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과 쓸쓸한 겨울, 우연히 만나 교감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내 여운을 남긴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서는 청각 장애인 복서의 느리지만 묵묵한 발걸음을 응원하고, ‘새벽의 모든’에서는 일상을 살아내는 청춘을 위로했던 미야케 쇼 감독이 ‘여행과 나날’에서는 일상의 순간들을 따뜻하게 포착했다.
‘여행과 나날’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첫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작품으로, 슬럼프에 빠진 각본가 ‘이’(심은경 분)가 눈 덮인 산속에서 머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무심한 주인장 벤조(츠츠미 신이치 분)를 만나 자신의 일상과는 다른 경험을 하면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다.
뜨거운 여름 해변에서 소년 나츠오와 소녀 나기사가 우연히 만나 교감하는 과정도 ‘극 중 극’으로 담긴다. ‘해변의 서경’, ‘혼야라동의 벤상’ 등 두 편의 원작 만화를 미야케 쇼 감독만의 방식으로 엮어낸 것이다.
뚜렷한 서사를 따라가며 위로를 전하는 작품은 아니다. 이가 일상에서 벗어나 마주하는 의외의 순간들을 따라가면서 이의 슬럼프 극복 과정을 함께 체험하게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변화를 추구하지만, 극적인 사건을 원동력 삼아 서사가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난 이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진정한 교감을 하고, 이를 통해 나아갈 힘을 얻는 과정을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다.
눈 덮인 일본의 시골 풍경을 보며 느끼는 편안함, 이가 만난 주인장 벤조의 엉뚱한 면모 등 웃음 나는 포인트도 곳곳에 숨어있다. 누구라도 거창한 계기 없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관계, 변화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결말도 누구에게나 위로가 될 법하다.
특히 이 미묘한 변화도 납득 가능하게 표현해 준 심은경의 섬세한 연기에, 미야케 쇼의 따뜻한 시선이 시너지를 발휘한 모양새다. 심은경은 ‘열린’ 태도로, 편안한 촬영 환경을 조성해 준 미야케 쇼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고, 미야케 쇼 감독은 “저는 배우의 매력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영화를 만들어가며 배우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이 영화가 없었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매력을 발견하고 싶다. 저는 지켜보기만 했던 것 같다”고 화답했다.
미야케 쇼 감독은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 영화는 화려한 작품이 아니다. 겨울 편에서는 낡은 숙소가 등장하고, 여름 편에서도 화려한 파티를 통해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는다. 모두 한적한 곳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고 작품을 설명하면서도 “음악만큼은 고급지게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금전적으로 값비싼 것이 아닌, 자연의 풍요로움 혹은 산에 있는 거대한 절벽, 눈밭의 조용한 느낌은 고급스럽게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엔터테이닝한 요소가 가득한 스케일 큰 영화의 재미는 느낄 수 없지만 이의 평범한 여정이 주는 위로만큼은 확실한 ‘여행과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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