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쏠림 고착화…금융자본의 ‘잘못된 물길’ 지적
2017·2018년 이어 재등장한 정책 화두…성과는 미진
이번엔 ‘150조 국민성장펀드’로 직접 지원 카드 꺼내
저성장 고착화 속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을 핵심 금융 어젠다로 채택했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내세워 금융권의 자금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부동산 담보대출 중심에서 혁신기업·신성장 산업 지원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지만, 현장의 우려도 적지 않다. 데일리안은 [은행카오스] 시리즈를 통해 생산적 금융의 개념과 정책 방향, 그리고 그 파장과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저성장 고착화 속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을 핵심 금융 어젠다로 채택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금융당국 사령탑에 오른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명 후 첫 일성으로 ‘생산적 금융’을 강조해 정책 방향성에 대한 궁금증이 뒤따른 바 있다.
지난 19일 금융위원회는 ‘제1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이 위원장 주재로 개최하며 현 정부의 생산적 금융 대전환 정책들을 내놓았다. ‘생산적 금융 대전환’은 이재명 정부가 강조한 코스피 5000과 맞닿아 있다.
그간 부동산이 여윳돈의 투자 수단 즉, 가장 안전한 자본 증식 수단으로 여겨져 금융 자본이 쏠려있는 현상을 타파하고, 혁신과 경제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생산적 금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와 안건 자료로 배포한 ‘생산적 금융 대전환 추진 방향’에서 최근 9년간 지속적으로 부동산에 자산과 자금공급 쏠림 현상이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가계 자산의 64%가 부동산으로 OECD 평균인 52.9%를 큰 폭으로 상회한다며, 부동산 부문에 공급된 금융권 자금도 2024년 기준 약 4137조원으로, GDP 대비 비중이 9년간 1.5배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사실 유동성 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는 현상은 10여년 전부터 지적돼 왔다. ‘생산적 금융’에 대한 논의는 지난 2016년 말부터 시작됐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돼 자금이 시장에 많이 유입되자 여윳돈들은 재건축 시장과 수익형 부동산 투자로 쏠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2016년 가계의 주택담보대출은 3분기 말 661조원으로, 1년 전(2015년)보다 12.5% 늘었고, 기업대출은 줄어든 가운데 부동산임대업 대출만 늘어났다.
신호순 당시 한국은행 금융안정국장은 “금융기관의 담보 위주 대출 관행, 회사채 시장에서의 신용 차별화가 심화하고 있는 현상은 담보력이 부족한 신생기업 및 기술기업 등에 대한 자금 공급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금융위원장으로 임명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2017년 7월 인사청문회에서 “새 정부가 추구하는 소득주도 일자리 중심 성장을 뒷받침하겠다”며 “부채를 늘려 단기적 호황을 유발하는 ‘소비적 금융’이 아니라 경제 성장과 잠재력, 일자리 확대에 기여하는 ‘생산적 금융’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17년도나 지금이나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는 배경은 똑같다. 신용자금 자체가 계속 부동산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라며 “과거 비슷한 문제의식하에 나온 정책들이 많은데 ‘생산적 금융’을 명명하고 적극 추진한 것은 17년도로 본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때도 부동산에 자금이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생산적 금융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이런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금융위는 지난 2018년 ‘생산적 금융을 위한 자본 규제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가계·부동산 부문 리스크 관리 강화 ▲가계대출 편중리스크 제어 ▲기업금융 인센티브 활성화 등을 담은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부동산 금융 익스포저(위험노출액)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왔다. ⓒ데일리안 손지연 기자
부동산 담보대출 등 가계여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등 기업여신, 금융투자 상품을 모두 포함한 부동산금융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2017년 2334조원에서 매년 상승해 2024년 4137조원으로 늘어났다. 최근 은행 예금(2095조원)이 코스피 시총(2094조원)을 역전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금융위는 위험가중치(RW)를 낮춰 중소기업과 혁신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도록 유도했지만, 은행 입장에선 부실 리스크와 수익성 문제 때문에 대출을 확대하지 않았고, RW 인하로 규제 부담이 줄어도 채무불이행 위험 대비 수익(ROE)가 낮다는 현실적인 벽을 넘지 못했다.
또 2018년 당시에는 ‘규제 완화’에 초점을 둬 정책 펀드나 직접 지원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이런 지적에 따라 이번 정부에서 내놓은 ‘생산적 금융’은 150조원 국민성장펀드에 초점을 두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생산적 금융 대전환’에서 가장 핵심은 국민성장펀드다. 직접 바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며 “금융사의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라 정책금융이 마중물 역할을 하면서 민간 자금이 따라붙을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들이 (부동산)대출을 해줄 곳은 다 해준 상황에서 더 나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2010년도에 투자할만한 기업들을 찾아나선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금융회사에 오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은행들이 기술 가치가 있는 기업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칼 빼들었다…‘자금 물길’ 돌리기 총력전 [은행카오스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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