 단풍과 소복한 낙엽이 어우러진 곳을 밟고 지날 때 나는 소리도 좋다. 약간 습기를 머금은 은행나무 낙엽을 밟으면 300Hz 이하의 저주파가 많이 나와 마음의 안정을 준다. 바싹 마른 낙엽은 중주파가 나와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고, 잎이 잘게 부서지면서 스치는 소리는 고주파로 정신을 맑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자폐증이나 우울증 환자 치료에도 활용되고 있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는 “우리가 자연에 감탄하는 것은 고귀한 대상과 자신을 둘러싼 슬프고 초라한 현실 사이의 강렬한 대조에서 빚어지는 ‘경외’라는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경외감은 아무리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던 스트레스와 근심을 티끌로 만들어 버린다. 보다 큰 삶의 질문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자신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 생각해보라고 명령한다”고 설명했다.


산림청 발표를 보면, 올해 단풍의 절정은 설악산의 10월 25일을 시작으로 속리산(10월 27일), 가야산(11월 4일), 내장산(11월 6일) 순이 될 전망이다. 예년보다 5일 정도 늦다.


올해 단풍은 여름의 늦더위와 최근의 가을비, 그런 가운데 아직 냉해는 없어 과연 상태가 어떨지 궁금해진다. 설악산의 경우 10월 초부터 대청봉, 한계령, 공룡능선 등 해발 800m 이상에서 역대급 빛깔을 선보였다. 이제 15일을 전후하여 설악산 단풍은 '대한민국 넘버원 단풍 명소'라는 천불동계곡(소공원에서 양폭대피소까지 6.5km 구간)으로 내려온다.


사실 우리나라는 단풍 시즌이 되면 아파트 단지 내 정원조차도 극강의 화려함을 뽐낼 정도로 전국 곳곳이 단풍 명소로 변한다.


특히 △설악산 천불동계곡 △정읍 내장산 △북한산 숨은벽 △단양 보발재 △순창 강천산 △장성 백양사 △고창 선운사 △지리산 피아골 △오대산 선재길 △동두천 소요산 △가평 아침고요수목원 △곤지암 화담숲 등의 단풍 명소는 가히 입이 쫙 벌어지는 곳이다. 특히 도로변에 있어 누구나 차량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설악산 필례약수 일대의 붉디붉은 단풍 길을 1시간 정도 산책하고 나면 정신이 무척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생업으로 바쁘다면 집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단풍을 찾아 잠시나마 깊게 물들어 보기를 권한다. “나는 원래 단풍이나 꽃 같은 건 별로야”하는 사람도 이번 가을에는 한 번 실천해보면 어떨까. 서울에 산다면, 11월 중순에는 창경궁이라도 한 번 가 보시라. 춘당지 연못에 비친 오색 단풍 야경을 보며 힐링하고, 피를 토하는듯한 단풍에 냉랭했던 마음이 열정으로 확 타오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단체로 날려 버리는 대한민국의 단풍 시즌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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