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주제파악도 하지 못하고 호가호위했던 사람들
호가호위란 여우 주제에 호랑이를 등에 업고 설치는 자를 가리킨다. 구시대의 관직사회에만 이런 자들이 있었을 리가 없다. 지금도 노예나 애완용 동물처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권력자의 눈앞에서 알랑거리다가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먹으려고 설치는 자들이 한 둘이겠는가? 떡고물만 받아먹는 자들은 그래도 조금은 봐줄만하다.
그러나 권력을 등에 업고 설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자들 때문에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당현종 시대의 총신 안록산(安綠山)은 정말 황당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황제의 은총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자기보다 열 살도 넘게 어린 양귀비를 기꺼이 양어머니로 받들었다.
양귀비는 본래 촉주사호(蜀州司戶) 양현염(楊玄琰)의 딸로 본명을 양옥환(楊玉環)이라 했으며, 개원(開元) 23년에 수왕비(壽王妃)로 책립되었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총명함으로 진심으로 수왕을 모셔 깊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년 후에 갑자기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말았다. 개원 25년에 현종도 사랑했던 무혜비(武惠妃)를 병으로 잃고 매일 상심에 젖어 지내고 있었다. 후궁에 있는 수많은 여인들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조정의 신하 가운데 누군가가 수왕비 양옥환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미인이라고 추천했다. 현종은 수왕부부를 보고 싶다는 핑계로 양옥환을 불렀다. 그녀를 본 현종은 갑자기 정신을 잃을 정도로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는 양옥환을 수왕부에서 데리고 나와 도교의 사원인 태진궁(太眞宮)에 두고 태진이라 불렀다. 이후로 현종은 항상 태진궁으로 행차했다.
양태진은 풍부한 살집을 지닌 그래머였을 뿐만 아니라 음악과 춤에도 능했다. 그녀는 자신의 기예를 마음껏 발휘하여 현종을 즐겁게 했다. 1년 후에 양태진은 현종으로부터 혜비를 능가할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처음에 그녀를 부르는 정식 명칭이 없었기 때문에 궁중에서는 낭자라고 불렀지만 황후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았다. 이듬해 8월, 그녀가 정식으로 귀비로 책봉되자 죽은 양현염도 병부상서로 추증되었으며, 숙부인 양현규(楊玄圭)는 광록경(光綠卿), 오빠인 양념(楊恬)은 전중소감(殿中少監), 양기(楊奇)는 부마도위(附馬都衛)로 임명되었다.
남자들만 출세한 것은 아니었다. 양귀비의 세 자매도 각각 한국부인(韓國夫人), 괵국부인(虢國夫人), 진국부인(秦國夫人)으로 봉해졌다. 당시 민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유행했다.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하지 말고, 딸을 낳았다고 슬퍼하지 마라. 그대 눈에는 딸이 집안을 만드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호색한이었던 안록산은 양귀비의 풍만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홀딱 반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여자야말로 현종을 미혹시키기에 족하다고 판단했다. 천보(天寶) 6년, 안록산은 신임 어사대부의 신분으로 사례를 드리기 위해 장안으로 왔다.
그는 특별히 준비했던 사향, 보석, 인삼 등의 귀중한 특산품을 양귀비에게 바쳤다. 그 가운데에는 말과 노래를 하는 백옥처럼 하얀 앵무새도 있었다. 그는 금빛 비단으로 만든 새장에 앵무새를 넣어 양귀비에게 바쳐 환심을 사려고 했다.
과연 앵무새를 받은 양귀비는 대단히 즐거워했다. 특히나 이 하얀 앵무새는 공부한 사람처럼 말을 하고, 상대의 뜻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양귀비는 고력사(高力士)를 통하여 이 신기한 앵무새를 바친 어사대부 안록산을 친히 정식으로 만나겠다고 전했다.
어화원(御花苑)에 도착한 안록산은 갑자기 어디에선가 맑고 감미로운 여인의 음성을 들었다. 소리를 따라서 가보니 천상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궁녀들이 호화롭고 아름다운 봉연(鳳輦)을 타고 천천히 다가왔다. 안록산은 고력사의 지시에 따라서 수레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하례를 올렸다.
“신이 양귀비낭낭을 뵈옵니다. 만복하소서!”
양귀비는 편안히 앉으라고 말하고 의자를 내주었다. 안록산이 머리를 들어 바라보는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안록산은 양귀비가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것이 공연한 말이 아니었음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눈에 반한 것이다.
앵무새에 대한 말을 꺼낸 양귀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새는 사람의 말을 하고 뜻도 알아차리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다시 이러한 새를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보통 새 가운데 이처럼 하얀 털을 지닌 것은 없습니다. 안대부께서는 어떻게 이 새를 얻었나요?”
“신은 작년에 군사를 이끌고 거란족과 해인(奚人)의 반란을 토벌했습니다. 영지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눈처럼 하얀 새가 신의 장막에 나타났습니다. 부하들에게 털 하나도 다치지 말고 잡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새도 순순히 따라왔습니다. 아마도 하늘이 귀비마마에게 드리는 선물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는 온갖 듣기 좋은 말을 하여 양귀비로부터 호감을 얻어냈다.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를 연분으로 느꼈다. 푸르디푸른 청춘의 양귀비는 당연히 건장한 젊은 남자를 마음속으로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안록산이라는 사나이는 장대한 신체에 우뚝 솟은 콧날과 웅대한 기상을 느끼게 하는 짙은 눈썹을 지닌 당당한 무장이었다. 이미 환갑을 지닌 현종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루는 현종이 안록산을 궁으로 불러서 성가(聖駕)를 모시라고 지시했다. 양귀비와 한국부인, 괵국부인, 진국부인 등도 함께 참석했다. 안록산은 먼저 종종걸음으로 양귀비의 앞으로 다가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신(兒臣) 저, 저, 저 신 안록산이 귀비 낭낭(娘娘)을 배알합니다.”
계산된 말인지 아니면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안록산의 말은 묘한 뜻이 숨어 있었다. 아(兒)란 어린 아들을 가리켰으며, 낭낭은 어머니란 뜻이었다. 그것을 본 현종은 평소에 궁중에서 듣던 형식적이고 딱딱한 어투와 달랐기 때문에 새로운 기분이 들어 크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무의식중에 진심을 내뱉는 법이다. 짐은 안록산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겠구나! 귀비를 어머니로 모시고 싶다고?”
곁에 있던 양귀비의 자매들도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양귀비는 어리둥절했다. 자신은 아직도 30세도 되지 않았는데 40세가 넘은 안록산에게 어머니라는 말을 듣다니! 그러나 황제가 그렇게 하라고 주장하고, 나이로 보아 황제는 안록산의 아버지뻘이었으니 황제의 아내라는 점에서 전혀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안록산이라는 사나이는 능청스럽게도 양귀비의 앞에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자 안록산이 어머니의 만복을 바라옵니다.”
그는 정중하게 삼배를 올렸다. 현종은 양귀비와 함께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록산! 너는 예의를 모르는구나! 어머니께 절을 하기 전에 아버지께 먼저 절을 해야 하느니!”
그러자 안록산은 머리를 조아리며 태연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자는 원래부터 호인(胡人)이라 저희의 풍습에 따랐을 뿐입니다. 저의 풍습에는 어머니를 아버지보다 더 높이 받듭니다.”
현종도 빙그레 웃으며 호인 출신의 아들을 둔 것을 기뻐했다. 그는 양귀비의 두 오빠와 세 자매들도 안록산과 가족의 인연을 맺도록 허락했다. 이로써 안록산은 현종과 가장 가까운 측근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양귀비와 현종은 부모가 되었으며, 그는 현종의 4번째 아들이 되었다.
1월 20일은 안록산의 생일이었다. 현종과 양귀비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장에서 특별히 안록산의 생일을 위해 후한 선물을 준비했다. 현종은 그 외에도 가장 좋은 술과 음식을 하사하고 자신이 입던 옷을 비롯한 진귀한 선물을 하사했다. 양씨 자매들도 각자 새로 맞이한 가족을 위해 선물을 주면서 생일을 축하했다. 3일째 되는 날 안록산은 궁으로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이번에는 먼저 아버지인 현종을 찾아갔다. 현종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녹아! 생일은 즐겁게 보냈느냐?”
“아신(兒臣)은 나이가 40이 되도록 이처럼 잊지 못할 생일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은혜를 생각하면 간뇌도지하더라도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현종을 배알한 그는 어머니 양귀를 찾아갔다.
안록산이 양귀비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양귀비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귀비마마의 아들 안록산이 어머니의 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장대한 체구의 북방 사나이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다시 ‘아들’ 또는 ‘어머니’라고 부르는 말을 들은 양귀비는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농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 우리 녹아가 왔구나! 민간에서는 수양아들이 3일 동안 어머니의 발을 씻겨 준다는데 오늘이 바로 네가 태어난 지 3일째 되는 말이 아니더냐? 그러니 너도 오늘 나의 발을 씻겨다오!”
술에 취한 그녀는 내관과 궁녀들을 불러서 안록산의 겉옷을 벗기고 그의 몸에 소주와 물을 뿌리게 한 다음 비단으로 만든 테이블보를 커다란 강보로 삼아 안록산의 거대한 몸을 감싸기 한 후에 수레에 실었다. 양귀비와 세 자매는 안록산을 다음과 같이 희롱했다.
“녹아! 둥둥! 녹아! 둥둥!”
수레에 누운 안록산이 짐짓 어린아이처럼 징징거리자 구경하던 궁녀들까지 큰 소리로 웃었다.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은 현종은 궁금함을 찾지 못하여 양귀비의 궁으로 찾아왔다. 세 자매가 수레에 실린 어린아이를 어르는 것을 본 현종도 웃음을 터뜨렸다. 현종을 본 안록산은 더욱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현종을 비롯한 양귀비의 자매들은 그 모습을 보고 신분을 잊고 박장대소했다. 현종은 양귀비에게 많은 돈을 하사하고 안록산에게도 다시 진귀한 보물을 하사했다. 이날 현종과 양귀비는 밤이 깊도록 안록산과 즐겁게 놀았다.
이러한 안록산에 대한 소문이 후궁에 퍼져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자기 마음대로 궁을 출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안록산은 현종과 양귀비의 명을 방자하여 항상 궁을 드나들었다. 안록산과 양귀비는 겉으로는 모자관계인 것처럼 떠들었다. 양귀비는 임을 열 때마다 ‘녹아’라고 불렀으며, 안록산은 ‘모비낭낭’이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눈이 맞아 정을 나누는 사이였다.
두 남녀는 한 자리에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면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술을 마시다가 밤이 깊어지면 양귀비는 안록산이 궁에서 잠을 자도록 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현종도 안록산이 항상 후궁을 드나드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안록산이 양귀비를 비롯한 세 자매들과 사이좋게 지낸다고 생각했을 뿐, 조금도 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안록산이 마음대로 후궁을 드나들게 된 배경에는 현종의 다른 생각이 있었다.
현종은 안록산을 나라의 버팀목으로 삼으려고 했다. 현종은 항상 누군가가 독이 든 술이나 음식으로 안록산을 살해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는 조회를 할 때마다 안록산을 불러서 그와 같은 사실을 전하고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어떤 자리에서나 술과 음식을 먹는 척하라고 당부한 현종은 특별히 궁중에서 만든 음식을 먹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차츰 안록산과 양귀비에 관한 각종 염문이 현종의 귀에도 들어갔다. 대부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소문이 계속되자 그도 조금씩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궁을 관장하는 고력사(高力士)를 비롯한 환관들은 각종 감언이설로 유언비어를 믿지 말라고 간곡하게 설득했다.
대체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사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현종도 자신과 가장 가까운 측근들끼리 그러한 불충을 저지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력사 등의 노력으로 두 사람에 대한 의심이 걷혀지자 현종은 그들을 더욱 믿었다. 나중에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신하들이 양귀비를 죽여야 한다고 건의하자 결국 허락한 것은 그만큼 배신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상 안록산과 같은 유형이 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한 인간도 있었다. 이러한 유형의 인간들은 하찮은 이득을 위해서라도 온갖 방법으로 상대를 속인다. 당의 중종(中宗) 시대에 어사대부였던 두종(竇從)은 안록산보다 더 부끄러움을 몰랐던 전형적인 인간이었다.
두종의 관직이었던 어사대부라는 직책은 3품관에 해당하지만 사법감찰부의 수장으로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그러나 자존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인간은 환관의 세력이 강하자, 수염이 없는 사람만 보면 환관인줄 알고 머리를 조아리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더 큰 기회를 잡으려고 황제 이현(李顯)이 친히 중매쟁이를 자처하자 선뜻 노파를 아내로 맞이하기도 했다.
한 번은 연말을 찾아하여 황제 이현이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갑자기 이현이 두종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가 일찍 배필을 잃었다고 들었는데 참으로 안타깝소이다. 오늘 저녁에 내가 그대의 배필을 정해주리다.”
황제의 말이 떨어지자 누군가가 내궁에서 걸어 나왔다. 앞에는 환관이 등롱을 들고 인도하고 있었으며, 뒤에는 금빛 비단으로 만든 파라솔에 가려진 여인이 따라왔다. 그녀는 꽃무늬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비취를 꽂고 있었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와 대전으로 온 그녀는 두종의 맞은편에 앉았다.
황제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서 두종에게 ‘철선시(撤扇詩)’를 지으라고 명했다. 두종이 시를 완성하자 부채가 걷히며 예복이 벗겨졌다. 두종이 머리를 들어보니 거기에는 폭삭 늙은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위황후(韋皇后)의 유모였다. 당시에 위황후는 이미 50세를 넘겼으며, 이 노파는 70세가 넘었다. 그에 비해 두종은 고작 40세를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당황해하는 두종을 본 황제와 여러 대신들은 박장대소를 했지만, 그는 황제가 친히 중매한 여인을 거절하지 못했다.
어차피 황명을 거역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두종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는 황후의 유모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황제나 황후에게 접근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유모의 남편을 ‘아(阿)’라고 불렀다.
이후로 두종은 황제를 알현할 때나 조정에 상서를 할 때마다 항상 스스로 ‘황후아’라고 칭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를 ‘국(國)’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의기양양했다. 경운(景雲) 원년인 710년 중종의 조카이자 예종의 아들인 이융기(李隆基)와 고모인 태평공주가 정변을 일으켜 위황후를 몰아냈다.
두종은 즉시 원래의 이름을 되찾고 늙은 아내를 죽여 수급을 바치며 위황후와의 모든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나타냈다. 그것으로 예종의 신임을 얻은 그는 몇 년 동안 재상을 지냈다. 늙은 아내로 다시 한 번 성공한 것이었다.
아부꾼들은 이처럼 조금도 수치심이 없다. 그들은 이익이 있으면 오로지 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스스로 자존심을 버리거나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마저 기꺼이 저버린다. 명(明)의 영종(英宗) 시대에 왕진(王振)이라는 유명한 환관이 있었다.
황제의 총애를 얻은 그는 왕명을 출납하며 영종으로부터 ‘선생’이라는 칭호를 들었으며, 공후훈작들조차 그를 ‘옹부(翁父)’라고 불렀다. 권세가 하늘을 찌르자 그의 문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환관의 몸으로 자식 하나 낳지 못하는 주제에 수많은 미녀들을 끼고 지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항상 허전했다. 왕진으로서는 어떻게 하지 못할 외로움을 이용하여 공부낭중 왕우(王佑)라는 자가 나타났다. 하루는 왕진이 부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잘생긴 청년이 찾아왔다. 당시에는 멋진 턱수염을 기르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청년에게는 수염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왕진이 그 이유를 묻자 왕우는 제법 낭랑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야께서도 없는데 제가 감히 수염을 기르겠습니까?”
왕진은 크게 웃으며 왕우를 양자로 삼았다. 어지간한 사대부로서는 환관의 양자가 된다는 것이 엄청난 수치였다. 그러나 왕우는 그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고 출세의 지름길로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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