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검찰청 폐지' 담은 정부조직법 강행
국민의힘, 박수민부터 필리버스터 시작
'패스트트랙' 투표서 '용지 한 장' 더 나와
우원식 "통과" 선언에…野 "법적조치"
더불어민주당이 야당과의 협의 없이 공공기관 운영법 등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강행하면서 본회의가 재차 정쟁의 장으로 변모했다. 소수야당인 국민의힘은 즉각 4박 5일간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반격에 나섰다.
국회는 25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했다. 이재명 정부의 첫 정부조직 개편안인 이번 법안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와 환경부를 개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과정에는 여야 간의 험난한 협상이 있었다. 그동안 개편되는 정부조직에 대한 충분한 숙의가 없다는 주장을 지속해온 국민의힘은 어떻게든 상정을 막고, 토론과 논의부터 거치자는 입장을 수 차례 피력해왔다. 하지만 민주당이 야당과의 협치를 거부하고 개편안을 밀어붙이겠단 입장을 고수하면서 국민의힘은 즉각 필리버스터로 맞서겠단 엄포를 놨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대전시당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당의 정부조직 개정안은 다분히 감정적인 분풀이, 보복성 개편안으로 증오와 복수심에 기반을 둔 졸속개악"이라며 "오늘부터 '정부조직 개악 4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로 국민들께 부당성을 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부적으로 송 원내대표는 "검찰청이 폐지되면 민생범죄 수사 재판이 한없이 지연될 것이고 기재부 예산 기능을 총리실로 이관되면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입맛에 맞는 정치적 포퓰리즘 예산 편성이 난무하게 될 것"이라며 "이진숙 방통위원장 한 사람을 내쫓기 위한 위인 폐관은 사상 초유의 사태고 원자력발전소 관련 수출은 산업부에서, 생산 경영은 환경부에서 해 탈원전 시즌2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정부조직 개편의 반대 이유를 들었다.
본회의가 여야의 극단적인 정쟁의 장으로 변모할 기미가 보이자 양당의 원내대표는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송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1시 20분께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와 회동하고 한 시간 넘게 법안 상정 관련 협상에 나섰지만 빈손으로 의장실을 나와야했다. 김 원내대표가 우 의장에게 "계속 그렇게(정부조직법 개편안 상정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협상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송 원내대표는 즉각 의원총회를 소집해 "이런 식으로 졸속으로 정부조직을 개편한다 하니 어느 국민이 이해가 되겠느냐"라며 "도저히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안 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용납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서 애초 2시로 예고됐던 본회의는 1시간 30분이나 미뤄진 3시 30분께에야 개의할 수 있었다. 이토록 어렵게 시작된 본회의는 곧바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민주당이 강행 추진하려던 법안 4건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투표 도중 투표자 수보다 용지가 한 장 더 나오는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사건은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기 위한 관련 법안 2건(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계법 개정안)과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 등 모두 4건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할지 여부를 표결에 부쳐지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의 개표하기 위해 투표함을 확인하니 명패 수는 274명이었지만 투표수는 275매로 집계되면서 즉각 논란이 터져나왔다.
국민의힘은 즉각 "어떻게 명패 수보다 투표 수가 더 많을 수 있느냐"며 "이러니까 부정선거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니냐, 투표 새로 하라"고 반발했다. 일부 의원들은 "무효 처리해야 한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은 "깽판 치자는 거냐"고 맞받아쳤다.
이 같은 상황에 우 의장은 '투표수가 명패 수보다 많으면 재투표가 원칙이지만,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재투표할 필요 없다'는 국회법 조항을 인용해 개표 재개를 지시했다. 이후 해당 안건은 찬성 182표, 반대 93표로 집계되며 우 의장에 의해 통과가 선포됐다.
'공익신고자보호법 패스트트랙 개표'를 놓고도 논란은 벌어졌다. 이번엔 알아보기 힘든 글자가 적힌 투표지가 2장 나오면서다. 해당 법안의 표결에서 찬성 180표, 반대 92표, 무효 2표가 나왔는데 우 의장은 "글이 무효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글이긴 한데 의사표현이 너무 명료하다"며 유효표로 처리하겠다고 주장했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의 3분의 2인 180표가 필요하다. 만약 우 의장이 국민의힘의 요구대로 2표를 무효표로 했다면 공익신고자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패스트트랙은 부결될 수 있었다.
이에 송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밖에서 긴급 회견을 열어 "표결 과정에서 있었던 우원식 국회의장의 의회주의 말살 폭거에 대해서 강력 규탄한다"며 "분명히 부정선거 내지 부정투표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 의장은 국회법 규정을 들먹이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정리를 해버렸다. 국민의힘은 강력히 규탄하며 법적 조치에 대해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국민의힘이 여야가 합의한 법안은 통과를 약속하면서 몇몇 법안은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이에 이날 오후 국회는 본회의에서 문신사법을 재석 202명 가운데 찬성 195명, 기권 7명으로 의결했다. 또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 성공개최 및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국회 결의안'도 재석 260명 중 찬성 260명으로 가결됐다. 아울러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도 재석 218명 중 찬성 213명, 기권 5명으로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또 다른 문제는 그 직후에 발생했다. 우 의장이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자 국민의힘이 박수민 의원을 필두로 곧바로 필리버스터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자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곧바로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안을 제출했다. 이에 정부조직법 개편안은 24시간 후인 오는 26일 토론 종결 표결을 거쳐 민주당과 친여 성향의 조국혁신당 주도로 가결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주호영 국회부의장 간의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앞서 국민의힘 소속인 주 부의장은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오늘 민주당이 국회에서 벌이는 폭주는 독재로 가는 큰 걸음"이라며 "오랫동안 판사로 일해온 법조인으로서, 20여년간 국회를 지켜온 의회인으로서, 이 사법 파괴의 현장에서 사회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우 의장은 필리버스터가 시작되기에 앞서 "주 부의장께서 토론 사회를 보지 않는다. 벌써 여러 번 반복된 일"이라며 "국회에서 여야의 이견과 대립은 늘 있지만, 그런 속에서도 국회가 할 일, 또 의장단이 할 일은 늘 있는 것이다. 매우 아쉽고 유감"이라고 비난했다. 주 부의장이 사회를 거부한 만큼 4박 5일 동안의 필리버스터 사회는 민주당 출신인 우 의장과 민주당 소속인 이학영 부의장이 번갈가면서 맡아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일각에선 "우 의장과 이 부의장의 체력 빼기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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