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예산 '얼굴'의 흥행, 성공 공식과 과제 [D: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9.29 08:45  수정 2025.09.29 08:46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이 흥행에 성공하며 한국 영화계 전반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제작비 2억 원, 20명 남짓한 스태프, 13회차 촬영이라는 초저예산 프로젝트로 출발한 이 영화는 개봉 후 누적 관객 90만 명, 매출 93억 원을 기록하며 침체된 한국 영화 시장에서 보기 드문 성과를 냈다.


최근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얼굴'의 성공은 작은 영화도 관객을 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얼굴'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등이 출연했다.


특히 이 작품은 독립영화의 제작비와 규모로 만들어졌지만, 배급에서는 상업영화 시스템을 활용했다. 독립영화 전용관을 점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멀티플렉스 중심의 상영망을 확보해 관객과 만났고, 그 결과 독립과 상업의 경계에서 중간 규모 영화가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초저예산 제작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연상호'라는 이름의 힘도 작용했다. '부산행', '지옥' 등으로 글로벌 인지도를 쌓은 연 감독의 브랜드 파워와 그 동안 함께 해온 스태프들과의 신뢰로 최소한의 제작비와 인력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다.


연상호 감독은 이에 대해 "외부 자본이 들어오는 순간 기존 시스템 속 영화가 되기에 이번에는 제작사 자체 자금으로 완성했다"며 "흥행 수익이 명확한 계약에 따라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돌아가도록 러닝 개런티 구조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다만 제작비 2억 원이라는 숫자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연 감독의 20여 년 경력과 쌓아온 노하우, 스태프들의 헌신이 합쳐져 가능했던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2억 영화'라는 프레임으로 소비될 경우 마치 그 금액만으로도 영화를 완성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수치가 반복적으로 언급되면 다른 창작자들이 마치 그 수준의 비용으로도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연상호라는 스타 감독이기에 가능했던 특수한 사례로, 다른 창작자들에게 쉽게 적용하기 어렵다. 얼굴이 단발성 실험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모델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소규모를 비롯해 다양한 규모의 영화가 안정적으로 제작·배급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연상호 감독 역시 인터뷰를 통해 "이 시도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투자사와 제작사 모두의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제 의지만으로 되는 건 아니긴 하지만 새로운 형식의 레이블이 만들어져 운영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전했다.


'얼굴'의 성공은 작은 영화도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동시에, 앞으로 한국 영화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 가능성을 이어갈 지에 대한 과제를 던졌다. 이번 실험이 특정 감독의 예외적 성취에 그칠지, 아니면 새로운 모델의 출발점이 될지는 향후 영화계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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