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사법부 압박 우려…李정부, '속도조절론' 솔솔

김주훈 기자 (jhkim@dailian.co.kr)

입력 2025.10.02 00:05  수정 2025.10.02 11:19

민주당, 청문회 불발에 '조희대 압박' 고삐

빛바랜 '사법개혁'…근거無 의혹만 '부각'

우상호·이석연, 민주당 일방통행에 '우려'

'조희대 탄핵' 반대 우세…정권 부담되나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9월 1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리는 이른바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에 불출석 의견서를 제출했다. ⓒ뉴시스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여당의 압박이 장기화되고 있다. '대선개입 의혹'을 명분으로 강행한 청문회가 조 대법원장 불참으로 '맹탕'이 되자, 이번엔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입법부와 사법부 간 신경전이 이어지자, 관망하던 이재명 정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법부 압박에 대한 국민 반감이 커지자 중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일 국회에서 상임위원장 및 간사단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현장검증은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 주도로 조 대법원장을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 일반 증인으로 채택하자 반발한 것이다. 특히 여당은 오는 13일 국감뿐만 아니라, 15일엔 대법원에서 현장국감을 진행하기로 했고 마찬가지로 조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동의할 수 없고, 현장에 동행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현장검증 안건을 사전 협의 없이 기습적으로 발의해 처리한 추미애 법사위원장을 강력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여당의 조 대법원장 증인 채택은 삼권분립 침해 논란이 불거진 '조희대 청문회'가 조 대법원장 불참으로 '반쪽 청문회'가 되자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 대법원 국감 증인·참고인 명단은 조 대법원장을 둘러싼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의 증인·참고인과 동일하다.


여당은 대법관 수 증원 등 사법개혁안에 법원이 반발하자 조 대법원장 '탄핵' 주장까지 펼쳤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사퇴 요구에 반응하지 않았고, 이에 여당은 대선 개입 의혹인 '이재명 재판 기획설'을 제기하며 다시 압박에 나섰다. 지난 9월 중순부터 시작된 입법부와 사법부 간 신경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여당이 조 대법원장을 압박하는 이유가 사법개혁만은 아니라고 관측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5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 사실상 선거법이 유죄라고 판단을 내린 것으로 민주당은 "대법원의 쿠데타이자 내란행위"라고 반발했다. 대통령 당선으로 현재는 재판이 중단됐지만, 사상 초유의 대선 후보 교체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던 민주당 입장에선 조 대법원장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30일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발언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 채용 논란을 다룬 과거 언론기사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5월 1일 이 후보에 대한 극히 예외적이고 이례적인 판결은 정말 헌법에 부합하느냐"라면서 "조희대 불출석 증인은 대선 후보도 바꿔치기도 된다는 반헌법적 오만의 말로가 혹시 아니었느냐"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도 조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여론에 참전했다가 '삼권분립 침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강유정 대변인은 여당의 조 대법원장 사퇴 요구 주장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감"이라고 밝혔다가 논란이 커지자, 우상호 정무수석이 진화에 나섰다. 한 차례 논란 이후 대통령실은 여당의 조 대법원장 압박 기조에 한 걸음 떨어져 있었지만, 국민 반감이 커지자 중재에 나선 모양새다.


여당이 자신하며 내놓은 조 대법원장 재판 기획설 의혹이 'AI'(인공지능)로 제작됐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당은 뚜렷한 증거를 내놓지 않은 채 청문회에서 검증하겠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재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사법부 압박이 포함된 탓에 자칫 이 대통령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대통령실은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직속 조직인 국민통합위원회의 이석연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 대법원장에 대한 여당의 압박을 우려했다. 이 대통령의 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이 "이해가 안 간다"라는 점을 명확히 했지만, 조희대 청문회에 대해서도 "국회가 왜 그렇게 서둘러서 청문회를 진행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특히 '탄핵론'에 대해서 "아무리 정치적 수사라고 해도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여당 일부에선 이 위원장의 개인 의견이라고 치부하는 분위기지만, 대통령직속 기구인 국민통합위원장으로서 이 대통령과 사전 교감 없이 개인 의견을 말하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욱이 우 수석이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 주도로 청문회가 의결된 것에 아쉬움을 드러낸 대목도, 사법부 압박에 '속도 조절론'을 제기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국민통합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최근 하락세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한미 관세 후속 협상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이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의 경우는 조 대법원장 청문회 추진 및 탄핵 시사 등 요소가 영향이 미쳤다는 판단이 나오는데, 문제는 이 대통령 지지율에도 반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 조 대법원장 탄핵 여론은 반대가 우세하다.


뉴시스가 여론조사업체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8일부터 29일 이틀간 무선 100% ARS 방식으로 '조 대법원장 사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본 결과, 반대는 '47.5%', 찬성은 '43.9%'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유보층은 8.6%다. 특히 지역별로 대전·세종·충남북, 광주·전남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반대 응답이 높았고, 연령별로는 20대 이하와 60·70대 이상의 반대 응답이 높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국회와 사법부가 조율을 통해 자연스럽게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다"면서도 "이 대통령의 통합 화두는 향후 리더십을 견고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인데, 여당의 사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자칫 대화 실종으로 보인다면 (이 대통령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일부에서도 조 대법원장 청문회 진행 과정에서 당정 간 의견 조율이 필요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내 일부 의원이 독단적인 행보로 자칫 대통령실과 민주당 간 이견이 잇달아 노출된다면, 국민 불안이 커져 이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민주당 당대표였던 당시 비서실장 출신인 천준호 의원은 지난달 30일 뉴스1 팩트앤뷰 인터뷰를 통해 "국정 지지율과 당 지지율이 소폭 하락한 핵심 요인은 사법부에 대해 '원 보이스'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국민은 당과 정부 그리고 대통령실이 서로 목소리가 다르면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내에서 충분히 소통하고 대통령실과 조율해 최종 입장이 나가는 것이 집권여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라면서 "이 대통령은 사법 개혁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 왔는데, 이젠 면밀히 소통해 정돈된 메시지를 세련되게 표출하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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