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 사각지대 없앤다지만
과실 없어도 은행 부담 지우기 '우려'
금융당국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의 책임을 강화하는 '무과실 배상책임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금융사가 예방 노력을 다했더라도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의 일부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로, 소비자 보호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은행권에서는 이미 자체적인 예방과 구제 노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책임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금융사의 무과실 배상책임 법제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은행이 대출 실행 과정 등에서 본인 확인 절차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명의를 도용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대출 계약은 유효한 것으로 간주된다. 결국 피해자가 고스란히 책임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칼을 빼 든 이유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금융사에 강력한 예방 책임을 부여해 범죄 발생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줄인다는 복안이다.
기존 피해 구제 제도의 사각지대가 넓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현재 금융권에서 자율 배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당국 차원의 강제성은 없는 상황이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피해가 큰 만큼,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기에는 가혹하다는 여론도 배경이 됐다.
실제 보이스피싱 범죄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6대 은행에서 사기 이용 계좌로 신고돼 지급 정지된 계좌 수는 15만82개에 달했다.
이는 금감원에 피해 구제 신청이 접수된 내역만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실제 피해 규모는 이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은행권은 이에 대해 당혹감과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자체적으로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보이스피싱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무과실 책임까지 지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은행권은 지난해부터 시행된 '비대면 금융사고 자율배상 제도'에 따라, 은행의 과실이 일부 인정되는 경우 피해액의 일부를 자율적으로 배상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은행권이 자율 배상한 금액은 1억7311만원에 달했다.
은행권이 우려하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피해액에 따른 재정적 부담이다.
법무부 집계를 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 접수 건수는 2만839건으로 전년 대비 10.2% 늘었고, 같은 기간 피해액은 4472억원에서 8545억원으로 91.1%나 폭증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간 총 피해액은 1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무과실 배상 제도가 도입돼 은행이 피해액의 10%만 책임지게 되더라도 연간 14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손을 떠난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 과실이 없는데도 무조건 배상하라는 요구는 지나치다"며 "사후적인 배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범죄 조직을 소탕하고 사전 예방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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