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일각 '반미 꿈틀'에 고심 커지는 대통령실…관세협상 안갯속으로

김주훈 기자 (jhkim@dailian.co.kr)

입력 2025.10.01 04:05  수정 2025.10.01 05:02

더민초 "동맹국 모욕" "씨나락 까먹는 소리"

위성락 "협상카드 아냐…오버플레이 말라"

굿캅~베드캅 전략일까…범여권 '동상이몽'

국민의힘 "역할분담은 착각…협상력 약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이 도통 출구를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양국 간 대미 투자 펀드 3500억 달러의 출자 및 집행 방식에 이견이 드러나면서, 우리 정부는 '국익 우선' 대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여권은 정부를 지원 사격하기 위해 '대미 압박' 발언을 쏟고 있지만, 국익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선 입장이 엇갈린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한 달여가 넘었지만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을 놓고 한미 정상이 장외에서 상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에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가 민심을 건드리면서,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 정당의 대미 강경 발언 수위는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야권에선 "협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는 지난 7월 관세 협상 결과, 미국이 예고한 한국의 상호관세는 기존 25%에서 15%로 낮춰졌다. 다만 한국이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시행하는 것도 합의 내용에 포함됐다. 우리 정부는 직접 현금을 내놓는 지분 투자는 5% 정도로 하고 대부분을 직접 현금 이동이 없는 보증으로 하되 나머지 일부를 대출(loans)로 채우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3500억 달러 선불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불' 압박에 우리 정부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IMF)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지만, 협상에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나아가 유일한 대안이었던 한-미 통화 스와프(원화를 맡기고 달러를 정해진 환율로 빌려올 수 있는 계약) 가능성도 낙관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상 우리 정부에겐 녹록지 않은 협상이다.


위성락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방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통신 3사와의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는) 우리가 제기한 것이긴 하지만, 낙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미국이 지금까지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밝혔다.


한미 관세 후속 협상에 대해서도 "낙관론을 피력하지는 않지만, 여태까지 어려운 협상을 꾸려온 경험으로 유추하자면 크게 비관적이진 않다"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한미 협상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맨 처음 시작할 때는 굉장히 어려웠고 헤매는 국면이지만, 다시 (접점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이 유력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협상 타결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우선 우리 정부는 협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발언을 조심하고 있다. 자칫 미국을 자극할 만한 요소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문제는 범여권 일각의 대미 강경 발언이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 실장은 직접 만류에 나서고 있다. 그는 지난 29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미 강경 기조가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미국에 대해 나오는 이야기가 꼭 레버리지(협상 카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난색을 표했다.


특히 "조지아 사태에 대해 국민 감정도 있고 여러 주문이 많다"며 "이 문제를 너무 감정 위주로 다루려 하면 쉬운 건 받아내기 쉽겠지만, 타깃을 높게 잡는다면 우리 쪽에서 오버 플레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실장이 우려를 표할 정도로 범여권 일각의 대미 강경 발언은 수위가 높다. 당초 대미 협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정부의 협상을 지켜보겠다는 기조였지만,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로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발언 수위도 덩달아 높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 '더민초'는 지난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자유무역의 원칙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조치"라고 날을 세웠다. 우리 근로자 구금 사태를 두고서도 "동맹국 국민을 모욕적이고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대우한 것은 동맹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비난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원내외 인사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지난 27일 논평을 통해 미국이 3500억 달러 투자를 요구한 것을 두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규정했다. 미국이 안보·경제 동맹국인 한국을 '속국'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은 미국의 경제 식민지가 아니다" 등 미국을 비난하는 논평을 잇달아 공개하며 압박하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범여권은 소위 대미 강경 발언이 우리 정부의 협상을 돕기 위한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우위를 잡을 수 없는 만큼, 미국에 대한 국내 여론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부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 정부가 국내 여론을 지렛대 삼아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미국이 3500억 달러를 요구하며 압박하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정부가 어떤 근거를 내세워 협상을 할 수 있겠느냐"라면서 "협상을 깨뜨리자는 여론 조성이 아니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목소리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3500억 달러 선불 요구가 "대한민국을 아예 망하게 하겠다는 노골적 협박"이라고 비난한 진보당도 비판적 목소리가 우리 정부의 협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진보당 관계자는 "한국인 구금 사태와 3500억 달러 선불 등 국민의 분노가 당연한 것 아니냐"라면서 "미국에 대한 대규모 규탄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분노는 우리 정부가 협상을 끌어갈 수 있는 좋은 배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범여권의 대미 강경 발언이 오히려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김건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며 "대통령실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구시대식 반미 선동이 관세율을 낮추겠느냐, 아니면 3500억 달러 투자 방식을 바꾸겠느냐"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결과는 동맹을 뒷받침하는 양 국민 간 신뢰의 상실과 국익 훼손뿐"이라며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여권이 불협화음을 내는 것을 역할 분담에 의한 협상력 강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전한 착각이고, 오히려 콩가루 집안으로 인식되어 심각한 국민적 우려와 협상력의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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