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덕에 부원들에게 몹쓸 짓 하게 된 부장입니다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5.09.30 08:55  수정 2025.09.30 11:33

[데스크 칼럼] 전국의 부장들을 ‘빌런’으로 만든 카톡 업데이트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부장 놀러 간 사진, 제발 가려줘!”

“난 부장 근황 안 궁금해.”

“부장 달리기 인증샷, 내가 왜 봐야 하나.”


카카오톡 대규모 업데이트 이후 이용자들의 불만이 폭주하면서 주요 언론사 헤드라인을 장식한 문구들입니다.


‘허허’ 웃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아, 맞다. 나도 부장이지.”


2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다 달게 된 부장이라는 직함이 졸지에 무거운 멍에가 됐습니다.


전국에 수백만 명은 존재할 법한 ‘부장’들이 난데없이 도마에 오른 건 카카오가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하며 친구 설정 이용자들의 게시물이 피드형으로 큰 화면에 노출되도록 만든 탓입니다.


같은 회사에 다니지 않았다면 사적으로 엮일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의 사생활을 반강제적으로 두 눈 가득 욱여넣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윗사람이라니!


그렇게, 나이 많은 직장 상사이자 꼰대의 상징과도 같은 ‘부장’들이 의도치 않게 카카오톡 친구탭 첫 페이지를 흉물스럽게 만드는 원흉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주변을 보니 사생활의 과도한 노출이 싫어서, 혹은 업무적으로 카톡 친구가 맺어진 이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프사(프로필 사진)를 지우고 풍경사진 등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제 프로필 페이지를 열어봤습니다. “많이도 올려 놨네”. 제가 그동안 올려놓은 프사들로 가득했습니다.


“나도 지워야 하나.” 우리 부원들 상당수는 저와 20살가량 차이가 나는 여기자입니다. ‘제가 놀러 간 사진’을 보고 싶을 리 만무합니다. 그들이 ‘부장 시리즈’ 기사 제목처럼 수군거리지나 않을지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심지어 우리 부서는 카카오와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을 담당하는 ICT융합부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서 카카오 출입기자들은 카카오톡 업데이트 논란 관련 기사를 쓰면서 ‘부장 시리즈’ 제목을 달지 않았습니다. 부장이 프사를 지우지 않은 상태라 껄끄러웠나 봅니다. “저놈은 왜 프사를 안 지워서 제목 잡기도 힘들게 만드나”하고 욕을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카카오톡 대규모 업데이트 이후 친구탭 첫페이지에 올라온 카톡 친구 게시물.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본인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었으나 업데이트 이후 풍경 사진으로 바뀌었다. 카카오톡 친구탭 캡처

이런저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제가 카카오톡 프로필을 정리하지 못한 건 제 나름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딸아이가 어릴 적부터 함께 찍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올리다 보니 아이의 성장 과정과 제가 늙어가는 모습이 그대로 담긴 앨범이 됐습니다.


굳이 남들에게 과시할 의도도 없었고, 남의 카카오톡 친구탭 첫 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등장하길 원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이전 버전의 카카오톡이었다면 조막만 한 사진으로 보여졌다가 궁금한 사람들만 들어와서 둘러보는 공간이었으니 남의 이목을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런 공간을 하루아침에 삭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멀티프로필을 만들어 그동안 쌓인 사진들을 옮길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결국 사진 추가를 포기하는 것은 물론 스티커 등 꾸미기 기능도 건드리지 않고 부원들 친구탭에 ‘업데이트한 친구’로 등장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입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걸로 고민을 하게 만들다니, 카카오가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물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점유율을 내주면서 이용자 체류시간이 줄고 있는 카카오의 고민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도태된다는 위기감에 경쟁 플랫폼들의 기능들을 도입해 아직 카카오톡에 많이 남아 있는 이용자들을 묶어두겠다는 의도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 대부분은 ‘목적형 도구’로서 카카오톡을 이용합니다. 과거 PC에서 MSN 메신저나 네이트온 메신저를 쓰던 이들이 무더기로 카카오톡으로 넘어온 것은 때마침 개막한 스마트폰 시대에 걸맞은 간편하고 가벼운 쓰임새가 좋아서였지, 화려하고 육중한 퀄리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우리 부원들이 모인 단톡방은 오전 일보를 보내고, 취재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용도로 주로 사용됩니다. 간혹 사적인 얘기나 농담이 오가기도 하지만 그게 주 용도는 아닙니다.


저보다 20살이나 어린 부원들은 아마도 지인들과의 사적인 공간으로는 인스타그램을 활용할 겁니다. 저는 그 공간을 침해하고 싶지도 않고 침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제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그들이 친구로 등록돼 있지 않습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에 인스타그램과 비슷한 기능을 만들어 놓으면 그런 사적 공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가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가 뒤섞여 서로가 불편한 ‘잡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카카오가 이용자들의 불만사항을 비교적 빠르게 개선키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카카오톡 친구탭 첫 화면을 이전처럼 ‘친구목록’ 형태로 되돌리고, 논란의 원흉이었던 피드형 게시물은 별도의 ‘소식’ 메뉴를 통해 볼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합니다.


애초에 대규모 업데이트 단계부터 그런 식으로 인스타그램과 같은 환경을 카카오톡에서 원하는 이들에게 별도의 선택권을 줬다면 이런 대혼란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존 카카오톡 이용자 모두에게 그걸 강요하는 건 무리수였습니다.


야심차게 ‘대개편’을 외쳤다가 단 일주일 만에 ‘후퇴’를 선언하게 됐으니 속이 쓰리겠지만, 틀린 건 틀린 겁니다. 빨리 인정하고 이용자들의 신뢰를 되찾는 게 현명한 일입니다.


10월로 예정된 대개편의 다른 한 축인 AI(인공지능) 업데이트에서는 부디 이용자 편의와 일선 개발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고려한 긍정적인 변화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아, 그리고 혹시 친구탭 재개편 작업 일정에 쫓겨 추석 연휴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실 개발자분들이 계신다면 미리 응원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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