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정치 안정' 내세웠지만…사법부 흔들리고 野 반발 거세져 [정국 기상대]

김은지 기자 (kimej@dailian.co.kr)

입력 2025.09.22 04:05  수정 2025.09.22 04:05

3대특검법 수정 하루만 파기…與 갈등 노출

사법부 독립 논란·대법원장 사퇴 압박 지속

'AI 녹취록' 회동설…위헌정당 공방으로 확산

25일 본회의서 정부조직·방통위 개편 시도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야당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100일 즈음 스스로 꼽은 최대 성과로 '정치 안정'을 내세웠지만, 100일을 훌쩍 넘긴 지금도 정국은 여전히 혼란 속에 있다.


지난해 12·3 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파면, 6월 조기 대선까지 이어진 격변의 반년과 비교하면 국정이 정상화된 것은 사실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여야의 극단 대립과 협치 부재, 사법부 독립 논란이 이어지면서 '정치 안정'이라는 자평과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정국 불안과 팽팽한 대립 구도는 현재진행형이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최근 공개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룬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한국의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기 상황에 대해 "매우 바쁘고 혼란스러운 시기였다"며 "사전에 많은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타임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정치가 마비된 뒤,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쳐 이 대통령이 당선된 배경도 함께 소개했다.


이 대통령이 서울의 과열된 주택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고, 새 노동법(노란봉투법)으로 파업 노동자의 법적 책임을 완화한 점,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한 소비쿠폰 지급 등의 조치를 취한 점도 함께 언급됐다.


다만 이들 조치는 민생 안정이나 시장 대응에 가까운 성격이다. 국정 운영의 최소한의 틀이 복원됐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은 '정치 안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여야 갈등과 제도를 둘러싼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평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 안정이라는 표현을 뒷받침할 만한 정치적 장면이나 제도적 변화는 뚜렷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정치 안정 자평과는 상반된 장면이 연이어 연출되고 있다. 지난 9월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한복 차림으로 단체 입장하며 '정상 정치 복원'이란 축제의 장을 연출하려 했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근조 리본을 단 검은 정장 차림으로 단상에 올라, 여당의 입법 강경 드라이브와 협치 실종에 반발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대치는 법안 처리 과정들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연 지난 11일, 민주당에서는 지도부 간의 균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내란·김건희·채상병 사건을 포괄하는 3대 특검법 개정안에 대해 특검 수사인원 최소화, 특검 기간 연장 없음 등 내용의 수정안에 전격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 직후 당내 강성 지지층인 '개딸'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고, 일부 당원은 김병기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문자 항의 등을 쏟아냈다. 이 사안을 둘러싸고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의 갈등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결국 민주당은 여야 합의안을 하루만에 뒤집었고 대야 강경 기조는 더욱 확고해졌다. 국민의힘은 이 사태의 본질을 '합작 사기극'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의힘은 여야가 앞서 특검을 무리하게 확대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는데 민주당이 하루 만에 파기한 점을 비판했다.


삼권분립 훼손 논란도 연일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이 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서 "사법부 독립이라고 하는 것도 사법부 마음대로 하자는 뜻은 전혀 아니다. 행정·입법·사법 가릴 것 없이 국민의 주권 의지에 종속된 것"이라고 발언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직접선출권력, 최고권력은 국민, 국민주권"이라며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계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해 큰 파장을 낳았다. 해당 발언과 함께 정청래 대표,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 등 여권 전방위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가 맞물리면서 사법부 독립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한층 가열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 논란이 격화하는 가운데, 대통령실이 밝힌 '원칙적 공감' 발언도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통령실은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의미는 오독이자 오보"라며 진화에 나섰고, 이후에는 해당 사안에 대해 선을 긋는 등 거리두기에 나섰다.


이른바 '조희대·한덕수 회동설'을 둘러싼 인공지능(AI) 녹취록 논란도 정치 안정 평가와 충돌하는 또 다른 불안 요소다. 국민의힘은 이를 허위 조작 정보로 규정하며 민주당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고리로 양당이 서로를 헌법 체계의 위협으로 규정하는 극단적 프레임 충돌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조작된 음성파일로 전 국민을 상대로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며 이를 "1인 독재 체제의 서막을 여는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의회와 행정권력은 이미 장악됐고, 사법부만이 남았다"며 민주당의 대법원장 사퇴 압박을 '사법부 장악 시도'로 규정했다.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민주당"이라는 강한 표현도 나왔다.


간담회 직후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이 진짜 해산해야 할 위헌 정당"이라며 "장동혁 대표는 정치적 물타기를 멈추고, 사법개혁의 본질인 내란세력 청산과 사법 정의 실현에 동참하시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힘과 대화 원칙'으로 "민생은 함께하지만 내란과 관련된 세력에게 관용은 없다"며 국민의힘의 장외투쟁과 이재명 대통령 탄핵 움직임을 "명백한 대선불복"이라고 까지 규정했다. 특히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사법부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국민과 내란 종식을 위한 방어 수단"이라고 언급했다.


여야의 극한 대치는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체제를 개편하기 위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 처리를 예고한 상태다. 국민의힘은 '입법 독주' 저지를 위해 전면적 필리버스터에 나설 방침이지만, 여당이 강제 종료 절차를 밟을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와 병행해 장외 투쟁으로까지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대법관 증원,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등 사법개혁 입법도 줄줄이 대기 중이어서, 정국의 긴장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힘에 대한 최근 특검의 당원명부 압수수색 역시, 야당을 표적으로 한 '정치적 말살 시도'라는 인식이 강하게 퍼지면서 여야 간 대립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국민의힘은 휴일인 이날 대구 장외 집회를 시작으로 정부·여당에 대항하는 총력전에 돌입했고, 25일에는 대전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재명 정부의 실정을 알리는 지역 여론전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참석을 위해 오는 22일부터 26일까지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이번 유엔총회에 대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우리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돌아왔음을, 단순히 돌아온 게 아니라 국제사회 글로벌 책임에 더 잘 기여할 수 있게 준비돼 돌아왔다는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것처럼 국제사회에서 공동가치·평화·번영·인권·개발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도울 태세가 돼 있다. 우리는 더 잘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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